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원하지 않는 대학, 원하지 않는 공부, 대학생활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도망가듯이 서둘러 군대로 갔다. 2년 동안 군대에서 생활하는 것을 누구나 그렇듯이 잘 실감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두려워해야 하는 건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고 나는 입대를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학교를 휴학했다. 입대하는 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306 보충대 앞으로 갔다. 여러 장병들이 가족들과 같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주민등록증도 나오고 나 스스로가 성인으로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20살은 참 어린 나이이다. 곧 교관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흩어져서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나도 서서 교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평소에 스킨십은 물론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나눌 만큼 친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감정표현을 못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의 표현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은 표현이다.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였을 것이다. 교관의 방송이 끝이 나고 가족들은 바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홍아 잘 갔다 온나.." 돌아보는데 아빠의 눈이 촉촉했다. 빌리엘리어트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는데 그건 엄마가 또 군대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지만 교관의 말에 따라 병영으로 뛰어 들어갔다.
<훈련소>
잠깐 수련 캠프 같은 곳에서 며칠 잠을 잔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경험은 군대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2년 동안은 군대가 집이다. 훈련소에서 하루 종일 땅바닥을 뒹굴고 나면 모래가 침상 위에도 가득하다. 다들 청소를 잘하지 못해서 그냥 그 위에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대학교를 가도 사실은 비슷한 성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둔다. 하지만 군대는 딱 대한민국의 평균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친구는 빵을 수통에서 발효시켜 술을 만들기도 했다. 내 바로 위에 사채업자 선임은 항상 혼을 낼 때 “오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데 순서 없다"는 협박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박지성이 2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뉴스를 보고 진짜 심장이 1개인지 2개인지에 관해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싸우는 경우도 있다. 참 개성 있는 사람들이 같이 훈련소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제식훈련에서부터 주가 넘어갈수록 훈련의 난이도는 높아졌다. 훈련의 꽃은 4주 차에 하는 각개전투 훈련일 것이다. 밤까지 훈련이 이어지는데 별을 보고 누워서 어머니의 은혜를 부른다. 여린 친구들 몇 명은 눈물을 보인다. 아빠는 잠깐 귀 닫아.
<내면의 목소리>
군대에서는 맛있는 간식을 챙겨 먹기 위해서 주말 종교행사에 가야 한다. 들려오는 간식의 소문에 따라 매주 종교는 바뀐다. 한 번은 불교행사에 갔는데 스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석가가 왜 힘든 수련과정을 겪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그 수련을 따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석가가 그 고생스러운 수련을 한 것은 다음 사람은 석가 다음의 고민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군대에 점점 적응을 하고 시간은 흘러 첫 휴가를 나왔다. 집으로 도착하는데 엄마는 맛있는 음식으로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았다. 서로 헤어지고 나니 애틋함과 그리움이 고였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다. 공부가 멀어지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는 조금 회복이 되었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점점 계급도 올라가고 훈련을 받는 시간 외에도 조금은 개인적인 시간이 생겼다. 시간이 생기면서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과는 전혀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의 단점은 정말 많지만 그래도 나 개인적으로 좋은 점이라 생각을 한다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 군대에서 나는 다시 숨겨두었던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의 잡음도 들리지 않고 내 목소리에 집중을 하는 시간이다. 나는 내 안에서 잠재우고 있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군대에서의 결심>
나는 오래 동안 고민을 하고 대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들이 있었는데 이대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대학, 원하지도 않는 공부, 원하지도 않는 직장을 참아내고 살 자신이 없었고 결국에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의 말년휴가 때 나는 다시 한번 부모님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집에서 허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였다. 그래도 중요한 건 다시 한번 노력을 해 보는 것이다. 이건 그 당시 나에게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차곡차곡 대학에서 공부할 등록금을 마련해 두셨을 것이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의 결심은 꽤나 단단한 것이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부모님을 마주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다시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말을 했다. 내 결정은 아버지 어머니의 노력을 물리는 속상한 일이다. 부모님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고쳐먹지 않는 나를 답답하게 생각하셨다. 부모님은 나에게 다시 대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마치라는 설득을 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 나는 “알겠습니다”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다음 선택으로 "집에서 나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먼저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말년휴가에 나는 아침 일찍 일용직을 나가 돈을 조금 모았다. 어머니는 내 행동을 수상하게 여겼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시 군대로 복귀하는 날, 군대에서 며칠밤만 잠을 자면 전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역을 하고 집으로 다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나는 군복 말고 입을 옷을 조금 챙겼다. 너무 많은 옷을 가져가면 부모님이 의심할게 뻔하니까 밖에서 입을 옷 딱 한 벌만 챙겼다. 어머니는 의아해서 옷은 왜 챙겨가냐? 물었지만 나는 대충 둘러대고 군대로 복귀했다. 나는 다시 한동안 못 볼 부모님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사기꾼>
나는 서울역에 내려서 부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서울역에서 어떤 중년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군대에 있는 자식을 보러 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곤란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보통 길에서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전화로 불우이웃을 돕는 전화를 하면서 금액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행복해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추악했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기꾼들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돕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당시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가서 아저씨가 부탁하는 돈보다 많은 돈을 드렸다. 아저씨는 연락해서 돈을 꼭 갚겠다는 말을 했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은 돕는데 인색해졌다. 모든 일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진하고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연락이 없었고 내가 당한 일은 당시 유행하는 흔한 사기였다. 말년휴가에 일용직을 나간 일은 허사가 되어버렸다. 사기를 당하는 않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사람이 마음먹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 든다면 사실 피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사기가 만연하고 경제범에 대해서는 살인죄만큼 죄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사기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비해 덜 악하지 않다.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피해자의 영혼을 죽이기에 그 악함이 부족하지 않다. 실제로 사기를 당하면서 비관하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한 사람들 얼마든지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영혼들이 병들고 죽어나가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내가 사람을 죽였냐는 뻔뻔한 태도로 나올 것이다. 보이스 피싱, 전세사기, 중고거래사기 같은 일은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국가에서 마땅한 벌을 주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기 행각을 결국에는 긍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