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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로마를 정복한 영웅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2연패, 맨발의 아베베

by 미친 PD Jan 10. 2025

1935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무솔리니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침체일로에 있던 이탈리아 경제의 탈출구를 해외 식민지 건설로 찾으려 했고 동시에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려 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군은 전차 600대와 항공기 400여 대를 동원하여 전차 4대와 항공기 13대를 보유하고 있던 에티오피아 군을 화력으로 압도했다. 에티오피아는 결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1936년 5월 5일, 이탈리아군이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고 합병을 선언하면서 에티오피아는 1941년 다시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무솔리니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군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군

그로부터 24년 후인 1960년, 무명의 에티오피아 선수 한 명이 부상 대체 선수로 로마 올림픽에 참가하여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한다. 그는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수많은 우승후보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음 날 주요 언론들은 ‘이탈리아는 군홧발로 에티오피아를 짓밟았지만 에티오피아는 맨발로 로마를 정복했다.’며 이 에티오피아 마라토너의 금메달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 선수의 이름은 아베베 비킬라, 사람들은 그를 ‘맨발의 아베베’라고 불렀다.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맨발로 역주하고 있는 아베베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맨발로 역주하고 있는 아베베

한국전쟁 참전용사 아베베, 로마로 가다.

아베베는 1932년 8월 7일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130km 떨어진 자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 날은 1932년 LA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펼쳐지던 날이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소몰이 목동을 하며 지내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친위대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아베베는 한국전쟁 때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의 일원으로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기도 한다.  

하일레 셀라시에 근위대 시절의 아베베하일레 셀라시에 근위대 시절의 아베베

한국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간 아베베는 우연히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되는데 그는 이 경기에 완전히 매료된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24세, 사실 마라토너로서 너무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원지대에서 소를 몰면서 단련된 강력한 심폐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마라톤 선수로서도 빠르게 성장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

그러나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뽑는 에티오피아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 보름을 앞두고 그에게 큰 행운이 찾아오는데, 당시 에티오피아 마라톤의 에이스였던 와미 비라투가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다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올림픽 출전을 앞둔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가 축구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결국 아베베는 와미 비라투의 대체 선수로 급히 대표팀에 합류, 로마로 떠나게 된다.      

에티오피아 마라톤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아베베에티오피아 마라톤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아베베

맨발로 로마를 정복하다.

로마에 도착한 아베베는 맹훈련을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큰 난관에 봉착한다. 너무 급히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발에 맞는 마라톤화가 없었던 것. 발목 부상으로 탈락한 와미 비라투의 마라톤화는 너무 작았고, 대표팀이 가지고 있는 여분의 마라톤화는 너무 커서 발뒤축이 벗겨졌다.  

갑작스러운 대표팀 합류로 그에게 맞는 운동화는 없었다. 맨발로 연습 중인 아베베갑작스러운 대표팀 합류로 그에게 맞는 운동화는 없었다. 맨발로 연습 중인 아베베

코칭스태프는 고심 끝에 아베베에게 맨발로 뛸 것을 권유했다. 일찍이 고원에서 소몰이 목동을 하던 시절, 수 십 킬로미터를 맨발로 다니던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발에 맞지 않는 마라톤화를 신고 뛰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로마 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대부분은 아스팔트나 돌길이었기 때문에 맨발로 뛴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아베베의 발바닥은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있었다.     

소몰이 목동 시절 맨발로 생활했던 탓에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있었던 아베베의 발바닥소몰이 목동 시절 맨발로 생활했던 탓에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있었던 아베베의 발바닥

아베베는 불과 24년 전, 조국을 침략하고 수탈했던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한가운데에 섰다. 로마올림픽의 마라톤 경기는 이례적으로 야간에 펼쳐졌는데, 푹푹 찌는 로마의 여름날씨를 감안한 조치였다. 맨발로 뛰어야만 했던 아베베에게는 그나마 좋은 소식이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펼쳐진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 로마 유적지를 순례하는 아름다운 코스로 구성되었다.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펼쳐진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 로마 유적지를 순례하는 아름다운 코스로 구성되었다.

마침내 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코스를 가졌던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 로마올림픽의 마라톤 코스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순례하는 코스로 짜여졌는데, 야간 레이스였던 탓에 조명으로 그 아름다움과 운치를 더했다. 마치 행복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주변 풍경 속에서 선수들은 콜로세움을 지나 골인지점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아베베.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아베베.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골인 지점에 처음 나타난 선수는 바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무명의 아베베였다. 그는 마의 2시간 20분의 벽을 무려 5분이나 단축한 2시간 15분 16초를 기록하며 1위로 골인했다. 이는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흑인 선수가 따낸 최초의 금메달이었고, 게다가 그는 맨발로 뛰고 있었다. 이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앞에 모였던 수 만 명의 관중들은 아베베의 우승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솔리니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맨발로 로마를 정복한 아베베에게 열광했고,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거리는 뛰쳐나온 국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https://www.youtube.com/watch?v=i_zRr9KOFWE

아름다운 로마 유적지를 순례하는 로마올림픽 마라톤 하이라이트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골인 지점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골인 지점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아베베는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의 귀환 길에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직접 마중을 나와 왕관을 씌우고 금반지와 금시계를 하사했다. 이제 ‘맨발의 아베베'는 에티오피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맨발로 달리는 것이 대유행이 될 정도였다.     

전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아베베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전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아베베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사상 최초 올림픽 마라톤 2연패

이제 아베베는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온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40일 앞두고 아베베는 급성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의 꿈은 이대로 좌절되는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아베베는 아픔을 이겨내고 도쿄올림픽에 참가한다.

도쿄올림픽 40일 전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아베베. 그러나 그는 아픔을 딛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믿을 수 없는 투혼을 보인다.도쿄올림픽 40일 전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아베베. 그러나 그는 아픔을 딛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믿을 수 없는 투혼을 보인다.

세계 각국은 그의 올림픽 참가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불과 40일 전, 맹장 수술을 받은 아베베는 믿을 수 없는 투혼을 발휘한다. 하위권으로 쳐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20Km 부근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온 그는 끝까지 선두자리를 뺏기지 않고 마침내 도쿄올림픽 주 경기장에 첫 번째로 도착한다. 4년 전 로마에서 맨발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던 아베베는 이번엔 마라톤화를 신고 2시간 12분 11초로 다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수술 후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마라톤 2연패였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마라톤 최초 2연패를 달성한 아베베의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마라톤 최초 2연패를 달성한 아베베의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올림픽 마라톤 2연패에 성공하는 아베베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올림픽 마라톤 2연패에 성공하는 아베베

그런데 이어진 시상식에서 올림픽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메달 수여식이 끝난 후 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미가요가 흘러나온 것이다. 은메달을 딴 영국의 바실 히틀리는 고개를 저으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아베베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대회 직전에 맹장 수술을 한 까닭에 아베베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할 수는 있었지만, 아베베는 이미 20Km 지점부터 선두로 치고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 못한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설령 여러 가지 문제로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그 상황에서 동메달에 그친 일본의 기미가요를 내보낸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미스터리였다.  

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미가요가 흘러나온 황당한 시상식. 도쿄올림픽 최고의 흑역사였다.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미가요가 흘러나온 황당한 시상식. 도쿄올림픽 최고의 흑역사였다.

당연히 에티오피아 대표팀은 조직위원회에 격렬히 항의했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도 조직위원회를 매섭게 비판했고 이 사건은 도쿄 올림픽의 최대 흑역사로 남았다. 지금 유튜브에 남아 있는 시상식 영상은 추후 IOC가 기미가요를 에티오피아 국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시상식 영상을 보면 사상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 선수의 표정이 왜 저런가 싶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한 일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Odp8ka25U

도쿄올림픽 마라톤 하이라이트. 17분 15초부터 당황한 영국의 바실 히틀리와 아베베의 시상식 장면이 나온다. 뒤늦게 에티오피아 국가가 삽입되어 있다.  

비운의 사고를 딛고 일어서다.

은퇴한 직후인 1969년, 아베베에게 커다란 비극이 찾아온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국민적인 영웅인 그에게 고급 독일제 승용차를 하사했는데, 그 차를 운전하던 아베베는 아디스아바바 근교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다. 목뼈가 부러지고 척추가 크게 손상되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이 사고에서 아베베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된다. 세계를 호령했던 마라톤 황제의 몰락이었다.   

대형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베베.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삶을 이어간다. 사진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올림픽을 빛낸 영웅'으로 추대된 아베베의 모습대형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베베.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삶을 이어간다. 사진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올림픽을 빛낸 영웅'으로 추대된 아베베의 모습

하지만 아베베는 이렇게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그렇게 잘 달리던 두 다리는 더 이상 쓸 수 없었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상체로 다시 일어났다. 그는 상체만으로 펜싱과 탁구를 시작했고, 양궁을 배워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불굴의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불운한 사고를 당한 그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삶을 그냥 포기하지 않았고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펜싱과 탁구를 시작했고 장애인 양궁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펜싱과 탁구를 시작했고 장애인 양궁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비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올림픽에서 우승하게 된 것은 신의 뜻이었고, 내가 사고를 당하게 된 것도 신의 뜻이었습니다. 내가 성공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나는 나의 비극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이 두 상황을 삶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베베 비킬라 자서전> 中     

  

그러나 1973년 10월 25일, 아베베는 교통사고 때 입은 뇌손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뇌출혈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전 세계가 슬픔에 빠졌다. 에티오피아에서 국장이 치러졌고, 수 십만 명의 조문객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비록, 그는 불운한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그는 맨발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우뚝 선 진정한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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