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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혁 Jun 15. 2024

인스타그래머블 시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1. 소비하는 인간


    크리스마스 이브가 다가오는 어느 새벽 시간, 매서운 겨울 찬기에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수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며 서 있다. 겨울철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는게 아니냐고? 모습이 비슷하긴 한데, 이들이 추위를 견디며 긴 줄을 서 있는 이유는 바로 ‘소비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굳게 닫힌 백화점 문이 열리는 동시에 재고가 떨어지기 전 무언가를 사려고 ‘오픈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사야 할 물건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명품’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명품 소비 1위 국가라고 한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더 큰 미국, 중국보다도 개개인의 명품 소비 비용이 더 크다.


오픈런도 불사하는 명품 사랑


   물론 우리 인간은 늘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명품을 사랑하는 현대 사회의 소비는 과거의 소비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비바람을 막아줄 방 한 칸, 계절에 맞는 옷, 풍족하진 않아도 굶어 죽진 않을 정도의 쌀과 음식 등, 과거에는 말 그대로 필요한 만큼 ‘먹고살기’에 초점을 맞추어 소비하였다. 청빈낙도(청렴결백하게 살고 가난하게 살며 도를 즐긴다) DNA를 가진 민족답게 경제력에 따라 검소하고 알뜰한 소비가 미덕이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 ‘아산 정주영 회장님’도 평소 필요 이상의 소비를 자제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누구보다 돈이 많지만 검소하게 사셨다는 정주영 회장님


    오늘날은 좀 다르다. 우리는 당연히 정주영 회장님보다 돈은 없을 테지만, 어쩌면 비싼 구두가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필요한 것이 충족되었을지라도 소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오직 한 번뿐)'와 'FLEX(힙합문화에서 유래되어 부와 성공을 자랑하는 소비를 뜻함)' 문화는 소비의 주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가치관으로 인해 우리는 한번 사는 인생을 재밌고 화려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렇기에 월급이 얼마이든 외제차, 명품옷, 오마카세, 호캉스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소비의 기록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도 즉각적으로 공유된다.

    그런 SNS을 들여다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나만 빼고 아주 사는 같다. 분명 2023년 통계청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가구중위소득은 실질적으로 320만 원 정도인데, SNS 세상에서는 샤넬 가방, 파인다이닝 식사, 고급 호텔의 뷰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김 씨는 여름만 되면 인기 아이템으로 등극하는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가 제일 궁금하다. 과연 어떤 맛일까?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 가격은 올해 10만 2,000원이라고 한다. 김 씨 기준에서는 매우 사악한 가격이다. 그럼에도 올해 날씨가 더워질수록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는 SNS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혼자 조용히 가서 먹으면 되지 200대 월급 받는 김 씨 배 아프게 사람들은 왜 SNS에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 태그를 넣고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를 먹었다는 사실을 굳이 인증하는 것일까?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주제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력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수준으로 '나를 보여주는' 소비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소비한 것을 남이 몰라주면 아쉽다. 이순신 장군님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내 소비를 널리 알려 달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남에게 보여지는 소비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소비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2.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혹시 경제 수업 혹은 언론매체에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베블런재(Veblen goods)'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가?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명품처럼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물건들도 있다. 이것이 베블런재이고, 이런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렌즈를 빌려올 사회학자는 베블런 효과의 주인공 베블런(T. Veblen)이다. 사실 베블런은 사회학자라기보다는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게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베블런은 사회학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동안의 사회학 연구는 ‘소비’보다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베블런은 이러한 사회학의 초점을 생산에서 소비로 전환하며 소비에 대해 의미 있는 사회학적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이는 베블런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서에서 베블런은 합리적인 행위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과시적 소비 활동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소스타인 베블런(T. Veblen)과 그의 대표작 유한계급론


    베블런이 활발히 연구활동을 하던 19세기 후반, 미국 사회는 호황의 시대였다. 미국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산업 기반을 성공적으로 전환하였고, 그 과정에서 하층민들을 착취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였다. 이 신흥 부유층들은 부를 과시하고 낭비하며 미국의 근본이었던 검소한 청교도식 삶의 양식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신흥 부유층들은 한마디로 졸부들로 구성된 파티 피플이었다. 이렇게 미국 사회에 혜성 같이 등장한 신흥 부유층이 바로 ‘유한계급(leisure class)’, 쉽게 말하면 일 안 하고 놀고먹는 계급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기원을 경쟁에서 찾았다. 베블런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존심, 인정, 우월감 등의 감정이라고 분석하였다. 베블런에 따르면 인간은 자존심의 상실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보다 우월한 사회적 평가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옛날로 돌아가보자.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사회경제적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 사람들은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베블런은 전쟁과 약탈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에서 유한계급의 원형발견했다. 야만의 시대에 지배계층이었던 귀족들은 모든 생산활동을 노예들에게 전가하고, 획득한 전리품으로 최선을 다해 놀고먹으며 높은 신분적 지위를 과시하고 우월감을 느꼈다.

    신분제가 무너진 후,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재산 수준이 지위의 척도가 된다. 남들보다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재산을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구슬이 꿰어야 보배이듯, 재력은 소비를 해야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시대의 신흥 부유층은 사회적 평판을 높이고,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경쟁적으로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면서 사치품을 소비하는데, 이것이 바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이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는 자본주의 시대의 유한계급, 즉 신흥 부유층의 자존심을 채우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신흥 부유층은 이러한 과시적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자신의 지위를 마음껏 표현하였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호화로운 파티를 개최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화려한 저택을 지었으며, 그 저택을 온갖 사치품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부인과 하인들까지도 고급스러운 의복과 사치스러운 장신구로 치장시키며 재산을 자랑하였다. 이렇게 이들은 속된 말로 '돈지랄'한가로운 생활을 뽐내며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즐겼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따라 할 수 없는 과시적 소비로 다른 계층들과 사회적 위치를 차별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값비싼 상품의 과시적 소비는 유한계급들이 존경을 얻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다" (베블런)


    이러한 낭비와 과시적인 소비 관습은 모든 계층에게 확대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가 점차 모든 계층이 본받기 원하는 '워너비' 생활양식으로써 우리 사회에 스며든 것이다! 중산층은 물론, 심지어 계층 구조의 밑바닥에 위치한 빈자들도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모방하려고 노력하였다. 한때 부유층의 패션 스타일로 유행했던 청담동 며느리룩청담동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따라 입었던 현상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유한계급의 생활양식이 이렇게 전 사회적인 유행이 되면서, 자신들만의 우월한 생활양식이 침범당한 '진짜 유한계급들'은 다른 계층들과의 간격을 다시 넓히기 위해 새로운 과시적 소비 양식을 창조해 낸다. 따라서 하위 계층에게 유한계급의 생활양식은 계속 좇아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게 된다. 이전보다 금전적으로 나아지더라도, 동경의 대상인 유한계급과 같은 생활양식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하위 계층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 남을 뿐이다.


청담동 며느리들은 정말 이렇게 입을까?


    1899년에 세상에 나온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125년이 지난 현대 사회를 해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하다. 이 글의 앞부분에 언급했듯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SNS라는 강력한 '과시적 소비 전시장'이 있다. 우리는 경제적 수준에 맞지 않음에도 SNS 상의 과소비를 모방하고, 모방소비조차 불가능한 경우에는 SNS 세상과 다른 현실을 한탄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합리성에 근거한다고 여겨지던 현대 자본주의의 경제활동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여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경쟁 성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로 확장시켜 보자.


SNS를 통한 과시적 소비와 이를 모방하는 소비 (인쿠르트)




3. 과시적 핫플 소비


   자본주의 시대 유한계급의 생활양식이었던 과시적 소비는 SNS의 일상화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와 맞물려 등장한 ‘핫플레이스(줄여서 핫플)’ 개념과 함께 과시적 소비는 이제 우리 도시 곳곳에도 침투하고 있다. 핫플은 과거 연예인이나 브랜드에 사용되던 ‘핫하다’라는 표현이 공간으로 확장된 표현으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핫한 것에서 핫한 곳으로 (김정구, 2019, 출판N)


    핫플의 조건은 뭐라 한정 짓기 어렵지만, 한 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예쁜 카페와 맛집이 많으며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를 통해 이러한 핫플들이 ‘인스타 성지’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핫플에서 소비하고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인증샷을 찍고 해시태그를 표시해 SNS에 올리는 것까지 마무리해야 비로소 핫플을 소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과시적 핫플 소비가 필요한 것이다!


핫플레이스의 조건 (엠브레인, 2019, 트랜드모디터)


    요새 이러한 핫플을 선도하는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면서 동시에 차별성을 추구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SNS를 잘 다루는 평범한 20-30대 청년들, 일명 MZ세대이다. 홍대, 경리단길, 연남동, 최근의 성수동과 을지로까지 핫플로 불리는 곳의 공통점은 모두 젊은이들이 모이고 소비하며 인증샷을 찍는 동네들이라는 것이다.


인스타로 본 핫플 (여성신문, 2019. 07. 21.)


     MZ세대는 일반적으로 재산이 많거나 시간적 여유가 무한정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자본주의 시대에서 베블런이 발견했던 유한계급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핫플에 방문하여 “내가 그 공간에 갔었고, 그 공간을 즐겼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 점에서 남들에게 소비를 과시하고자 했던 유한계급과 닮은 점이 있다.

    이런 핫플 소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핫플은 유행에 어두운 김 씨 같은 사람들에게 매우 불친절한 공간이다. 멋들어지다고 평가되는 핫플의 카페나 맛집은 그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가게와 상관없는 간판이 달려 있거나 아예 간판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김 씨 같은 핫플 초심자는 가게를 찾는 것 자체부터 난관이다. 가게를 찾는다 하더라도 이용을 못할 수도 있다. 줄은 길어도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가게 운영에 대한 공지가 인스타그램으로만 안내되는 경우, SNS를 안 하는 손님들은 오픈시간이나 브레이크 타임, 휴무일 등을 파악하기 힘들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32세 김 씨도 핫플을 즐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김 씨보다 높은 연배의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김 씨처럼 핫플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힙(hip)’한 문화에 뒤처진 사람들로 치부되며, 핫플 문화의 하위계층이 된다.

    SNS를 연구하고 어떻게 어떻게 핫플을 즐기려고 할 때면. 갑자기 또 핫플의 대세가 바뀐다. 유한계급이 하위계층의 모방을 피해 또 다른 과시적 소비 양식을 만들어내듯, 핫플을 선도하는 MZ들도 때가 되면 또 다른 핫플을 만들어낸다. 을지로 하면 인쇄 골목만 떠올리던 김 씨가 드디어 '힙지로'를 인식하게 되자, 갑자기 신당동이 대세 핫플이 되었다. 신당동 하면 떡볶이 이상으로 생각나지 않는 김 씨는 ‘힙당동’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MZ들과의 문화적 거리가 더욱 벌어졌다.


도대체 어디가 문인가?! - 신당동의 핫한 술집, 주신당


    전리품을 과시하며 지위를 뽐내던 야만 시대의 귀족들, 축적된 부를 흥청망청 소비하며 재력을 과시하던 자본주의 시대의 신흥 부유층들처럼 이제 도시의 핫플을 방문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조하여 SNS에 과시하는 젊은이들이 인스타그래머블 도시사회의 유한계급이 된 것이다.      




4. 인스타그래머블 도시


    유한계급의 생활양식이 사회로 스며들어 쓸데없는 낭비와 사치를 조장하는 역효과를 듯,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에 올릴만한) 핫플 소비는 도시 고유의 장소성과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핫플을 소비하는 패턴에는 더 이상 새로움이 없다. 예쁘긴 하지만 어느새 비슷비슷해진 카페들, 맛이 좋다기보다는 사진 찍기 좋은 맛집의 음식들, 인위적으로 변해가는 도시 경관들은 그 장소가 지닌 진정한 가치와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장소가 지닌 고유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SNS에서 본 곳을 찾는다. 나만의 입맛보다 SNS를 맹신하고 맹목적으로 맛집이라고 소개된 곳 앞에 줄을 선다. 카페 본연의 기능인 담소와 사회적 교류보다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꾸며진 디저트를 고사 지내듯 모셔두고 사진 찍는 행위에 더 열중한다. 결과물이 인스타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흡족해야 드디어 조심스레 맛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핫플 소비 양식에 따라 역사적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인위적인 공간이 조성되기도 한다. 용산구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인근에는 경리단길이 있다. 이곳의 명칭은 초입에 위치한 육국중앙경리단(현재 국군재정관리단)으로부터 유래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경리단길이 SNS에서 입소문 난 핫플이 되자, 핫플의 대명사로서 경리단길을 모방한 망원동의 망리단길, 석촌호수 인근의 송리단길, 인천의 평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해운대의 해리단길, 심지어 김 씨가 자란 일산의 밤리단길 등 수많은 'ㅇ리단길'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ㅇ리단길'은 전국에 33곳이 있다고 한다. 하나 같이 경리단길의 유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장소들이지만 인스타에 올리기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단길'이 뭐길래 (MBC)


    이렇듯 지금은 사물이든 장소든 본연의 가치가 어떻든 간에 남들을 의식하는 보여주기식 소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다. SNS와 인증샷으로 점철된 이 시대의 도시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냥 남이 하는 대로 공간을 소비하고, 인증샷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문화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는 점을 검증받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도시 공간 본연의 가치에 다시 집중할 때이다. 남들에게 좋은 곳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곳을 찾고, 남에게 자랑하기보다 눈으로, 마음으로 공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쓸데없이 낭비하고 사치하는 한량 같은 유한계급이 아니다.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을 굳이 남들을 따라 과시적으로 소비하며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도시 공간을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낭비하기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찾아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해 보면 어떨까? 김 씨는 출근길의 푸릇한 들판을 나만의 핫플로 마음속에 저장하며 다짐해 본다.


김 씨의 출근길에 보이는 푸릇한 들판





소스타인 베블런 (1857 - 1929)

    베블런은 1857년 위스콘신주에서 노르웨이 이주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노르웨이 공동체의 금욕적이고 근면성실한 청교도식 문화에서 자란 베블런은 아마 경제적 호황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미국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블런은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기에는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1892년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의 초청으로 경제학과 사회학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때가 학자로서 베블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듀이, 미드 등 유수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그의 대표작 '유한계급론'을 집필하였다.

    성격이 괴팍하다고 알려져 있는 베블런은 학생, 동료 학자, 대학과 다채롭게 갈등을 빚으며 결국 대학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의 개인적 생애와는 별개로 유한계급론을 비롯한 베블런의 독창적인 연구와 사회비평은 과시적 소비로 점철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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