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었다. 아침 해는 부쩍 부지런히 움직였고, 바깥 날씨는 10분만 땡볕에 서있어도 겨드랑이가 뜨뜻해지며 그늘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아이.. 그냥 반팔 입을걸.' 하게 하는 그런 날씨.
이른 아침 아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어린이집을 땡땡이친 우린, 집 근처 카페에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층 공동현관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1층의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돌았다. 곰팡이 냄새는 아닌데 오랜 세월 비질에 쓸리고 단단해지며 세월을 머금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시원한 내음을 맡고 7살 난 아이는 "으흠~ 난 이 냄새가 좋더라!" 하며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아마 먼 훗날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를 기억하면 오래된 아파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로 어린 시절을 기억하겠지.
하필 엘리베이터는 탑층인 15층에서 내려오는 중이라 아이의 수다가 길어질 때쯤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으며,
"제발 우리 엄마가 집에 가서 나랑 놀게 해 주시소!" 한다.
뜬금없는 종결어미와 이상한 말투를 쓰는 아이가 웃겨 뭐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당찬 표정을 하며 말한다.
"엄마 이거 모르지? 하늘나라 사장님한테 소원 빌 때는 원래 뭐뭐 해주시소!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엄마도 해봐."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담쓰담하며 쪼그려 앉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눈을 바라보며 '하늘나라 사장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는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땅에 사는 사람이 뭐 뭐 해 주시소! 하고 소원을 말하면 하늘나라 사는 사장님이 소원들어줘! 알라딘의 지니 같은 거야. 부자가 되게 해 주시소! 공부 안 하게 해 주시소! 이렇게 기도하면 돼.
아이는 반짝이는 눈을 하고 신문물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남편과 나는 특정할 종교를 딱히 가지고 있지 않지만, 결혼 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갖든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자 약속했었고, 불교의 신은 누구인지, 기독교의 신은 누구인지, 천주교의 신은 누구인지, 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았기에 아이는 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냥 아이의 말버릇일 뿐인 그런 호칭. 하늘나라 사장님 뿐만 아니라 아이는 모든 직업 끝에 사장님을 붙이는 버릇이 있다.
엄마가 일하는 영어학원 사장님, 기차 운전해 주는 사장님, 비행기 운전하는 사장님, 버스 사장님, 키즈카페 사장님, 스타벅스 사장님, 청소해 주는 사장님 등등.
버릇없는 말이면 정정해 줄 테지만 누군가를 높히는 말이기도 하고, 곧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학생이 되면 더 이상 쓰지 않을 요상하고 귀여운 말이기에 굳이 고쳐주지는 않고 있다. 일반 고객에게 사장님, 사모님 소리 하면 더 잘 사는 것처럼, 신도 사장님 소리 들으면 소원을 더 잘 들어주지 않을까?
이김에 나도 빌어볼까?
하늘나라 사장님,
우리 가족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