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혁 Jun 01. 2024

도시 일상의 국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가핑클의 에스노메소돌로지


1. 도시의 일상


     일상이라는 단어는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를 뜻한다. 도시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족, 직장 동료, 선후배, 친구 등 주로 우리가 아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일상 중에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과 더 많이 마주치고 교류한다. 늘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줄을 서 있다. 점심시간 식당으로 향할 때에도 도보 위에는 사람들이 있다. 점심 먹고 들른 카페에서 주문하는 우리와 주문받은 직원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이렇게 우리는 도시의 시공간적 흐름에 따라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과도 마주치고, 그들과 은연중에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보낸다. 도시라는 좁은 땅 덩어리에 모여사는 현대인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서울을 잠깐 살펴보자. 서울의 면적은 605㎢로 전체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하다. 그 위에서 전체 인구의 20%인 940만 명이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는 1㎢ 당 대략 1만 5천 명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직장, 학교, 쇼핑, 여가 등을 위해 서울에서 생활하는 인구로 보면 어떨까? 서울의 하루 평균 '생활인구'는 2024년 현 기준 1,093만 명 정도이다. 즉, 실제로 서울에서는 1㎢ 당 약 1만 8천 명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도시 일상에서는 타인과의 마주침과 교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인구밀도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도시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일상의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선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은연중에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버스 대기줄에서 과감하게 새치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도보 위에서는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는 정도가 아니면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앞에 오고 있는 사람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충돌을 피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우리보다 나이가 어려 보여도 카페 직원에게 "야 아이스커피 진하게" 이런 식으로 반말을 하는 몰상식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는 그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버스 대기줄에서 새치기하고, 길 위에서 서로 부딪혀 싸우고, 카페에서 반말로 주문한다면 뉴스나 최소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사연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들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국룰(국민의 룰이라는 뜻으로 국민 대다수가 당연하게 여기는 규칙)'이 존재한다! 도시라는 좁은 공간에서 각자 생각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도시 일상의 국룰을 유지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이제 오늘의 사회학 거장 해럴드 가핑클의 렌즈로 일상을 낯설게 고찰해 보자!




2. 가핑클의 에스노메소돌로지


    가핑클(H. Garfinkel)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연구한 사회학자이다.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와 행동은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여겨져 전통적인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큰 관심 주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자. 직장 동료들끼리 "밥은 드셨어요?"라고 묻거나 뛰어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행동 등 우리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대화와 행동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가핑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가핑클은 에스노메소돌로지(Ethnomethodology), 우리말로 번역하면 민속방법론을 창시하여 당연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렸던 일상과 그 일상의 질서가 유지되는 방식을 탐구하였다.


해럴드 가핑클과 그의 저서 에스노메소돌로지

 

    에스노메소돌로지(ethnomethodology)라는 용어가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풀어보면 복잡한 의미는 아니다. 'ethno-'는 인종이나 민족, 즉 '사람들'을 뜻한다. 'method'는 '방법', 그리고 '-ology'는 '학문'을 의미한다. 즉, ethnomethodology는 '사람들의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의 방법'이라는 것이 일상의 국룰을 만드는 원리의 핵심이다. 글의 첫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사회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은 늘 타인과의 마주침과 사회적 교류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화나 행동 중에 자신들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관찰 가능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상대방은 이를 파악하여 적합하게 대응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원활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들의 일상은 상대방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그 신호를 알맞게 해석하여 반응하는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우리의 일상은 관찰가능한 정보를 가지고 가장 최적의 반응을 도출하는 매우 합리적인 과정의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을 당연하게 느낀다.

    예를 들어보자. 경기도민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계실 텐데, 경기도 버스는 누구나 호락호락하게 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약한 서울 사람들은 정류장에 서 있으면 버스가 무조건 정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류장에 서 있더라도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려면 버스가 시야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버스 기사님께 버스를 탈 것이라는 우리의 의도를 충분히 인지시켜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30여 년 간 경기도민이었던 김 씨가 팁을 드리겠다. 첫째, 버스가 보이는 순간, 차도 쪽으로 바짝 몸을 붙인다. 둘째, 기사님이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과장된 액션으로 교통카드를 품에서 꺼내 든다. 셋째, 기사님과 강력한 아이컨택을 주고받는다.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이 정도 단계는 거쳐야 확실하게 경기도 버스를 탈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아니라면 차도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등 최선을 다해 타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방법'이다. 승객은 '버스를 타겠다는 의사'를 버스 기사님께 관찰 가능하도록 전달한다. 기사님은 그 신호를 이해하고, 이에 알맞게 반응하여 '정차'하는 것이다.


경기도민이 버스 타는 법


    이러한 사람들의 방법은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s)'에 기반한다. 공유된 이해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 즉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인 지식과 기대를 의미한다. 이게 바로 '국룰'인 것이다. 모두가 상식적으로 행위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감, 다시 말해 국룰이 있어야만 우리의 일상적 질서가 유지된다.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만의 공유된 이해


    교통카드를 꺼낸 채 차도 쪽으로 나와 기사님과 아이컨택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상식적으로 저 사람이 버스를 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버스가 당연히 정차할 것이라 기대한다. 만약 그럼에도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정류장을 휭 지나가버리면, 우리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리고 공유된 이해가 깨지는 것이다! 공유된 이해가 깨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




3. 가핑클의 위반실험과 도시 일상의 위반


    가핑클은 공유된 이해가 깨져 일상의 질서에 균열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 위반실험(breaching experiment)을 수행하였다. 위반실험은 사회적 교류 중에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기대를 저버려 일상적인 무언의 국룰을 위반하는 실험이다. 가핑클은 본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대화 중 보편적인 표현이라도 그 의미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되물어 보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록하도록 과제를 내주었다. 가핑클은 UCLA 사회학과에 오랫동안 재직하였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대화분석 수업에서 아직도 이러한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다음은 UCLA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김 씨가 실제로 대화분석 수업에서 수행했던 과제의 일부이다.

친구: 오~ 김 씨 오랜만이다.

김 씨: 오랜만이라는 것의 기준이 뭐야? 일주일? 한 달? 일 년?

친구: ... 아니 그냥 반가워서... 그동안 잘 지냈어?

김 씨: 잘 지냈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이야? 직장생활? 건강? 결혼생활?

친구: 미친놈...


위반실험의 예시 - 늘 끝이 좋지 않다


    우리는 공유된 이해를 통해 '오랜만'을 반가움의 표현이라고 이미 가정하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이다'라는 말에 상대방이 '그러게.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반갑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는 '잘 지냈어?'가 안부의 표현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물음에 상대방이 일반적으로 '나야 잘 지냈지!' 혹은 '아, 일이 좀 있었어.'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김 씨는 친구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가핑클의 위반실험 결과, 사소한 대화의 국룰이 깨어질 때 상대방은 화를 내거나 격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로 인해 사회적 교류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위반실험은 일상의 활동들 배후에 공유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증명하였다. 공유된 이해를 토대로 견고하게 짜인 일상의 반복은 결국 우리 사회의 질서가 된다!

    도시에서의 사회적인 교류는 고려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공간이다. 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공간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는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맥락과 공유된 이해를 부여한다. 공간적 맥락을 무시하고 공유된 이해를 깨버리면 한 순간에 유명한 도시의 빌런이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을 생각해 보자. 

    우선 지하철로 가보자. 명실상부 '시민의 발'이라고 불릴 만큼 지하철은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인 공간이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누구나 편안하고 평등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하철이라는 공간에도 공유된 이해가 있다. '한 사람당 한 자리'라는 국룰이다. 누군가가 짐을 두기 위해 한 자리라도 더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편안하고 평등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깨지면서, 우리는 이러한 행위에 분개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 이러한 행위가 뉴스에서 많이 다뤄지기도 했다.

    공원으로도 가보자. 공원은 대표적인 도시의 공공공간으로서 누구든지 여가와 휴식을 위해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즉, 공원이라는 공간이 부여한 공유된 이해는 남녀노소 모두가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공원을 모텔로 착각하고 연인과 찐한 애정행각을 한다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히 한창 공원에서 뛰어놀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된다. 그래서 우리는 공원 내 애정행각이 불편하다.  

    카페에도 공유된 이해가 존재한다. 카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친지들과 대화와 담소를 나누는 등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물론 책을 읽거나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카페라는 공간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카페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며 독서실 분위기를 요구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러한 요구가 선을 넘은 것이라 생각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대화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공유된 이해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각각의 공간에서 일상의 국룰을 깨는 빌런들

    

    도시의 공간은 저마다 특유의 공간적 맥락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맞게 공유된 이해, 즉 국룰을 형성한다. 이렇게 공간이 부여하는 국룰에 따라 우리는 적합한 행동을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도시 일상의 질서가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이를 '공공질서'라 부르기도 한다. 결국,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각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서로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사람들의 방법, 다시 말해 '시민의식'이 도시 일상의 국룰을 유지하는 것이다!




4. 도시 일상의 국룰


    우리는 가핑클의 렌즈를 통해 도시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좁디좁은 땅덩어리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교류하는 우리 도시민들에게 일상은 사소하지 않다. 상대방이 내 의도를 알 수 있도록 관찰 가능한 신호를 보내고, 상대방은 공유된 이해에 따라 그 신호를 해석해 적합하게 대응하는 것.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일상의 대화와 행동에서도 꽤 복잡한 메커니즘, 즉 사람들의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도시민에게는 한 가지 미션이 더 추가된다. 바로 공간이 주는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다. 지하철, 공원, 카페 등 저마다의 공간에서 우리에게 기대되는 방식대로 우리는 일상의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도시의 일상이라도, 사실 그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공간을 고려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상을 어지럽히는 빌런들에 의해 금방이라도 어긋날 것만 같은 도시의 질서가 오늘도 굳건히 지켜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여러분 덕분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여러분이 도시의 일상을 지켜나가는 도시의 진정한 히어로, '캡틴 시티즌'이지 않을까?


도시의 일상을 지키는 시민들





해럴드 가핑클 (2017 - 2011)

    가핑클은 1917년에 태어난 미국 사회학자이다. 가핑클은 하버드대학교(Hava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UCLA 사회학과 교수로 자리 잡았다. 

    가핑클은 기존의 전통 사회학이 간과하고 있던 일상이 어떻게 작동되고, 유지되는지 탐구하며 1950-60년대 새로운 사회학의 조류인 에스노메소돌로지를 창시한 선구자였다. 

     가핑클의 에스노메소돌로지는 '사람들의 방법'을 배워야 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04화 이동하는 도시와 도시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