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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 안 좋았던 일들

by 녹음노동자

*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교통비>

2011년도 영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나는 영화스텝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하지만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침 일찍 모여서 촬영을 시작하면 새벽에는 피곤해서 계속 눈이 감긴다. 그래도 다행히 새벽에라도 일이 끝나면 교통비로 택시비 만원이 나왔다. 택시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평소보다 촬영이 늦어지고 결국 아침 해가 뜰 때 촬영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제작팀에서는 아침에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하니 교통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다. 너무 피곤해서 싸울 힘도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지하철을 타러 갔다. 다른 사람들은 출근할 때라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밤새 일을 한 나의 몸에서는 냄새가 너무 났다. 민망해서 나는 지하철 구석에 손잡이를 잡고 서서 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나 스스로 영화스텝을 직업으로 택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다음 회차에 촬영에 나가니 이 일로 스텝들의 불만이 컸다. 제작부에서도 태도를 고치고 다시 교통비를 주겠다고 말을 바꾸어서 몇몇은 교통비를 받고 몇몇은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 제작부에서는 다시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태도이지만 단순히 교통비 1만원 때문에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돈이 문제였다면 애초에 스텝을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드라마를 할 때였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일찍 버스가 출발해야 했다. 역시 6시 전에 출발하거나 자정이 넘어서 버스가 여의도로 도착해야 겨우 교통비 1만원이 나왔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이 2011과 2024년의 택시 기본요금을 비교해 보면 거의 2배가 뛰었는데 여전히 1만원 이다. 여전히 1만원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스텝으로 인정되고 있다.


<안전>

촬영스케줄에 쫓겨 과속운전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버스기장님 들은 시간에 쫓겨서 촬영장에 도착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피곤에 찌든 스텝들은 버스에서 잠을 보충하기에 바쁘지만 가끔 휘청휘청 폭주를 하면서 운전하는 버스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운이 좋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운이 나쁜 경우의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게 된다. 사고가 크게 날 때야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지만 그 순간뿐이다. 윗사람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이미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고 책임은 당사자들에게 미룬다. 기득권은 언제나 국민들이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하고 먹고사는 이야기에 바쁘기를 원한다. 문제의식을 가진 스텝은 오히려 골칫거리로 취급을 받는다. 운전 이외에도 촬영을 하다 보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스텝과 배우를 밀어 넣는 경우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윗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위험한 상황에 들어간다. 행동이 바뀌기 전에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공사장에서 아침에 모여서 안전교육을 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물론 공사장에서도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윗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일터로 못 나오는 경우가 생기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간사 완벽한 세상은 없다지만 노력은 해 볼 일이다.


<현장에 물이 없습니다>

한 번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물이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는 엑스트라와 스텝 거의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모두들 물을 찾았다. 제작팀에서는 단체연락방에 물이 있는 위치를 설명해 주었지만 거리는 거의 200미터도 넘어 보였다. 현장에서 그 거리에 물을 마실 수 있는 스텝은 앉아서 잡담을 나누는 제작팀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모두들 물을 찾는 상황을 제작팀은 그저 귀찮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제작팀에 다가가 현장에 물이 없다는 말을 다시 해 주었다. 제작팀은 무엇이 문제인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무 멀리에 물이 있다는 설명을 해 주니 이번에는 텀블러를 쓰라는 말이 돌아왔다. 더 이야기를 나누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이후에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했기 때문에 제작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근처에 물을 가져왔다. 제작팀장은 나에게 와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표독스럽게 “물 가져왔으니까 드세요”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 대처가 나는 더 화가 났다. 나는 제작자들이 촬영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지 다른 사람을 부리는 술수에만 능한 제작자들에게는 정이 가지 않는다.


<노동시간>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데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적은 돈을 들여서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투자자나 제작사의 입장일 것이다. 촬영을 나가는 날이면 최대한 많은 분량을 소화해서 촬영을 마치는 것이 제작사나 투자사의 입장에서는 돈을 아끼는 일이다. 무리한 촬영분량을 촬영하면서 많은 스텝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2010년 내가 처음 영화산업에 들어왔을 때는 밤을 새우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다음날 새벽이나 아침에 촬영이 끝이 난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알고 있었다. 밤을 새우고 쉬는 날이면 다행히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그건 단순히 다음 촬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고 딱히 쉬는 날이라 부를 수 없었다. 하루에 이틀 치 일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너무 미련하고 비효율적이었지만 힘 있는 파트장들은 제작사의 미움을 살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밑에 조수들은 힘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영화촬영을 할 때 지방에서 밤새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나는 연출부의 차량을 운전했다. 밤새 고생한 연출부들이 뒤에서 자고 있는데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허벅지를 쥐어뜯으면서 겨우 서울로 도착했다. 그 사이에 얼마나 휘청거리며 많은 위기가 있었는지 모른다. 중앙분리대를 박을 때쯤 뒤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살아남기도 했다. 연출부 차량은 사고 없이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건 결과일 뿐이다. 과정에서 다른 차량들도 위험했다는 것은 절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날 제작부의 차는 전복이 되는 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물론 졸음운전이다. 이에 대한 제작사의 태도는 “조심 좀 하지”였다. 그런 환경을 만들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무리한 노동환경에서 사망한 스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법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이 생기고 많은 점이 개선이 되었지만 아직도 법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스텝들이 분명히 있다. 밤을 새우는 어려운 환경에서 규율을 잡는 것은 폭력이다. 신체적 폭력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정신적인 폭력은 갑질이라는 단어로 흔하게 일어난다. 이런 노동환경에 의문을 갖는 자는 조용히 사라진다. 2025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어느 때 보다도 활력을 잃어버린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탐욕에 눈이 멀어 사회라는 집 마저 불태워버렸다는 생각이다. 투기와 경쟁을 부추기고, 선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를 지켜주지 못 하고 바보로 만드는 사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챙기는 악인과 사기꾼들을 긍정하고 강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몰락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겉모습에 치중한 나머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 한 이유라 생각이 든다. 적자생존과 경쟁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는 일을 불가피하다 판단한다면 생각을 고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이런 문제들은 개인적인 정신적인 성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인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규제가 없다면 인간은 누군가 쓰러져 최후를 맞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항상 선하게 사는 사람들 긍정하고 악인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강해야 한다. 이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절대 모래 위에 성을 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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