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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녹음기 앞에서 하는 기도 (3/4)

by 녹음노동자

*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양한 촬영현장 실수들 4-리허설이 없는 촬영>

촬영현장은 보통 시간에 쫓기며 급박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하지만 급하게 촬영이 진행되다 보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급하게 일을 하는 것과 서둘러 일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보통 촬영을 진행할 때 리허설을 진행하고 필요한 컷을 카메라로 잡으면 또 테스트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급하게 촬영진행이 될 때는 필요한 리허설과 테스트를 빠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좋은 행동이 아니다. 테스트의 진행이 없이 완벽한 컷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눈을 감고 라면에 물을 붓는데 간이 딱 맞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운에 맡긴다는 것이다. 필름도 아니고 디지털 세대에 컷 한 번 다시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테스트를 먼저 진행한다면 더 빠르게 좋은 컷을 만들 수 있고 배우는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촬영현장 실수들 5-내 손에 커피>

촬영현장에서는 더운 여름, 추운 겨울 에어컨이나 히터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하고는 한다. 더위와 추위만 해도 견디기 힘든데 일도 해야 한다. 힘든 환경에서 사람들은 따뜻한 혹은 시원한 음료를 마신다. 음료는 직책이 높은 순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조수들에게 시원하고 따뜻한 음료가 돌아가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위에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것들을 챙겨 먹을 시간과 여유가 있지만 직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여유가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직책이 높은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혼자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처음 들어온 친구들은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행동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윗사람들은 부모님의 마음으로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는 조수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 한 번은 유명한 여배우가 밥을 푸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남자 배우는 참 많이 먹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배우는 자신의 밥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일로 자리를 비운 매니저의 밥을 먼저 푸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신을 수발드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혼자 따뜻한 커피가 손에 들려있는 리더가 추위에 벌벌 떠는 사람들에게 "다 같이 힘냅시다" 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적인 일인가. 항상 내 입에 무언가 들어가기 전에는 주변을 살펴야 한다. 나는 일기와 다음과 같은 일을 기록한 적이 있다.


"오늘은 낮 촬영 밖에 없지만 분량에 쫓기며 급하게 진행이 되었다. 1시가 지나고 점심시간도 그만큼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카트 뒤에서 제작부들이 자기들끼리 사온 와플을 먹고 있었다. "이거 맞아?" 나는 연출부를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다들 배가 고파도 촬영하고 있는데 제작부가 굳이 사람들 모여있는 모니터에서 와플을 먹는 게 맞는 거야?” 나는 도무지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작부는 조용히 먹던 와플을 정리했다."


<다양한 촬영현장 실수들 6-다른 팀의 일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스텝들이 다른 파트의 업무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는 실수를 자주 한다. 이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가령 나는 촬영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 이 장면은 무선마이크를 차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네 그래야겠네요" 말은 하면서도 곧바로 흘려내 버린다. 이런 말은 내 판단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혼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분은 녹음에 대해서 무엇을 공부했고 많이 알고 있나?" "녹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인가?" 전혀 아니다. "아니 그게 뭐가 문제야?"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조금 쉽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안다는 착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 나는 촬영팀의 포커스와 앵글을 보고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 이건 렌즈가 50mm가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포커스는 조금 더 빨리 넘어오는 게 좋겠어.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촬영팀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 사람 뭐지? 우리보다 촬영에 대해서 잘 아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촬영팀은 현장에서 촬영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모아둔 팀이라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촬영장을 경험했다고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다른 스텝들을 바보로 만드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건 예의가 아니다. 현장에서 다른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기술자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나는 현장에서 헤드폰을 쓰지 않고 촬영을 하는 감독들을 종종 본다. 소리에 기술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해도 헤드폰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해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건 단지 무지에서 생기는 일이다.


<좁은 길에서의 녹음>

녹음할 때는 어려운 상황이 몇 가지가 있다. 좁은 길을 걸어올 때다. 카메라는 멀리서 줌으로 배우들을 촬영할 수 있지만 붐맨은 마이크를 들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선마이크 말고는 답이 없을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무선마이크가 항상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한 번은 좁은 길에서 배우들이 대화를 하며 걸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촬영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배우들에게 서둘러 무선마이크를 달았다. 배우들이 의상이 너무 살에 붙어 있어서 마이크를 착용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나는 배우들에게 어떤 톤으로 연기를 할 것인지 물어보고 마이크의 세팅 값을 결정했다. 배우들은 친절하게 대사를 말하는 톤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녹음기 앞에 앉는다. 내 마지막 녹음비법!! 나는 종교는 없지만 녹음기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를 한다. "바람아 잠시만 멈추어 다오. 할 수 있다. 너 훌륭해! 두려움이란 마주할 때 가장 줄어든다 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맞지? 아무런 실패도 하고 싶지 않으면 집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된다. 참 고마운 시련이다!! 니 이름이 뭐야? 나 녹음노동자야… 나 녹음노동자야!!!“ 나는 마음속의 불안을 입으로 말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레디 액션" 배우는 걸어오면서 대사를 시작했다. 바람소리도 들어가지 않고 옷에 쓸리는 소리도 없이 배우의 대사는 깔끔하게 녹음이 되었다. "컷!!" "제발 오케이 제발 제발..." "오케이!!!"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런 부담감은 다른 스텝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성취감도 크다.


<몸이 천근만근>

라인맨과 쉬는 시간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 너는 앞으로 녹음기사가 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 육체적으로 편해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어 보입니다.

> (황당하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너무 황당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촬영을 하는 날 나의 걸음수는 평균 2만보 정도이다. 나는 촬영을 마치고 잠이 들 때는 매일 쓰러지듯이 자고 일어날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일기에 기록해 둔 적이 있다.


"수원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새삼스럽게 천근의 무게를 검색해 보니 600킬로 정도가 된다. 굳이 따지자면 아침에 일어나려고 애를 쓰는 내 몸이 한 팔백 근 정도로 느껴진다. 일어나야지 운동가야 해... 어떻게든 운동을 가겠다고 닭가슴살과 계란을 입에 넣고 그대로 잠들어 점심때야 겨우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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