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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Sep 17. 2024

어느 이른 출근길

9월 17일 출근길

  구보는 …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과-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안전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전차가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는 잠깐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기와 더불어 그곳에 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저 차에 오른다 보았을 때, 그는 저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구보는, 움직인 전차에 뛰어올랐다.

                                                                                                                  -  박태원 –  





  오늘은 외근이 있어서 평소보다 한 시간 넘게 일찍 나왔다. 시계는 6시 10분을 보여줬다.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밝기. 새벽도 아침도 아닌 시간. 비는 후드득 내리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어슴새벽이라면 어둑하면서도 선선하고 물기 있는 공기가 얼굴이며 온몸에 스며드는 맛을 기대하게 된다. 오늘 이른 아침은 투명함도 스며드는 맛도 없었다. 약간 선선한 공기가 호흡에 따라 가슴 위쪽에서 두세 번 느껴지는 정도였다.


  사거리로 향했다. 왼쪽 길 건너 24시간 아이스크림 가게의 조명 불빛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각의 조명 불빛은 테두리가 비에 번져 보였다. 오른쪽으로 줄지어 있는 가게들 중에 한두 곳이 간판과 실내등을 켜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명 불빛은 어두움을 배경 삼아 다른 때 보다 밝아 보였다. 가게들 끝에는 24시간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내부 천장과 진열대들이 훤히 보이고 가게 앞의 아이스크림 쇼케이스 불빛은 내 속이 궁금하지 않으냐고 속닥거렸다.

  사거리 앞으로 다가서니 ○○○번 버스가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어쩐다…’

  한 차례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음은 시간에 더 쫓기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대각선으로 건너야 한다. 차량이 없는 횡단보도를 슬며시 건너고 좌우를 살핀 후 후루룩 횡단보도를 마저 건넜다. 사거리 모퉁이에 사람이 서있었지만 별로 눈치가 보이지는 않았다.


  새벽이 주는 차가움은 버스 안에서 나타났다. 몇 사람 뒤에 올라탄 후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내 앞으로 대여섯 자리가 비어 있었다. 버스 밖은 아직 어둑하고 버스 천정의 형광등은 차가운 빛을 흘리고 있었다. 짙은 노란색 철제 기둥들이 띄엄띄엄 서 있고 기둥들은 똑같은 노란색 철제 수평 막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천정과 바닥과 벽에 단단히 붙은 철제 구조물은 정글짐보다 성기었지만 조여 오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차가운 형광등과 형광등 빛에 온도를 빼앗긴 노란 철물들이 버스 안을 음산하게 만들었다.

  버스 운전석 오른쪽 위로 정류장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보였다. 전광판 글자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며 다음 정거장을 알려주고 있었다. 글자의 움직임에 맞추어 하차를 준비하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버스는 하차하는 사람들의 교통카드 태그에 맞추어서 소리를 냈다.

  “하차입니다.”

  내리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말을 건넸다.

  “하차입니다.”

  오늘 탄 교통버스는 정교하게 짜인 유기체의 느낌이었다. 버스가 낮은 구릉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르르릉릉 과과강강강 가앙!’ 힘쓰는 소리를 토해냈다.


  돌곶이역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대합실에 닿았을 때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앞에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장애인용을 이용할 수도 있지…’

  남자는 위아래로 검은색 복장을 하고 두툼한 등가방을 메고 있었다. 또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아니,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일 수도 있다-로 다가가며 처음 남자와 아는 척을 했다. 뒤의 남자도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개찰구로 향하는데 역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내 옆으로 줄지어 지나갔다.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가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깔의 긴 팔 상의, 청바지 또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 마찬가지로 검은색 계열의 등가방을 하나씩 멘, 햇빛에 짙게 그을린 얼굴에 몇몇 등산모자를 쓴 사람들. 이들은 인근 대형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의 출근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곳 돌곶이역은 누군가에게 노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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