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 시계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연다. 띠리릭.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만이 새벽을 울린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이 시간쯤엔 집을 나오게 된다. 뭐랄까... 일종의 습관 같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얼마 안 지나서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면 재빨리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추천목록에 있는 노래 중에 어제 듣지 않았던 노래를 튼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엘리베이터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다. 내가 정한 규칙이다. 음악에만, 나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3분, 혹은 4분이 지나면 노래가 끝난다. 그러면 나는 열 손가락을 동시에 펴 모든 층의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는 혼란스러운 듯 그 자리에 5분쯤 멈춰 서있는다. 그러면 나는 춤을 춘다. 그러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하던 것을 멈추고 버튼을 하나씩 눌러 끈다. 모두 다 꺼지면 엘리베이터는 수직 상승한다. 그게 시작이다.
7시 8분. 엘리베이터가 버튼에도 없는 층에 멈춰 선다. 열림 버튼을 누르자 문 안으로 바람이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앞으로 한 발을 내딛고 남은 한 발마저 딛자 언제 여기에 있었냐는 듯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가 사라져 버린다. 어딘가 좀 휑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길이 묻은 물건들이 곳곳에 있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A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집에 있기가 싫어서 말이야.”
나는 조그마난 접이식 의자에 걸터앉았다.
A와 나는 ‘친구를 구해요’라는 사이트에서 만났다. 처음 문자를 하다 보니 의외로 잘 맞아서 한번 만나보기로 했는데 우연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우리는 생각보다 금방 친해졌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으로 장난을 치다가 옥상으로 오게 되었다. 다행인지 우리 아파트에는 cctv와 경비 아저씨가 둘 다 없어서 주민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계속 옥상에 올라올 수 있었다. A는 마침 집에서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며 텐트를 치고, 캠핑용품을 가져다 놓은 채 옥상을 집으로 쓰고 있다.
A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생수병을 따서 세수를 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니 물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나 뭐라나. 꼬르륵. 새벽의 정적을 깨운 소리는 다름이 아닌 A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어제 저녁을 안 먹었더니 좀 배가 고픈 것 같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갔다.
이젠 좀 사람이 많아진 골목을 거닐며
“이 사람들도 배가 고플까?”
등의 터무니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브런치 카페에 들러서 각자 먹을거리와 음료 하나씩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나왔는지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10시쯤이 되자 시킨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들을 포장해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는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사람들, 반려동물과 함께 놀러 온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공원 바닥에 비닐봉지를 대충 깔고 앉았다. 음료는 바닥에 내려놓고 음식은 각자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얼른 먹기 시작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돗자리 하나도 없이 바닥에서 음식을 먹는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보긴 했지만 우리의 식사를 끝까지 마쳤다.
“맛있다.”
내가 먼저 일어섰다. A도 뒤따라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갑자기 A가 뛰기 시작했다. 나도 영문을 몰랐지만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어서 A가 도착한 곳은 한 버스정류장이었다. 멀리서 새빨간 버스가 한 대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 앞에서 멈춰 서자 A가 먼저 버스에 오르며 2명이요. 말했다. 나는 얼덜결에 같이 버스에 올라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납치가 의심스러웠을 만큼 멀리 왔을 때쯤 승객들이 모두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들에 밀려 버스에서 내렸다.
벌써 저녁이었다. 하늘에는 약간 은은한 붉은빛이 돌았다.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앞을 보니 정말로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수백만 개의 보석이 있는 듯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고는 해가 지는 광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태양이 가장 강한 붉은빛을 내뿜으며 주변의 구름들을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해가 바다에 반쯤 가려져 바다마저 붉은빛을 뿜고 있을 때 A는 내 옆에서 말없이 사라졌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어제 맞춰두었던 핸드폰 알람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6시 30분. 빨리 씻고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입에 빵을 하나 문 채 달렸다. 옆에 공원에서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미련한 사람들이었다. 그럴 시간에 일을 해야지. 파란색 버스를 탔다. 익숙한 버스, 익숙한 역에서 멈춰섰다. 카드를 리더기에 찍고 회사로 들어갔다. 모두들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런 게 진짜 행복이지.
“부장님 바지에 뭐가 묻으셨어요.”
한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바지를 한번 털고 내 책상에 앉아 일에 집중했다.
조금 전 내가 있었던 바닥엔 모래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