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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상적인 촬영환경을 꿈꾸며 (4/4)

by 녹음노동자

*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새로운 연출부>

내가 촬영을 하는 현장에는 유독 말을 표독스럽게 하는 여자연출부가 있었다. 같은 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이해가 안 돼? 너 지능에 문제있어? 왜 일을 이 따위로 해?" 같은 것들인데. 사실 말을 이렇게 하는 사람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보는 것도 나는 놀라웠다. 한 번은 옆에서 지켜보던 조명팀 형이 "너 그거 인격모독이야? 말조심 좀 해!" 주의를 줄 정도였다. 그래서 밑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자주 바뀌었다. 또 다시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다. “혹시 동시녹음 기사님 이세요?” 새로 온 연출부가 다가와 물었다. "네~안녕하세요" 막내는 뭔가 긍정적이고 활력이 느껴지는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들 오래 버티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은 교육방송에서 일을 하다가 드라마가 하고 싶어서 지원을 했는데 다들 어울리면서 고생하고 파이팅 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참 기분 좋은 아이다. "사람이 이 정도로 상큼하면 이 사람을 과일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처해질 상황들이 훤히 보이니 곧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촬영을 하는 동안 그 소녀가 신경 쓰였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나도 한때 저런 눈을 하고 있었는데 희망에 가득 찬 눈빛. 어느새 나의 눈은 꽤나 비판적이고 염세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힘든 촬영현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녀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그녀를 위한 기도를 할 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것은 절대 소녀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어떤 희망을 보고 있었던 건가요?


<연출이란 무엇인가>

연출이란 무엇인가요? 물어보면 사람들은 각자의 대답을 내어놓는다. 몇 사람들은 연출이란 "모니터 앞에서 오케이와 엔지를 말하는 사람" "스텝들 괴롭히는 사람이다" 다양한 대답을 내어놓는다. 검색창에 연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연출가(演出家, director, program director)는 연극,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 전반적인 사항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즉, 공연 예술에서 각본을 바탕으로 배우의 연기, 무대 장치, 의상, 분장, 조명, 음악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효과적으로 무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연출의 기능적인 설명이 되어있다. 누군가 나에게 연출을 물어본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나는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연출에 가까운 대답을 찾아내었다. 나 개인적으로 연출이란 "사람은 그리는 일이라 생각한다." 드라마와 영화에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삶과 사람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와 드라마는 삶의 중간지대를 다루지 않는다. 차예프스키가 말하고는 했다. “장면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강아지를 쓰다듬는 장면, 강아지를 걷어차는 장면” 그리고 인간은 평소에는 참된 인간성을 알기가 힘들다.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출자의 길은 단순히 모니터 앞에서 오케이 엔지를 외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세네카의 말처럼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평생이 걸리는 일이다. 연출의 길은 쉽지가 않다.


<드라마와 영화는 무엇인가>

드라마와 영화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사람은 저마다의 대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라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로버트 맥기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책에서 좋은 대답을 찾았다. 극이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어떤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건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 다시 "나"를 보는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이상적인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이건 단순한 선과 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에 우리의 인간성을 시험한다. 비추어도 보고 늘려도 본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람의 인간성을 무시하고 짓밟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행동이다. 그런 연출자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가와 배우들의 덕이지 연출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위선적인 연출자는 결국 인간을 그리지 못할 것이다.


<수고했다는 인사>

촬영 중에 비가 와서 급하게 촬영이 종료가 되었다. 다들 수고하셨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서둘러 정리를 했다.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나는 정신없이 장비를 정리했다. 정리를 마치고 버스 안에 자리를 잡고 앉자 긴장이 풀리고 늘어져 버렸다. 버스에 정리를 마친 스텝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스텝들에게 인사를 했다. 조명팀 형은 "그래 너도 고생 많았다."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간다. 나는 조명팀 형의 말에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겉모습은 좀 거친 경우가 있지만 안과 겉이 같아서 안심이 되는 형이다. 촬영팀이 지나가면서 계속 수고하셨습니다. 이야기를 했다. 고마운 친구들 그래도 녹음기사라고 해서 인사를 잘해주니 너무 감사하다. 내가 건네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에 진심이 전해질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형식적인 인사를 건내지 않았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다만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이 진심으로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촬영을 끝나면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잊어 먹지 말자."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것또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겠지.


<희망을 보다 1>

작품방영이 시작되고 감독님들은 편집실로 들어가면서 현장에 신입피디분이 연출을 하러 오는 경우가 생겼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에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시작된 밤씬에서 소품칼에 문제가 있었다. 리허설을 마친 감독님은 소품팀장님을 불렀다. 분명 지문에 "간을 뺀다고 했는데 칼이 이게 뭐냐?" 감독님은 화가 나 보였다. 소품칼은 흡사 돈가스 칼로 보이기도 했다. "저 칼로 직접 간을 꺼내보라고 해라!" 감독의 언성이 더욱 높아지자 자존심 강한 소품팀장님의 입에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평소에도 이런 불만이 쌓여서 목소리가 높아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이런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도 되지만 나는 기분은 좋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에 아직 깨어있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정창화 감독님이 외국 영화사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다. 감독님의 고증에 따라서 창의 길이에 대해 영화제작사에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영화사의 윗사람들은 전혀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창의 길이가 뭐가 중요해?" 감독님의 말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을 떨치던 외국 영화사는 결국 몰락했다. 소품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소품 하나를 대하는 영화사의 태도를 본 것이다. 작은 소품에 신경을 쓰는 신입피디를 보고 나는 조금 기대가 생겼다.


<희망을 보다 2>

신입피디님은 항상 소리에 관해서는 눈을 맞추며 의견을 물었고 예민한 귀가 녹음기사인 내 귀보다 뛰어났다. 장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의 목소리만 따로 녹음하는데 연출부가 잘 못된 부분을 배우에게 주문했다. 신입피디님은 연출부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고 무전으로 화를 냈다. 당연하다 항상 연출부들은 일을 대충하지만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일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씬을 찍기 전에 신입피디님이 리허설을 하는데 주변이 시끄러웠다. "다들 조용!" 신입피디님이 큰소리를 내자 주변은 조용해지고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감독에 따라서 촬영현장은 180도 바뀌어질 수 있다. 나는 “이게 감독이고!! 이게 드라마 현장이야!!!” 엄청 감동을 받았다. 신입감독은 나에게 사운드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신입 감독님이 올 때는 물어보는데 불편함이 없게 자리를 최대한 가까이해서 앉았다. 우리는 보통 뛰어난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가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아서 문제를 만든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잘해야 한다" 다짐을 한다.


<녹음기와의 대화>

작품은 한 번의 여름과 겨울을 보내며 마무리되었다. 나는 작품을 하는 동안 나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참 멀리도 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드라마를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느낄 수가 있었다.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많은 훌륭한 스텝들과 일을 같이 했다. 녹음기는 처음부터 작품을 마무를 할 때까지 내 옆에 자리를 지킨 친구였다. 법정스님은 마음이 열려있으면 사물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작품을 마치고 녹음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라 딱히 많은 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우리 정말 대단한 모험을 했어. 너도 알고 있지?” "우리가 그런 시련을 겪은 이유는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런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 얼마나 멋진 일을 했는지 잊어버리면 안 돼" 우리가 다시 멋진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영화 드라마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덴젤 웨싱턴이 말했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대단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둑기사 분이 이런 이야기도 했다. "그래도 바둑" 나는 집에서 녹음기를 볼 때 그 진절머리 나는 촬영현장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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