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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혁 Jun 08. 2024

도시의 아이들은 자란다

우리들은 자란다 - 미드의 자아 형성 이론


1.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한국의 저출산 현황에 깜짝 놀란 미국 석학의 반응으로 최근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밈이 되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정말 심각하기는 하다.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 9,200명 줄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지난해보다 0.06명 감소한 0.72명을 기록하였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합계출산율 1.5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다. 이렇게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생산성을 비롯해 사회 전반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한국 저출산에 깜짝 놀란 미국 교수님


    아마 과거에는 한국이 이런 국가 위기급 초저출산 문제를 겪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60년대 생인 김 씨의 어머니 세대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학교에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 2부제, 3부제 수업도 했었더랬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김 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한 학년에 40-50명씩 16 학급 정도가 있었다. 현재는 한 학년에 대략 20명씩 4-5 학급이라고 한다. 한 학급에서 두 팀으로 나눠 축구 경기(11:11)도 못하는 수준까지 왔다.


1970년-2023년 출생아 수 및 합계출산율 추이 (통계청)


    그럼 이렇게 귀하디 귀한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역별 통계를 살펴보면 도시지역보다 농촌지역의 합계출산율이 더 높다. 합계출산율 상위 10곳은 전남 영광군, 전남 강진군, 경북 의성군을 포함해 모두 농촌지역이다. 반면에 합계출산율 하위 10곳은 도시지역으로, 대부분 서울의 자치구이다.



    농촌지역이 도시지역보다 합계출산율이 높다고 해서 아이들이 농촌에 모여 살고 있을까?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히려 도시에 살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전국 아동인구의 대략 20%가 합계출산율이 가장 적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경기도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서울-경기권에만 전국 아이들의 50%가 살고 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건 농촌지역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커가는 곳은 도시인 것이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아이들은 10세 이전부터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부모님의 직장, 아이들의 교육, 병원과 여가시설 등의 인프라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농촌지역보다 도시지역이 아이들에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도시에서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아이들은 수도권에 모여 산다




2. 미드의 자아 형성 이론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까?'라는 물음에 바로 떠오르는 사회학자는 조지 허버트 미드(G. H. Mead)이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을 가르치던 미드는 평소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 많은 저작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명강의에 감명받은 성실한 학생들의 강의노트 덕분에, 현대사회학과 사회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드의 대표작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Mind, Self, and Society)'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콧수염이 정말 멋진 미드와 그의 대표작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


    이 저작에서 미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으로 여겨지는 '자아(self)'와 사회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개인이 사회에 우선한다는 기존 심리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미드는 사회학의 관점에서 자아 형성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자아라고 하면 주체성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드는 완전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 '자신을 객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자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게끔 '내가(주체)' '나를(객체)' 알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드는 주어 I(내가)와 목적어 me(나를)의 차이를 통해 이러한 자아의 주체성과 객체성을 설명한다.

    I는  우리가 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개인적이고 능동적인 자아이다. 즉흥적이고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한편, me는 객관적인 자아로, 타인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사회적 차원의 자아이다. 사회적 관계를 의식하고 사회적 규범에 통제된다는 특징이 있다.

    미드에 따르면 자아는 I와 me 사이의 내적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I와 me의 균형으로 어떠한 상황에 자발적으로 반응하되, 그 반응이 사회적으로 적합한지 스스로 점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진정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 덕분에 우리는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사회 규범을 따르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아는 I와 Me의 내적 대화이다

    

    미드의 I와 me 구분에 근거하면 갓 태어난 유아는 진정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타인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회적 관계와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적 자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진정한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드는 아이들의 자아 발달 단계를 통해 자아 형성 원리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미드와 함께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 아이들의 자아 발달 단계


    미드에 따르면 아이들의 자아 발달에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3살에서 5살 정도에 경험하는 '놀이 단계(play stage)'이다. 놀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타인의 역할을 취하고 놀면서 점차 타인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는 엄마 역할을 해보면서 엄마와 본인의 관계를 이해하고, 엄마의 시각에서 본인을 생긱해볼 수 있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될 수 있는 자아 형성의 시발점이긴 하지만, 놀이 단계에서는 아직 명확한 한계가 있다. 놀이 단계의 아이들은 '의미 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의 역할만 한정적으로 취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선생님도 엄마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배우는 '엄마'가 '보편적인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즉,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본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의 역할만 이해한다. 병원 놀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직접 만나 본 특정한 의사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지, 보편적인 의사의 역할을 파악하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이모-할머니 혹은 의사-간호사-환자 등 타인들의 일반적인 역할과 사회적으로 조직된 관계를 아직 연결 지어 이해하지 못한다. 김 씨도 어렸을 때 할머니가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꽤나 놀랐다고 한다.

   

의미 있는 타인의 역할을 배우는 놀이 단계


    그다음 단계는 6-7세 정도에 경험하는 '게임 단계(game stage)'이다. 게임 단계에서 아이들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게임에 참여하면서 게임의 룰과 타인들의 역할, 그리고 관계 속에서 부여되는 본인의 역할을 배우며 사회적 자아로 나아간다. 축구 경기를 생각해 보자. 축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축구 경기의 규칙을 숙지해야 하고, 자신은 물론 각 선수들 포지션의 역할도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스트라이커가 윙어의 크로스를 예측하고 골문으로 뛰어들어가 헤딩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게임 단계가 확장되면 아이들은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의 개념을 학습하고, 비로소 완전한 자아를 형성한다. 일반화된 타자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타인들을 의미한다. 개별적이고 개성적인 타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규범과 기준을 따르는 '일반적인' 타인이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 빨간불에 멈추고 초록불에 길을 건너는 보행자, 손님을 친절히 응대하고 커피를 만드는 카페 직원 등, 우리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타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인 셈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의 태도와 규범, 그리고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내면화하여 일반화된 타자의 역할을 배운다. 일반화된 타자의 역할을 알고 있으면 사회적 기대와 규범에 근거하여, 모르는 사람과도 원활한 사회적 교류가 가능해진다. 아직 일반화된 타자의 개념을 학습하지 못한 영유아들이 어린이집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면 사회적 교류를 나눌 수 있게 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 일반화된 타자의 개념을 이미 내면화한 중·고등학생들은 새 학기에 담임 선생님을 처음 만나더라도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서로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류를 시작할 수 있다. 이 과정까지 거치면 아이들은 드디어 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되고, 사회가 기대하는 성숙한 자아를 형성한다.


사회 규범과 관계 속에서 타인의 역할을 배우는 게임 단계 (짱구는 못말려)




4. 도시의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의 자아 발달 단계에서 간과하면 안 될 전제 조건이 있다. 앞서 논의한 자아 발달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일단 아이들이 모이고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는 아이들의 자아 발달에 적격인 공간이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고 교류한다. 도시의 아이들은 놀이터, 공원,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규범을 배운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아이들의 자아 형성에 큰 의미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공공장소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마트에서 물건은 어떻게 사는지, 또래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도시를 오고 가며 일반화된 타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아이들은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자아를 형성해 간다. 즉, 도시는 아이들이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대한 학교인 셈이다.

    그러나 2020년에 이 거대한 학교가 무너진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한 코로나가 도시를 봉쇄하고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건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코로나와 함께 자란 일명 '코로나 키즈'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느라 타인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학교 수업이 인터넷으로 옮겨지면서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마스크를 쓰면서 언어 사용과 대화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혼자서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면서 사회성에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고립된 아이들의 사회적 자아 발달이 지연된 것이다!


코로나 키즈의 발달 문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시 봉쇄와 사회적 거리 두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코로나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를 남겼다. 우리는 이제 집단보다 개인이 편하고, 대면보다 비대면이 익숙하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잘 자랄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들의 자아 발달의 본질을 꿰뚫는 속담이다. 아이들이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잘 자라려면 이제 '도시'가 다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도시는 아이들에게 과연 친화적인가? 개인화된 도시의 어른들은 세상에 나오는 아이들을 품어줄 준비가 되었을까?

    파편화된 도시를 다시 봉합하기 위해 우리 도시에는 아이들과 세상을 안전하게 연결시킬 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공공공간, 아이들이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 그리고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세상을 알려줄 어른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도시가 아이들에게 더 친화적인 공간이 된다면 저출산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달리는 버스에서 세상에 궁금한 게 어찌나 많은지 끊임없이 엄마에게 재잘거리는 아이와 눈을 마주친 김 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오늘도 도시의 아이들은 자란다.


오늘도 도시의 아이들은 자란다





조지 허버트 미드(1863 - 1931)

    미드의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미드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멋진 콧수염과 뾰족한 턱수염을 가진 덩치 크고, 인상 좋고, 자상한 교수님."

    미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철학에 기반한 사회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오벨린대학(Oberlin College)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미드는 하버드대학(Havard University), 독일의 라이프치히대학(University of Leipzig), 베를린대학(University of Berlin)에서 공부를 이어나갔으나 석사, 박사학위는 받은 적이 없다.

    저명한 철학자 존 듀이의 초청으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 자리 잡은 미드는 사회심리학을 가르치면서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미드의 자아 형성 이론은 자아 연구가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그렇기에 사회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증명하며 미시(micro) 사회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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