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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May 28. 2024

프롤로그

영화 + 사람 + 거리 = 추억



영화 + 사람 + 거리 = 추억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어있더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알 정도 나이는 되었다. 말 꺼낸 김에 영화 좋아하는 건 천부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 한들 기승전결 뚜렷한 시나리오 쓸 재주가 없다. 그런 허풍을 뒷받침할 증거를 보여주기도 증인을 구하기도 어렵다. 영화와 함께 있었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곁에 있지 않고, 그 많던 물건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좋아해 왔던 세월에 힘을 보태 줄 기막힌 원군을 구했다. 예전에 종이신문에 실렸던 영화 광고다. 오래전 친구처럼 잊고 지내다 다시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곁에 있을 때는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친구다. 언젠가부터 보이질 않았을 텐데도 그런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잊고 살았다니.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서야 소중한 관계였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날마다 오는 신문 구석에 실려 있던 영화 광고들은 ‘오늘의 운세’ 같은 역할을 했었다. 커다랗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큰소리치듯 실린 광고들은 개봉하는 영화들 것이었다. 보기를 애타게 그리던 영화가 그렇게 실렸다면 동그라미 두 개가 겹친 대박! 얼마 전에 큰소리치긴 했지만 전보다 작게 실려 있다면 상황에 따라 동그라미 하나의 중박 운세 정도 될 수 있는 광고다. 어떤 이유로든 개봉관에서 보지 못한 영화의 경우에 한해서는. 조그마한 세로 사각 테두리 안에 그림도 없이 글씨로만 실린 소박한 광고라도 그 또한 동그라미 하나의 좋은 운세로 보이기도 한다.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한 영화 소식을 그렇게 알려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런 소박한 자태는 관심은 크지 않았어도 최소한의 궁금증은 발동되었던 영화가 아주 싼 극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라면 그냥 그냥 보통스런 세모의 운세라고나 할까. 영화의 신문광고는 그런 식의 즐거움을 거의 날마다 제공해 주던 중요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다시 한번 그 메시지들을 꼼꼼히 읽어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영화는 물론 사람을 고민하는 것도 일이었다. 누구랑 같이 갈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영화를 혼자 보러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였다. 누구하고 어떤 영화를 어디 가서 볼지, 영화 보러 시내 나간 김에 무엇을 먹을지, 그런 즐거운 고민이었다. 사정에 따라 영화도 장소도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봤다는 것은 영화와 사람과 장소가 동시에 맞아떨어졌던 운명 같은 거라고 하면 좀 과한가.



어떤 영화 생각을 하면 어떤 사람의 모습 그리고 어떤 거리와 건물의 모습이 떠오르려 한다. 아스라이 정도는 떠오르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현존하지 않으니 볼 수 없어서고, 생각하지 않으니 떠올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서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란 문자 그대로 찾는 일이다. 그때 본 영화를 찾고 있으면 그때 같이했던 사람도 거리도 떠오를 것이고, 사람과 거리가 떠오르면 잊었던 일들이 추억의 모양으로 찾아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리운 느낌의 단어 셋을 뭉쳤다. 영화, 추억, 찾는다.


영화를 찾아서 추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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