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여행이란 가면 가지만, 굳이 먼저 나서서 찾진 않는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여행도 많이 다녀 본 사람이 다니고,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쓴다는 말이 있듯이,
어릴 적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족여행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한두 번씩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어,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자주 떠나기 마음먹었다.
여행은 대부분 남자친구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작년 여름엔 일정이 맞는 친구들이 없었다.
물론 남자친구도 없었다. :)
그래도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아쉬웠던 긴 여름휴가를, 내 사랑 할머니와 함께 하기로 했다.
한 번도 할머니랑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은 없어서, 나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계획을 세웠다.
또래와 가는 것이 아니기에,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와 음식점으로 일정을 가득 채웠다.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떠난 여행길은 생각보단 유쾌하진 않았다.
몇십 년 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열심히 검색해서 갔던 맛집은 할머니 입맛엔 맞지 않으셨고, 괜스레 마음 한구석에 속상함만 쌓여갔다.
더 구경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할머니가 혹시라도 피로하실까 쉴 틈 없이 확인하기 바빴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릴 겸, 나는 할머니와 광안리 앞바다 벤치에 앉았다.
저녁도 먹었고 숙소도 바로 앞이어서, 더 이상 길을 검색하며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되어 맘이 편했다.
바다 앞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살짝 출출해진 나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캔맥주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땅콩 과자를 샀다.
벤치에 돌아오니, 광안리 앞바다를 배경으로 기타를 메고 온 사람들이 버스킹을 시작하고 있었다.
애달픈 이별노래부터 잔잔한 사랑노래들이 한여름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절정을 향해가는 버스킹에, 이미 바다 앞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노래에 집중하신 할머니의 옆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몰려왔다.
비록 고단했던 여행길이었지만, 할머니와 처음 여행을 오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청년들,
미소를 띠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부부들,
잠에 든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엄마,
속삭이며 웃고 있는 커플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노래에 멈춘 사람들,
신기하다는 듯 동영상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
우리의 여행은 그리 거창하지도, 또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몰이 일렁이는 한여름 바다,
톡 쏘는 시원한 맥주,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잔잔한 노래.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평온했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느껴지지 않는 온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오늘은 안녕히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