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들어가며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또는 알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단어를 쓰다 보니 그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경우 사전을 뒤적이게 된다. 사전에서 단어의 뜻을 확인하면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단어 하나에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또 단어가 규정하는 어떤 범주가 협소하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단어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쓰임이 어떤 변천사를 겪게 되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애써 궁금증을 해소할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는 뭔가에 꽂혀서 집착을 넘어 천착하고 있을 때다. 말 그대로 깊이 알고 싶은 것이고 깊이 알려고 하는 과정에서 내가 엄청난 쾌락을 맛보고 있기 때문에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며 그 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른 이익이 존재한다.
근 몇 년 동안 내게 엄청난 쾌락을 선사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동물 動物’이다. 실제 동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동물에 대해 공부할수록 동물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동물은 한자어이고 움직일 '동動'에 물건을 뜻하는 '물物’자를 합친 말이다. 움직이는 사물. 그러니까 움직이는 모든 사물은 동물이 된다. 그런데 실제 동물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개, 고양이, 사자, 호랑이, 말 등처럼 비인간에만 한정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미소 단위의 동물에는 박테리아, 세균, 바이러스 등의 용어를 쓰며 그것은 또 동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가장 명확한 차이가 있다면 인간 종을 동물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동물은 뭔가 애매하게 차별적이고, 명확하게 범주를 정하기에 적합한 말이 아닌데 마치 그 단어가 어떤 범주를 정확히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어류, 곤충 등 일련의 움직이는 이 사물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될수록 ‘동물’이라는 단어는 내게 통상적 의미보다 정확히 직역된 의미, 즉 ‘움직이는 사물’이라는 아주 폭넓은 의미로 다가왔다. 각각의 사물들을 움직이는 어떤 의도의 총합이 향한 곳이 지금 지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동물이라는 단어는 범주의 의미보다는 어떤 작용의 효과를 담고 있는 단어이고 그 효과를 만들어낸 목적에 대해 알고자는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되었다.
서두부터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의 방식이 어떤 동물을 정의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나는 동물과 관계 맺고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 역시 동물이며, 모든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단지 나라는 필터를 거쳐서 드러낼 때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 탐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밝힌다. 그래서 어떤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동물을 만나 일어나는 나의 행동이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나의 서사나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인간 역시 ‘동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을 동물의 범주에 넣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차치하고, 마지못해 인간도 동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는 흔한 말은 ‘인간도 동물이다. 그러나 여느 동물과는 다르다.’라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되받는 말로 하는 말이 있다. 동물로 칭하는 무수한 동물 중에 여느 동물과 같은 동물은 없다고. 내가 동물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다 못해 단어의 의미까지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동물 중 하나임을 받아들일 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층위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기도 하고 내 안에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내 안에 새로운 동물이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