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의 시작>
말년휴가가 끝나고 군대로 복귀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편지를 통해서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고 내가 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등기로 우편을 붙이니 전역을 하기 전에 먼저 편지가 집에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결정을 하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결정을 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행동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뒤에 일어나는 일들은 조금 고생스러운 일들이다. 군복무기간을 다 채우고 나는 7월 29일 만기전역을 했다. 항상 아침 구보를 시작하던 공간에서 간단한 전역식이 열렸다. 나는 1년 10개월 동안 같이 고생한 동기친구들과 사회로 나왔다. 친구들과 나는 지하철역 앞 중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축하주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마신 독한 술에 일어나자마자 휘청했지만 기분은 몹시 좋았다. 식사를 계산하고 내 주머니에는 20만 원이 남아있었다. “고작 20만 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10년 기준 거의 병장 2달치 월급이고 서울역에서 당한 사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고시원 생활>
일단 나는 먼저 알아봐 둔 고시원으로 이동해서 방을 잡았다. 고시원 방값은 30만 원이 넘었는데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20만 원을 먼저 드리고 "이번 주에 남은 돈을 꼭 드리겠습니다” 약속을 하고 방 키를 받았다. 방은 다리를 겨우 뻗을 수 있을 만큼 좁았고 이불은 너무 해져서 안에 솜이 다 보였다. 저녁이 되자 나는 배가 고파졌다. 나는 20만 원을 내고 남은 부스러기 금액이 있지 않을까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는 샌드위치 하나를 가지고 계산대로 갔지만 한도초과가 떴다. 한도초과 무슨 말이지? 그 뜻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말이구나 눈치껏 이해를 했다. 조금 저렴한 샌드위치로 계산해 볼까 다시 가져가 보았지만 역시 한도초과가 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민망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고시원에서 무료로 지급이 되는 밥과 김치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이 이런 선택을 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하고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하지만 나는 촬영스텝이 되기로 했다. 후에 나는 우리나라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선생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박남옥 감독님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위해서 서울로 가려고 했지만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박남옥 선생님은 밥을 먹을 때 국수에 젓가락을 꽂아놓고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우면서 서울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보았다. 박남옥 선생님은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진실로 사람은 스스로가 인정하는데 까지가 한계인 것인가? 나는 나와 비슷한 영혼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고다르의 말처럼 “우리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피곤함은 많을 생각을 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방값 벌기>
나는 전역을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일용직을 시작했다. 아침에 조용히 고시원 방을 나와서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마땅한 작업복도 없어서 군복바지와 전투화, 집에서 가져온 티셔츠를 대충 입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힘을 쓰는 것뿐이었다. 애를 썼지만 일을 부리는 아저씨들은 영 시원찮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고시원으로 돌아오니 녹초가 되어버렸다. 나는 돈이 생기자 바로 남은 고시원 금액을 지불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아주 작은 돈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고시원 앞 포장마차에서 튀김과 순대를 사서 고시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서울의 야경을 볼 여유도 생겼다.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충분히 바람을 쐬다 지하에 있는 피시방으로 향했다. 나는 영화인들의 구인구직 사이트를 이용해서 계속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다. 곧 영화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추위와 배고픔>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배고픔이 찾아왔다. 나는 20살이 넘도록 춥고 배고프다는 말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어릴 때는 시원하고 따뜻한 곳에서 공부만 했기 때문에 춥다는 말을 알 기회가 없었다. 처음으로 춥다는 것을 느낀 것은 군대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인데 손끝과 발끝이 시려서 주먹을 움켜쥐고 계속 발을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고 고통을 잊어버리고자 선임들과 그렇게 재미없는 농담을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고프다는 말은 고시원에 와서 알았다. 고시원에는 밥과 김치가 무료로 제공이 되었다. 당장 배가 고프면 밥과 김치는 먹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밥과 김치를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 반찬이 없으면 포만감을 느끼기 힘들구나. 전에는 반찬 없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군대에서도 밥과 반찬은 잘 주었다. 부모님이 마련한 보금자리에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기만 했으니 배고픔이라고 하는 것도 잘 몰랐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랐는지 깨달았다. 나는 일용직으로 번 돈으로 방값을 내고 남은 돈으로 어떻게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남은 돈으로 최대한 저렴한 스팸과 옥수수통 캔을 밥과 같이 볶아 먹으니 그나마 조금 포만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배가 불러 방에 앉아있는데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뭐야? 밥 누가 다 먹은 거야?"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죄송합니다. 범인은 저예요..."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영화사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영화사에서는 면접을 보러 오라고 말을 했다.
<주인은 눈치를 안 본다>
주인은 눈치를 안 본다.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정말 정말 정말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나는 영화관에 갈 때 다른 사람과 가지 않는다. 옆에서 같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재미있나? 재미없나? 영화를 보는 내내 옆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이가 30에 가까워질 때까지 옷을 골라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옷이야 사면되지 않냐?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을 잘하지 못했다. 나는 옷을 잘 고를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친구가 “이 옷 어때 예쁘지 않아?”라고 물어보면 단순히 옷이 예쁜지 아닌지에 대한 말도 판단도 하지 못했다. 가끔 친구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이다. 나 스스로 예쁜지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다. 나는 옷이 별로 없어서 나의 몸과 옷에서 나는 냄새는 끔찍했다. 그 정도가 심해서 같이 일을 하는 스텝이 안 입는 옷을 집에서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나는 30살이 넘어서야 겨우 혼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옷을 사서 입을 법을 터득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고 사회성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달라지고 싶고 변화하고 싶었다. “오타쿠”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넓은 의미로는 “어느 한 분야에 광적으로 파고들고 분석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흔히 “일본 애니메이션풍 콘텐츠 서브컬처 문화를 취미로 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지하철을 지나가다 보면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이 큰 지하철 광고판에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붙여두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지하철을 지나가는데 만화 캐릭터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놀랍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햄버거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떤 여성이 햄버거를 먹지 않고 해쉬브라운이라고 하는 감자를 다진 튀김을 10개가 넘게 잔뜩 쌓아서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는 너무 놀랍고 믿기지 않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었다. 혹은 없는 척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지 알면 눈치 보고 살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형체가 없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다면 있는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심한 모습을 보면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이것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큰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긍정적인 기억이 쌓여야 한다. 스스로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무슨 옷이 예쁜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먹고 싶은 것 혹은 입고 싶은 것을 말할 때 “다른 사람의 기대”를 바라서는 안 된다. 온 세상이 흔들려도 나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지만 반대로 내가 흔들리면 온 세상이 흔들려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예쁘다고 하는 것과 상관없이 내가 무엇을 입고 싶은 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항상 우리는 스스로의 진실된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