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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Sep 03. 2024

은행을 물어보는 어느 한 노인

9월 3일 출근길

  저 멀리 사거리가 보였다. 녹색신호등에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었다.

  ‘왜 하필 녹색 신호등이야...!’ 신호등은 허물이 없는데 나를 홀대하는 것 같은 느낌은 출근길이 무거워서일까.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 뒤에서 ‘으응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석관시장 가... 는데, …”

  고개를 돌려보니 길을 묻는 노인이었다.

“… 어디로 가는 거... 가? 석관시장에 국민은행 있다... 데.”

노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어눌하지 않았다. 끝을 흘리는 말투였다. 내가 못 들은 것일 수도 있었다. 외모는 말쑥했다. 검은색 등산모자 아래로 윤기 없는 눈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누런 피부빛깔에 눈가와 입가에는 주름이 깊게 있었다. 코는 높았고 입은 약간 벌린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키는 170센티는 될 정도로 큰 편이었고 곧은 허리에 마른 체형이었다. 호리호리했다. 어두운 파란색 인조견 반팔 상의에 검은색 반바지, 스포츠 샌들을 신고 있었다. 어깨만 살짝 굽은 모습이었다. 나이는 80세 중반은 되어 보였다.

  “석관시장은... 저 뒤로 가서 0000번 버스를 타셔야 돼요.”

  잘 알아듣지 못한 눈빛으로 고개도 갸우뚱하는 듯했다.

  "버스요, 버스를 타셔야 해요."

  노인은 내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려고 눈을 위로 올린 표정을 지었다. 이내 손바닥을 위로 살짝 올리더니 흔들흔들 내 앞에서 흔들었다. ‘지갑 없어’라는 말이 들린 듯도 했다.

  ‘걷기에는 좀 먼데...’하는 생각과 왠지 매일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때 길 건너에서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저기...! 저어기…!”

  그는 경비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한 손에 담배꽁초를 잡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위쪽 사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경비원을 쳐다보았다가 노인을 보았다. 느닷없는 상황에 노인은 잠깐 정지한 모습이었다. 경비원은 우리를 쳐다보고 ‘저어기! 저어기!’ 소리와 함께 팔을 뻗었다 접기를 반복했다. 그의 움직임은 컸다.

  “저어기, 저기…?”

  노인도 팔을 뻗어 비슷한 방향을 향하더니 웃음을 지었다. 때마침 신호등이 바뀌고 나는 ‘잘 됐다’ 생각하며 노인을 뒤로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노인이 내 앞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노인의 발걸음이 느려서 인지 여전히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며…. 하는 수 없이 눈인사를 했다.

  “석관시장 가… 는데, 어디로 가는 거… 가? 석관시장에 국민은행 있다… 데."

  ‘이런, 같은 질문…’

  석관시장은 이곳에서 아니, 이 상황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의 묵묵부답에 노인은 질문을 바꾸었다.

  “장위시장이 어디… 여?”

  장위시장은 멀지 않았다.

  “저 쪽이에요, 저 쪽으로 가시면 돼요.”

  아까 팔로 방향을 가리키던 그 방향으로 팔짓을 하며 얘기했다. 경비원한테 물은 질문도 장위시장이었으리라. 노인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장위시장이 어디… 여? 거기 국민은행이 있다… 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댁이 어디세요? 댁이여?”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오늘은 회사에 늦겠군, 전화해야…,’

  “집?”

  노인은 웃더니,

  “집은 번동이… 지?”

  “네, 번동 이세요? 번동은 저쪽인데요?”

  번동 쪽을 가리켰다.

  “아니, 국민은행…”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그냥 보냈다. 아침 시간이고, 무리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에 별일 없을 것 같았다. 노인은 움직이기 시작하자 휑하니 멀어져 갔다. 노인은 어느새 장위시장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다시 건넜다. 직진해서 걸어가더니 편의점 앞에 서있는 어떤 사람과 얘기 나누는 모습이 멀찍이 보였다. 두 사람은 좀 전의 우리처럼 팔을 하나씩 들고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가 왔다. 노인이 있던 그곳으로 버스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노인은 어디로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이 서있던 길 건너 반대편으로 얼마 전 입점한 국민은행이 보였다.

  ‘어, 국민은행…’과 동시에 ‘이 시간에 웬 은행…!’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득, 휴대전화에서 무시로 울려대던 안전 안내문자를 찾아 살펴봤다.

  ‘이런 상황 때문에 문자가 오는구나.’

  하루에 한 건에서 세 건 정도를 수신했었다. 이름, 성별, 나이, 키, 몸무게, 복장. 정형화되어 있는 그 문자들은 모두 실종자를 찾는 문자였다. ‘이러이러한 분의 보호자를 찾습니다’라는 문자는 전혀 없었다. 다들 나 같이 모면하듯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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