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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비어진 모니터 앞 (1/4)

by 녹음노동자 Mar 30. 2025

*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드라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드라마를 끝내고 나는 한동안 날아가는 기분으로 살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살아오면서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다. 쉬는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형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준비 중인 드라마에 내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왜?" 나는 좀 뜻밖이었다. 작품은 그로부터 조금 더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7월 초 드라마 회의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회의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그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 나는 회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 이만큼 준비했어요 대단하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텝들은 회의가 끝나자 샴페인을 터뜨렸다. "좀 이르지 않나..." 나는 이때 안 좋은 느낌을 받았지만 흥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냥 최대한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근육들이 아파서 서둘러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점점 일어나는 사람들이 생기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몬스터형에게는 간다고 인사를 남겼다. 몬스터형은 “잘해라” 짧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고 나는 진심으로 잘하고 싶었다. 여러모로 참 고마운 형이다.


<촬영시작>

 7월 초, 수원에 있는 야외세트장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항상 일찍 다니는 사람이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세트장으로 도착을 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일찍 엑스트라분들이 이미 의상과 분장을 마치고 세트장 주변에 앉아 있었다. 나는 면접을 보고 오랜만에 만난 팀원들과 인사를 했다. 붐맨은 나보다 나이가 2살 많고 마이크를 드는 경험도 많았다. 그리고 라인맨은 드라마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이고 처음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어두운 새벽 우리들은 모여서 장비를 내리고 촬영을 준비했다. 다들 일찍 와준 것이 나는 감사했다. 아침에 해가 점점 오르자 스텝들이 하나, 둘 모여 장비를 내렸다. 모니터를 놓는 곳에는 큰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곧 CG팀들이 큰 모디터도 설치하고 모니터 옆으로 예쁘게 만들어진 콘티가 걸렸다. 다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촬영 특성상 특효팀이 계속 바람과 분진을 뿌렸다. 배우들의 대사가 있을 때는 강풍기를 끄는 방식으로 녹음을 진행했고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천막 안에서 스텝들은 큰 모니터로 찍은 결과물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자화자찬을 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너무 산만한 느낌을 받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촬영이 시작될 때야 급하게 다음에 무엇을 찍을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 많은 엑스트라분들은 땡볕에서 땀을 뻘뻘흘리고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나중에 시간이 급해지니 다들 촬영현장으로 뛰어갔다. 거창하게 만들어진 텐트에는 큰 대형 모니터와 덩그러니 남겨진 헤드폰 장비들 외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다. 그리고 촬영장의 산만한 분위기는 드라마가 종료되는 때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이때까지는 첫날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점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었다. 촬영은 뒤로 갈수록 점점 서로 간에 험한 고성이 오가게 되었다. 첫날의 촬영을 마치고 나의 생각은 역시 현장이 소란하고, 불명확하고, 산만하다는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몇몇 스텝들은 아주 상처를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 팀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둘의 표정은 괜찮아 보였다. 장비는 먼지를 잔뜩 맞아서 엉망이 되었지만 사람보다 장비를 챙기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촬영현장 실수들 1-파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몇몇 촬영장을 돌아나니며 느낀 촬영현장에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파벌의 정의는 검색결과 다음과 같다. 파벌(派閥)은 주로 이념적 이해관계와 출신 기타의 연고 또는 주의·주장 등의 공통성에 생겨나는 배타적인 사람들의 연관이다. 즉 현장스텝 간에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 촬영장의 윗사람들이 파벌을 만들기 시작하면 곧 스텝들은 자연스럽게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듯이 갈라진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불협화음을 만들면서도 스스로는 겉으로 보이는 얄팍한 정치적 행동에 다들 넘어가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나는 기술스텝이다 절대 그런 싸움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를 위해 모인 스텝들의 편을 가르는 것은 오랜 경험을 갖추지 못 한 행동이다. 권력옆에 붙은 사람들은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배척한다. 곧 권력 옆에는 아첨꾼들이 가득하다. 어느새 드라마현장인지 정치판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과거와 현재에도 여전하고 동서양을 막론한다. 외국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은 자신의 책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드니 루멧은 미국의 영화감독으로 <12인의 성난 사람들><뜨거운 오후><폴뉴먼의 심판>과 같은 명작들을 남겼다. 앞에 숫자는 글이 적힌 페이지이다.


 30, 아첨꾼이나 고분고분한 시종을 고용하는 것은 영화와 나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행위이다.

 157, 우리가 정말 이걸 만들었단 말이야? 우와!! 그리고 자신이 정말 그 정도로 뛰어나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이야 말로 가장 위험하다. 러시를 감상하는 데 필요한 규칙도 있다. 첫째는 웃음소리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숏이 너무 웃겨서 사람들이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부딪치며 박장대소를 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참석하는 사람은 모두 내부인이다. 관객들의 현실감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양한 촬영현장 실수들 2-소란스러운 현장의 분위기>

 촬영현장 분위기 중에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다. 가장 최악은 역시 소란스러운 현장분위기이다. 스텝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떠드는 사람들이 말소리에 정신이 팔리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옆에 떠드는 소리 때문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곧 현장은 더 소란해진다. 우리는 배우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게 조용한 환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떠들기를 좋아한 스텝은 항상 자신이 지금 떠들고 놀아야 하는 시간인지 일을 해야 할 때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윗사람들이 소란분위기를 좋아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어느새 모니터 옆에 있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옆에 붙어있었지만 중요한 말은 정말 한 마디도 없었다. 소란스러운 촬영현장이야 말로 현장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좋은 기준이 된다. 경험이 많은 스텝들이 일하는 현장은 절대 소란하지 않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다.


 "밤씬이 시작되고 비가 그치자 크레인이 세팅되었다. 밤씬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아버지가 위험에서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내 배우는 감정이 잘 잡히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간이 길어지자 모니터 뒤에서는 스텝들이 다시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 결국 촬영현장은 시끄러워지고 산만해진다. 떠드는 스텝들은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주의를 주어도 결국에는 그때뿐이었다. 드라마에 혼돈은 결국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드라마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결국 아내 배우는 감정을 잡지 못하고 다른 컷을 먼저 찍고 나서 다시 돌아왔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되어있었다. 10시 30분에 촬영이 종료가 되니, 결국 밤씬도 몇 개를 찍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배우는 감정을 잡고 무사히 컷을 진행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게 이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같이 떠들 때와 일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 현장에 어른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심각한 분위기에서 탈압박하는 방법>

 촬영현장 분위기가 정치적인 분위기로 바뀌면 사람들은 다른 스텝들이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하려 든다. 이런 문제들이 생길 때 내가 쓰던 방법은 바보인 척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까이 올 때 바보인 척 입을 반쯤 벌리고 녹음을 하는 것이다. 입 가에 침이 조금 고여 있으면 베스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떠나지 않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혼잣말하기 주제는 먹는 것으로 한다. "점심 뭐 먹지 제육... 어제 먹었는데... 그래도 제육... 아니야 돈가스로 할까..." 그럼 가까이 다가와 내 정치적 색깔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뭐야? 이 바보는... 아무것도 모르네 답답한 인간" 하고 돌아서 간다. 나는 "휴~" 긴장이 풀리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다들 드라마를 향해 힘을 합치기도 바쁜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고 있다.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항상 해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곧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에 심각해지고 무거운 얼굴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던 것은 라인맨 동생이었다. 동생은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기사님 뭐 심각한 일 있으세요?"


순수하고 천진한 얼굴로 나를 걱정하는 동생의 얼굴을 본다.


<"심각한 고민이야..."

>"(얼굴이 잔뜩 굳어져서 나를 쳐다본다)..."

<"너는 아이돌 중에 누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냐?"

>"아무래도 장원영 아니겠습니까?"

<"짜식아... 아린이지..."


나는 그러고 폭소를 하고 털어버린다. 애초에 동생과 나눌 수 있는 고민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동생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장난을 치면서 심각한 생각을 털어버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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