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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방보감 Nov 03. 2024

6보병사단(청성부대)

수사불패 청성투혼


6사단은 대한민국 육군의 자랑스러운 부대 중 하나로, 5군단 예하에 속한 상비사단입니다. 흔히 '청성부대'로 알려진 이 부대는 그 명칭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6사단의 주요 부대는 강원도 철원에 위치해 있으며, 일부는 경기도 포천시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 부대는 GOP(일반전초)와 GP(감시초소) 경계임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으며, 육군 내에서도 메이커 사단으로 손꼽히는 초기 창설 부대입니다.


6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최다 전투, 최다 적 사살 기록을 세운 전공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6사단은 최초의 제4여단으로서 제7연대, 제8연대, 제10연대로 구성되어 창설되었습니다.


이후 1948년 11월 21일에 제6여단으로 개칭되었고 1949년 8월 20일에 10연대는 제6여단에서 제8사단의 창설 연대로 예속변경 되고, 1950년 5월 1일에 19연대가 예속 변경되어서 들어옵니다.


1949년 5월 12일에는 6사단으로 승격되었고, 1950년 6월 20일에 2연대가 6사단으로 배치되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2연대와 19연대는 전쟁 이전에 제대로 짐도 풀지 못한 채 전쟁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군의 초창기 사단으로서 창설 당시의 구성과 편제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사단은 한국전쟁 직전에 현재의 편제를 구성해서 중부지역 요충지인 강원도 춘천 정면을 담당하였으며, 방어를 맡은 지역의 전선은 84km였습니다.


원주에 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7연대가 춘천에 지휘소를 두고 화천 일대를 방어, 2연대는 지휘소를 홍천에 두고 인제 전면을 방어.


19연대는 사단 예비연대로서 원주에 있는 사단 사령부와 교육훈련 및 부대정비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단의 병력은 9,300명이었고, 장비는 105mm 야포 13문, 57mm 대전차포 12문, 2.36인치 로켓포 276문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6사단은 대한민국 국군 가운데 유일하게 전선을 사수해 적의 남침을 저지한 사단이며, 개전 이전부터 평소 교육훈련, 진지공사 등을 철저히 하며 전투에 대비하였습니다.


또한 전쟁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에 귀순한 북한병으로부터 북한이 조만간 전면 남침을 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어 상부에 보고하지만 육군본부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개전 직후 국군의 사단들이 연달아 패전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에 패주하고 있었을 무렵에도 6사단만은 사단의 외출, 외박을 제한하고.


유사시를 대비한 덕에 춘천 - 홍천 전투에서 3일 동안 북한군 2군단의 2사단, 7사단, 106전차연대의 공격을 저지하고 오히려 역습까지 가했습니다.


북한군은 15사단과 603모터싸이클연대를 추가 배치하며 공세를 강화했으나 6사단의 저항에 막혀 닷새 동안이나 발목을 잡히고.


북한군 2사단은 40%에 달하는 인력과 장비를 잃으며 전멸. 북한군 2군단장, 2사단장, 7사단장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해임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6사단은 잘 방어하고 있었으나, 6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전선이 붕괴되며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자, 육군본부는 6사단에게 후퇴를 명령합니다.


후방 북한군 전력에 의해 포위당할 수도 있었고,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6사단도 후방으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6사단의 활약 덕분에 북한군은 전략에 큰 차질을 불러왔으며.


춘천 점령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면서 단기간에 서울을 포위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국군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가 재편성되면서 저지선을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개전 당시 육군이 보유한 8개 사단 대부분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후퇴하는 와중에도 1사단, 6사단, 8사단은 개전 이전 부대 건제를 유지한 부대로.


여러 전투에 참전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게 됩니다.

6사단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북진을 시작하면서 1950년 10월 26일 초산에 도착해 국군과 연합군 중 최초로 압록강 물을 마시며 전쟁종결의 상징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큰 타격을 입고 후퇴하였고, 1951년 4월 사창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춘계 공세에 무너지게 됩니다.


여기서 6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에게 복수의 칼날을 다짐하게 되며.


이후 1951년 5월, 중공군의 5월 공세에 맞선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 제63군의 3개 사단을 궤멸시켜버린 후 중공군 제60군 180사단까지 섬멸하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6사단은 1개 사단 단독으로 중공군 4개 사단을 궤멸시켜버린 것입니다. 전쟁 이후 6사단은 5군단 예하 사단으로 중부전선 철원 지역에서 GOP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제2땅굴을 발견하였습니다.

한국군 건군 모체 부대이며, 한국전쟁 이전에 창설된 사단 중에서도 초창기의 구성 및 편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대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서 사창리 전투 이외에는 패배한 적이 없으며, 한국전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전과를 자랑하는 부대입니다.


한국전쟁 개전 후에 가장 먼저 승전보를 전한 부대이며, 동락리 전투에서는 1개 대대 병력으로 북한군 1개 연대를 섬멸하였고.


용문산 전투에서는 1개 연대가 중공군의 군단급 3개 사단을 괴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154회로 최다 전투, 92,669명 사살로 최다 적 사살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6사단은 현재 2여단과 7여단이 GOP 경계를 맡고 있으며, 1개 대대가 고정적으로 GOP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여단은 완벽한 평야지대이지만, 7여단은 평야지대도 있으나 급경사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단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 혹한의 대명사로 통하는 철원 지역이라 무지막지하게 추우며.


여름에는 35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더울 때는 더워서 죽고, 추울 때는 추워서 죽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5월 초에도 눈이 오기도 하며, 연교차가 무려 66도로 혹한기와 혹서의 체감 연교차는 거진 80도에 육박할 정도로 어마무시합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철원은 여름, 한여름, 겨울, 빙하기의 4계절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농담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푸른별은 백의민족의 따뜻한 보호하에 용전분투하는 민족의 정예 상징

육각은 6사단을 의미

백색은 배달민족의 순결 청백함

삼각 결합은 전통 있는 '산악전의 왕자'라는 의미

여단본부대

제1보병대대(흑룡대대)

제2보병대대(백호대대 - GOP 대대)

제3보병대대(용호대대)

군수지원대대


상징명칭은 용문산 전투의 주역임을 기려 용문산부대이며,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46년 2월 28일 충남 대전 비행장에서 제2연대로 창설되었고, 유일하게 6사단 전방 중 평지 부분을 담당하지만, 소초당 섹터가 상당히 넓습니다.

여단본부대

제1보병대대(초산진격대대)

제2보병대대(음성무극전승대대)

제3보병대대(개천돌진대대 - GOP 대대)

군수지원대대


연대급 부대로는 국군 3번째로 창설된 육군 부대이며, 당시의 부대 편제를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국군의 유일무이한 전통 부대입니다.


1946년 2월 7일 충북 청주시에서 창설되었으며, 그후 1947년 말에 조선경비대 제1여단으로 예속되었고, 1948년 6월 14일 6사단의 전신인 4연단에 배속되었습니다.


한국전쟁 개전 이후 춘천, 동락리, 초산 등지에서 맹활약하며 6사단 예하의 부대 편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6사단 적자 부대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휴전 이후 2연대와 함께 최전방 산악지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2땅굴까지 맡고 있어서 6사단 내에서도 빡세기로 소문이 나 있으며, 군생활 내내 산만 타다가 전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사 시설은 6사단 내에서도 꽤 좋은 편입니다.

여단본부대

제1보병대대(진격대대)

제2보병대대(돌격대대)

제3보병대대(신병교육대)

군수지원대대


상징명칭은 육탄독수리로, 1948년 11월 20일 전라도 광주에서 창설되어 1949년 6월 20일 7사단 창설 때 근간 연대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부대 이동에 따라 돌고 돌아 한국전쟁 이전에 제6보병사단으로 예속되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단의 예비 여단 및 신교대 운영을 담당하고 있어서 훈련이 정말 많습니다.


1년에 150일은 밖에서 훈련 뛰느라 정신 없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거의 1년에 한 번씩은 KCTC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단본부대

제27포병대대(포성대대)

제88포병대대(충정대대)

제638포병대대(화율대대)

제98포병대대(황소대대)


별칭은 청포로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서 화력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6사단 전체 화력의 약 85%를 담당하고 있으며, 여단 예하 전 대대가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1대 김백일 대령

2대 유재흥 대령

3대 신상철 대령

4대 김종오 준장

5대 장도영 소장

6대 백인엽 준장

7대 김점곤 준장

8대 이창정 준장

9대 이백우 준장

10대 이원장 준장

11대 이창정 준장

12대 차문호 준장

13대 김희준 준장

14대 윤택중 준장

15대 김재규 소장

16대 박현식 소장

17대 김종수 소장

18대 이건영 소장

19대 김종호 소장

20대 전성각 소장

21대 정명환 소장

22대 윤성중 소장

23대 이상연 소장

24대 오자복 소장

25대 한철수 소장

26대 민경배 소장

27대 권영해 소장

28대 이해룡 소장

29대 윤용남 소장

30대 전영진 소장

31대 한승의 소장

32대 박봉식 소장

33대 남재준 소장

34대 김장수 소장

35대 김학연 소장

36대 최광섭 소장

37대 허평환 소장

38대 임관빈 소장

39대 윤영범 소장

40대 조병오 소장

41대 양충식 소장

42대 임호영 소장

43대 이재형 소장

44대 이국재 소장

45대 이진형 소장

46대 심진선 소장

47대 박정택 소장

6사단은 대한민국 육군의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부대 중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와 현재까지도 중부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최전선에서 장병들이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철원 지역의 극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국가를 지키는 6사단의 장병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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