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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May 27. 2024

거짓말하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feat.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계를 대는 아이에게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엄마 우주만큼 사랑해요."가 다였던 아이가 훈육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핑계와 거짓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아니.. 근데 이게 왜 다 보이지?'

내가 어렸을 때, 무언가 잘못했을 때, 엄마가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상황과 이유가 아이의 얼굴에서 그대로 보였다.

내가 어린시절 엄마가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나중에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치밀하게 숨기고, 더 디테일하게 거짓말을 지어냈던 기억이 있다. 그 거짓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눈을 요리조리 굴리고 짱구는 또 굴려댔던지. 거짓말을 하고 나서는 걸릴까 봐 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예쁜 얼굴로 웃고 있는 이 아이가 혼날만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꾸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랑 기분 좋게 놀다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면 목이 아파서 못 가겠다고 운다던지, 또 어느 날은 하원 후 간식을 잘 먹다가 학습 패드를 시키면 금방 다했다고 하고 놀았는데 매주 한번 아이의 학습진도를 체크해 주는 튜터가 아직 학습 몇 개가 학습되지 않았다고 연락이 온다던지 하는. 어린이집을 빼먹는 일의 경우 정말 아픈 일이 아니라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고 보냈지만, 학습의 경우는 사실 목적이 초등학교 들어가서 40분 동안 학습할 수 있도록 엉덩이 힘을 기르기 위함이라 어린 나이에 공부에 질리지 않게 몇 번은 모른 척도 해주었더니 갈수록 빈도가 잦아들었다.


'더 놔두면 습관 되겠는데? 아니 벌써 습관이 된 건가?'


고민되었다. 아이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할까 아니면 좋게 타이를까. 하지만 경고를 한들 어린 시절 나처럼 다음번엔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치밀하게 연기를 할 걸 알기에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싶어 아이에게 "우리 오늘은 학습 패드를 하지 말고 엄마랑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볼까?" 하니 좋다고 침대로 폴짝 뛰어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사랑스럽게 내 한쪽 팔을 베고 백허그를 하듯이 옆으로 파고든 아이를 감싸 안고는 침대 옆에 둔 명심보감을 꺼내 들었다.


착한 것이 작다고 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고,

악한 것이 작다고 하여 행동해서도 안 된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아이는 이 책을 참 좋아했다. 이 책은 7살 아이도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었고, 내가 인물마다 과장되게 읽어주면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웃음보 터져 입을 가리며 같은 걸 또 읽어달라고 큭큭 웃어대기도 했다.

오늘 핵심 내용은 이랬다. 친구 두 명이서 길을 걷다가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한 친구가 "도대체 누가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 거야!!"하고 다른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니 그 친구의 얼굴이 빨개지며 "왜 나.. 나를 쳐다봐? 누.. 누가 버렸지?" 하며 실은 자기가 몰래 버렸던 쓰레기를 급하게 청소하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이 짧은 몇 컷 안 되는 만화를 과장되게 읽어주며 오늘도 큭큭대며 입 가리고 웃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 것 같아?"


사랑스럽게 고양이마냥 내 팔에 자기의 볼을 비비는 아이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말?"


아직은 문해력이 올라오지 않은 아이는 수박 겉핡기 식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말이 길어지면 아이의 흥미가 잃을 수 있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다시 물었다.


"맞아.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면 안 돼. 그것도 맞는데..  음.. 친구가 쓰레기를 버린 줄 몰랐지만 다른친구가 "누가 버린 거야. 도대체!!"하고 화내니까 쓰레기 버린 친구가 막 말을 더듬었어. 왜 그랬을 것 같아?"


"아! 나 알겠어. 자기가 버려놓고 친구가 "누가 버린 거야!!"하니까 마음이 따끔따끔했나 봐."


아이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조그마한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댔다. 정답을 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과 함께.


"맞아. 원래 누군가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면 들킬까 봐 여기 마음이 따끔따끔하거든. 나쁜 일은 아무리 작은 거여도 하고 나면 마음이 엄청 따끔따끔해. 그걸 양심에 찔린다.라고 말하는 거야. 이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지?"


아이에게 명심보감에서 나오는 구절에 대한 뜻을 설명해 준 후 일부러 잘 모르지?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원래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니야. 엄마. 그런 거잖아. 공부를 안 했지만 놀고 싶어서 엄마한테 공부를 했다고 하면 나중에 안 한 거까지 더해야 해. 근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려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하잖아. 혼나기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만 꾹 참고 용기를 내고 거짓말을 하면 안 돼."


아이가 자신의 일에 빗대어 대답했다.


"맞아. 거짓말은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용기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거든. 한 번 거짓말하면 그걸 들킬까 봐 또 다른 거짓말하고.. 어휴.. 그러면 너무 못난 사람이다. 그치? 그렇게 양심을 속이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양심에 털 났다고 해. 엄마는 네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그럼 너무 멋질 거 같아."


그러자 아이가 백허그 형태로 안고 있던 나의 팔을 풀어 뒤돌아 나에게 폭 안겼다. 나도 꼬옥 안아주었다.







그날 밤이었다.


남편이 퇴근할 때 아이와 나는 늘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데 그날 밤에도 우린 꼭꼭 숨어 있었다. 이건 남편과 내가 구남친 구여친 시절부터 이어진 하나의 전통? 같은 놀이였다.

연애시절, 지방 살던 남자친구가 나와 만나면서 서울에 있는 우리 회사로 이직을 하고 남자친구가 회사 근처로 자취방을 얻었었다. 남자친구보다 1시간 먼저 끝나는 나는 늘 남자친구가 오는 시간에 맞춰 빨래가 널린 건조대 사이에 숨거나 장롱에 숨어 남자친구가 나를 찾을 때까지 몸을 웅크려 숨어 있곤 했다. 그러면 남자친구가 퇴근 후 내가 어디 숨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어디 갔지?" 하며 나 몰래 핸드폰으로 숨어있는 나를 찍으며 킥킥거리며 웃기도 했다. 가슴 콩닥콩닥함, 남자친구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너무 웃겨 그게 결혼 후 우리 집 전통이 되었다.


그날도 역시 퇴근 후 들어온 남편이 여김 없이 숨어있는 우리를 찾기 시작했고, 먼저 들킨 아이와 남편이 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다. 장롱, 베란다, 화장실, 식탁 밑 한참을 찾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방 베란다 책장 뒤 화단에 숨은 나는 절대 들키지 않는다는 짜릿함에 혼자 숨죽여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남편방 장롱을 열며 하는 소리가 들었다.


"이게 뭐지? 이거 산타할아버지가 작년에 선물 줬을 때 그 포장지인데.. 이게 왜 여기 있어?"


눈썰미가 좋은 아이의 말에 숨어 있던 나는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안 그래도 작년 크리스마스, 그때도 아이가 선물을 보곤 왜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있는 하얀색 테이프(스카치 반투명테이프)로 포장을 했냐며 우리 집에서 포장한 거 아니냐고 물어봤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짜잔-하고 호다닥 화단에서 나와 아이도 놀라고 남편도 놀라고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된 듯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무 일 없던 듯이 놀다가 샤워를 시키고 잠자리에 드려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거짓말은 용기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그래서 "응 그렇지." 하며 쏟아지는 잠에 눈을 감으며 아이를 껴안았다.


"엄마 솔직하게 말해줘. 사실 그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준 게 아니라 엄마아빠가 준거였어?"


금세 꿈나라로 빨려들어갈듯 잠에 드려는데 누가 머리채 잡아 현실로 끄는 느낌을 받으며 확 눈이 떠졌다.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아이들은 절대 이런 건 잘 잊어버리지도 않는.


'어떻게 말하지..? 오픈하는 게 맞나? 아직 어린가?' 그 짧은 찰나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응 사실은.. 산타할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려서 엄마빠한테 부탁을 했어. 그래서 엄마아빠가 선물 포장한 거야..."









용기가 없는 사람.

거짓말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그런 못난 사람.

양심에 털 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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