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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을 탄생시킨, 운명의 '3초'

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

by 미친 PD Dec 24. 2024

올림픽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회는 어느 대회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꼽을 것이다. 독일은(당시에는 서독) <뮌헨 올림픽>을 통해 나치즘의 망령에서 벗어난 진일보한 독일 사회를 보여주고자 했고, 특히 유태인 홀로코스트라는 아픈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이스라엘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파시즘이 창궐했던 나치 독일 시절이 불과 30년 전이었으므로 서독 정부는 '세계 평화'를  <뮌헨 올림픽>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의도적으로 모든 보안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이 안이한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테러범들이 선수촌의 담을 넘어 들어 올 수 있을 정도로 <뮌헨 올림픽>의 보안은 허술했다.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로 잠입하는 '검은 9월단'테러범들이 선수촌의 담을 넘어 들어 올 수 있을 정도로 <뮌헨 올림픽>의 보안은 허술했다.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로 잠입하는 '검은 9월단'

 1972년 9월 5일, 공산주의 계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이른바 ‘검은 9월단’ 요원 8명이 이스라엘 선수들이 묵고 있는 선수촌에 잠입,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234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림픽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긴급 상황에 당황한 서독 경찰은 우왕좌왕했고 이 어리숙한 진압 과정에서 이스라엘 인질 11명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대참사였다.   

'검은 9월단'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선수단. 안타깝게도 진압과정에서 11명 모두 사망했다.'검은 9월단'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선수단. 안타깝게도 진압과정에서 11명 모두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서방세계는 이 공산주의 계열의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의 뒤에 소련이나 서독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파행을 바라는 동독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 때문에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은 냉전체제의 최전방이었던 분단 독일의 뮌헨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검은 9월단'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검은 9월단'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

금메달 50개를 획득하라!

소련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꺾음으로써 올림픽 무대를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삼으려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소련의 스포츠 유망주들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훈련과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그 결과 소련 선수들은 국제무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하게 된다.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을 완전히 물리치고 ‘소비에트연방’을 수립한 해인 1922년으로부터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소련 정부로부터 '50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반드시 미국을 꺾으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후반 ‘검은 9월단’ 사건까지 터지면서 미국과 소련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은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올림픽에서 치열하게 격돌한다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은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올림픽에서 치열하게 격돌한다

미국과 소련의 마지막 승부

<뮌헨 올림픽>의 폐막일인 9월 9일 아침까지 소련이 따낸 금메달은 49개. 소련 정부로부터 내려온 미션인 금메달 50개까지는 딱 1개가 남아 있었다. 소련이 이 1개의 금메달을 추가할 수 있는 방법은 9일 저녁에 열릴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승리하는 것뿐. 이미 33개의 금메달을 딴 미국을 제치고 종합 1위는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소련 개국 50주년을 맞아 소련 정부는 반드시 '금메달 50'개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을 주문했다.  

반드시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승리해야 하는 소련 대표팀. 사진은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을 소련 입장에서 만든 영화 <쓰리 세컨즈>의 한 장면반드시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승리해야 하는 소련 대표팀. 사진은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을 소련 입장에서 만든 영화 <쓰리 세컨즈>의 한 장면

하지만 상대는 세계최강 미국. 비록 종합 우승은 놓쳤지만 소련의 '50개 금메달'의 희생양이 될 순 없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남자농구가 처음 정식 종목이 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1972년 뮌헨 올림픽 이전까지 미국은 모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번 뮌헨 올림픽 예선까지 포함하여 무려 6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과정에서 소련은 4번의 올림픽 결승전에서 미국에 모두 패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63연승을 달리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1972년 <뮌헨 올림픽>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63연승을 달리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1972년 <뮌헨 올림픽>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3초'

그러나 막상 결승전이 시작되자 모든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경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서는 미국 선수들이 훨씬 앞서 있었지만 미국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학 선발로 구성된 만큼 경험이 적었고 올림픽을 앞두고 손발을 맞출만한 시간이 불과 2~3개월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소련 대표 팀은 연방 전 지역에서 뽑아온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청소년 대표 때부터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온 아주 노련한 팀이었다.   

2019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러시아 영화 <쓰리 세컨즈>. 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을 미국 입장이 아닌 소련 입장에서 그려냈다.2019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러시아 영화 <쓰리 세컨즈>. 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을 미국 입장이 아닌 소련 입장에서 그려냈다.

소련은 평균연령 20세의 어린 미국을 상대로 거칠면서도 정교한 플레이를 펼쳤다. 미국의 존 바흐 코치가 경기 후 ‘소련은 400경기 이상을 함께 해 온 저력이 있었고, 우리는 겨우 12번의 연습 경기를 치르고 올림픽에 나온 팀이었다.’고 밝혔을 정도로 경험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소련의 강한 압박수비에 초반부터 미국은 실수를 연발했고 소련의 에이스 세르게이 벨로프가 대량 득점을 쏟아 넣으면서 소련이 전반전을 26-21로 앞선 채 마무리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맹활약한 소련의 에이스 세르게이 벨로프의 생애 마지막 모습(2012년 사망)1972년 <뮌헨 올림픽 >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맹활약한 소련의 에이스 세르게이 벨로프의 생애 마지막 모습(2012년 사망)

경기는 후반전에 더욱 격렬해졌다. 후반전 리바운드 다툼을 하다가 서로 감정이 격해진 미국의 드와이트 존스와 소련의 미하일 코르키아가 주먹다짐을 하면서 동시에 퇴장을 당했고, 바로 몇 초 뒤 공격권을 다투기 위한 점프볼 상황에서 미국의 브루워가 공중에서 그대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코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흔들리던 미국은 동료들의 퇴장과 부상을 계기로 응집력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맹렬히 추격하던 미국은 마침내 48-49, 한 점차까지 추격했고 경기 종료 '3초'를 남기고, 미국의 주포 덕 콜린스가 결정적인 파울을 얻어냈다.      

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미국의 주포로 맹활약한 덕 콜린스의 <보스턴 셀틱스> 시절 모습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미국의 주포로 맹활약한 덕 콜린스의 <보스턴 셀틱스> 시절 모습

미국에게 자유투 2개가 주어졌다. 3초가 남은 상황에서 이 자유투 두 개를 모두 성공하면 50-49로 역전할 수 있는 상황. 덕 콜린스의 자유투 1구는 링을 통과했다. 점수는 49-49. 콜린스가 심판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아 자유투 2구째를 던지려고 준비하던 순간, 소련 벤치에서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작전타임 요청은 명백한 규칙 위반이었다. 이미 콜린스가 심판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후였기 때문에 규정상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심판은 이 규정을 적용해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고 콜린스는 자유투 2구마저 성공시켰다. 50-49, 미국의 역전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은 마지막 3초로 승부가 갈린다.  러시아 영화 <쓰리 세컨즈>의 한 장면1972년 <뮌헨 올림픽>남자 농구 결승전은 마지막 3초로 승부가 갈린다.  러시아 영화 <쓰리 세컨즈>의 한 장면

3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소련은 마지막 공격을 하기 위해 빠른 패스로 공격을 시도했는데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심판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켰다. 소련 벤치에서 작전 타임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 선수들이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항의하자 심판은 다시 작전 타임을 없던 것으로 되돌렸다. 올림픽 결승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숙한 운영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초. 그런데 여기서 희대의 해프닝이 발생한다. 본부석에 앉아있던 윌리엄 존스 당시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이 심판들에게 시간을 다시 3초 전으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당시 TV 중계화면에도 윌리엄 존스 사무총장이 심판을 향해 3초를 의미하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윌리엄 존스는 국제농구연맹의 창설자 가운데 한 명이었고 남자농구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켰으며 1932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4년 동안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한 농구계 거물이었다.

윌리엄 존스가 시간을 3초 전으로 돌려 놓으라고 지시하는 모습. 그는 판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지만 농구계 거물이었던 그의 말에 심판들은 시간을 3초전으로 돌렸다.윌리엄 존스가 시간을 3초 전으로 돌려 놓으라고 지시하는 모습. 그는 판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지만 농구계 거물이었던 그의 말에 심판들은 시간을 3초전으로 돌렸다.

사무총장이 경기장에 내려와 시간을 3초로 돌려놓으라고 심판 판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심판들은 농구계의 막강한 권력자 윌리엄 존스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했고 결국 시간은 3초로 되돌아갔다. 미국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시 경기는 재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미숙한 경기 운영이 나왔다. 시간 계시원이 전광판의 시계를 3초로 돌려놓지 않은 채 1초인 상태에서 경기가 재개됐고 소련의 공격 개시 후 1초가 흐르자 경기가 종료된 것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종료 부저가 울리자 미국 선수들은 코트로 몰려나와 극적인 역전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자 환호하는 미국 선수들. 하지만 경기는 '3초' 상황에서 다시 치러졌다.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자 환호하는 미국 선수들. 하지만 경기는 '3초' 상황에서 다시 치러졌다.

심판들은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전광판 시계가 3초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고 끝이 났으니 3초 전으로 돌려놓고 다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승리의 세리모니까지 한 미국 선수단은 격렬히 항의했지만 결국 다시 코트 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소련에게는 3초 동안 세 번이나 공격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을 무려 44년이나 역임한 윌리엄 존스. 이탈리아계 영국인이었던 그의 부당한 개입으로 미국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친다.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을 무려 44년이나 역임한 윌리엄 존스. 이탈리아계 영국인이었던 그의 부당한 개입으로 미국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친다.  

다시 남은 시간은 3초. 진짜 마지막 공격이었다. 소련은 엔드라인에서 미국 골밑까지 롱패스를 시도했고 두 명의 수비를 제치고 필사적으로 이 공을 잡은 소련의 알렉산더 벨로프가 골밑슛을 성공시켰다. 50-51. 기적의 역전승이었고, 소련 선수단의 50번째 금메달이었다. 소련 선수단은 모두 코트로 몰려나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이어온 미국 남자 농구대표팀의 올림픽 7회 연속 우승과 63연승 행진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골밑 슛을 성공시킨 알렉산더 벨로프와 소련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골밑 슛을 성공시킨 알렉산더 벨로프와 소련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미국 선수단은 판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오락가락했던 3초에 대한 판정뿐만 아니라 경기 후 중계 화면을 돌려 본 결과 소련 선수의 롱패스 때 엔드라인을 밟은 것이 확인되었고 벨로프가 골밑에서 공을 잡을 때도 공격자 파울이 선언될 할 만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이어진 시상식에 불참했고 국제농구연맹에 정식으로 제소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5LVpP4RWU&t=36s

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 1분 30초부터 마지막 '3초의 해프닝'이 시작된다.
판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시상식에 불참한 미국 농구대표팀. 2위 자리가 텅 비어 있다.판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시상식에 불참한 미국 농구대표팀. 2위 자리가 텅 비어 있다.

미국의 제소는 이제 국제농구연맹 산하 소청위원회로 넘어갔다. 미국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당시 소청위원회는  폴란드, 헝가리, 쿠바, 이탈리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냉전체제하에서 공산국가인 폴란드, 쿠바, 헝가리 국적의 소청위원이 자기들의 맹주인 소련 대신에 미국의 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결국 미국의 제소는 3대 2로 기각되었다.   

심판의 미숙한 진행으로 패배한 미국 대표팀의 망연자실한 모습. 농구 역사상 가장 길었던 '3초'의 희생양이었다.심판의 미숙한 진행으로 패배한 미국 대표팀의 망연자실한 모습. 농구 역사상 가장 길었던 '3초'의 희생양이었다.

<드림팀>의 탄생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은 미국 사회에 큰 공분을 일으켰다. 이미 시상식에 불참했던 미국은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메달 수령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당시 미국 대표팀의 주장 케니 데이비스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본인이 죽더라도 절대로 은메달을 수령하지 말라고 미리 유언장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경기는 미국인들에게는 도저히 잊지 못할 억울한 사건이었고 소련에게는 세계 최강 미국을 격침시킨 기적의 드라마였다.    

미국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케니 데이비스.미국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케니 데이비스.

절치부심한 미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되찾지만 소련이 준결승에서 유고슬라비아에게  의외의 패배를 당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 직접 설욕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197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미국과 서방진영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고 소련과 공산진영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LA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미국 농구대표팀의 설욕기회는 계속 미루어지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군부의 반공 쿠데타로 서방세계로의 편입이 확실시되자 소련은 좌익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아프가니스탄 군부의 반공 쿠데타로 서방세계로의 편입이 확실시되자 소련은 좌익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마침내 미국은 소련에게 설욕할 기회를 잡았다. 미국은 미치 리치먼드, 댄 멀리, 대니 매닝, 데이비드 로빈슨 등 훗날 NBA를 주름잡게 되는 대학농구 최고 스타들을 총출동시켰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NBA에서 맹활약하게 되는 유럽 최고의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버틴 소련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 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을 만난 미국은 설욕은커녕 82-76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다. <뮌헨 올림픽>에서의 패배는 오심이라는 핑곗거리가 있었지만 이번 <서울 올림픽>에서의 패배는 변명의 여지없는 완벽한 패배였고 경기 후 소련 감독의 조롱 섞인 인터뷰까지 겹치며 미국 농구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14345_29513.html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농구 준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결승에 올라 유고슬라비아 마저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소련 대표팀. 맨 뒷줄 왼쪽 첫번째가 소련의 에이스 사보니스.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농구 준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결승에 올라 유고슬라비아 마저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소련 대표팀. 맨 뒷줄 왼쪽 첫번째가 소련의 에이스 사보니스.

농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미국인들은 올림픽에 NBA 선수들을 출전시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고 마침 국제 농구연맹에서도 올림픽에서의 농구의 입지와 흥행을 위해 프로선수들의 출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로 밝혀져 잠시 코트를 떠나 있었던 매직 존슨이 래리 버드와 마이클 조던의 올림픽 참가를 설득하면서 올림픽 출전에 미온적이었던 다른 NBA 선수들도 대거 참가를 선언했다.      

매직 존슨(좌)과 래리 버드(가운데 ) 그리고 마이클 조던(우). NBA의 최고 스타였던 세 사람이 드림팀 참가를 선언하자 미온적이었던 다른 선수들도 드림팀 합류 의사를 밝혔다.매직 존슨(좌)과 래리 버드(가운데 ) 그리고 마이클 조던(우). NBA의 최고 스타였던 세 사람이 드림팀 참가를 선언하자 미온적이었던 다른 선수들도 드림팀 합류 의사를 밝혔다.

NBA의 슈퍼스타들이 총 출동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일명 ‘드림팀’은 이렇게 탄생했다. 도저히 같은 팀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슈퍼스타들의 플레이는 환상 그 자체였고, 미국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첫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전 경기 100 득점 이상, 전 경기 30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두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되찾아 왔다. <드림팀>은 유럽 선수들에게 NBA 진출에 대한 꿈을 심어줬고 이후 토니 쿠코치, 블라디 디박, 파우 가솔, 요키치, 웸반야마 같은 수많은 유럽 출신의 NBA 스타를 배출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드림팀의 탄생. 앞줄 왼쪽부터 피펜 - 레이트너 - 유잉 - 로빈슨 - 말론 - 바클리, 뒷줄 왼쪽부터 조던 - 버드 - 존슨- 멀린 - 드랙슬러 - 스탁턴.드림팀의 탄생. 앞줄 왼쪽부터 피펜 - 레이트너 - 유잉 - 로빈슨 - 말론 - 바클리, 뒷줄 왼쪽부터 조던 - 버드 - 존슨- 멀린 - 드랙슬러 - 스탁턴.

1972년 뮌헨,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3초’는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농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2024년 겨울, 이 '꿈'은 다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어 우리들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다.            


기쁜 성탄입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가 바로 서길 기도합니다. 미움과 증오보다 사랑과 화평이 가득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https://www.youtube.com/watch?v=5_juLnOzs6I&list=RD5_juLnOzs6I&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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