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출근길
나는 출근길에 나서며 제일 먼저 사거리를 본다. 신호등을 보고 정거장의 전광판-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려주는-을 본다. 버스가 도착하면 출입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빈자리나 빈 의자를 본다. 자리를 잡은 후에는 주변 사람 한두 명을 잠깐 보고 창밖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눈을 감거나 한다. 열차 안에서도 빈자리가 있는지 쓰윽 보고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한번 보고 휴대전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한다. 주변 사람들을 짧게 한두 번 보기도 하고 전광판의 광고를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휴대전화를 본다. 열차 안에서는 달리 눈길을 둘 곳도 없다. 오늘도 주로 휴대전화를 봤다.
8-3번 출입구에서 열차를 탔다. 승객들은 제법 많아서 객실통로가 3열은 되어 보였다. 출입문이 열리자 출입문 중앙으로 텅 빈 느낌이다. 사람들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맨투맨 티를 입고 적당한 길이와 적당한 컬의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눈을 20도 정도 아래로 초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휠체어는 전동식이어서 길이가 1 미터는 되어 보이고 폭도 70 센티는 됨직했다. 사람들이 휠체어에 바짝 붙을 수는 없으니 휠체어는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휠체어 주변에서 등지거나 옆으로 섰고 대부분 휴대전화를 봤다.
객실통로 초입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조금 비켜서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앞에는 줄의자에 앉은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등가방을 앞으로 메고 군청색 재킷을 입었다.
'등가방을 앞으로 메고… 매너 있네…’
남자는 뿔테 안경 속 흐리며 졸린 눈빛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이때, 모기 한 마리가 남자의 오른쪽 볼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모기는 날갯짓을 하며 흔들리는 몸짓으로 남자의 피부 위에서 뜀박질을 했다. 이내 피냄새를 맡았는지 한 곳에 정지하고 침을 자리 잡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침을 고정하더니 정지 상태로 변했다. 모기는 남자의 피부에 시선을 고정했다.
'숨 죽이고 쳐다보게 만드네!'
남자는 한 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주변 소음을 삼켜버리는 정적이 내 주변으로 흘렀다. 속으로 일곱인가 세었을 때, 남자의 손이 볼 근처로 움직였다. 힘없이 살랑살랑 흔드는 손길. 모기를 잡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모기를 의식했는지도 알기 어려운 몸짓이었다. 그래도 모기는 때를 놓치지 않고 위험을 피했다. 모기는 날아 움직였다.
두 정거장이 지났다. 출입구 주변의 사람들이 내리고 짧은 공백 후 장애인 여자가 움직였다. 움직임은 빨랐다. 탁. 턱. 앞바퀴가 가볍게 출입문을 넘더니 뒷바퀴가 휠체어의 무게를 알려주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출입문을 넘었다. 정거장 출입문과 승강장의 간격은 7에서 8 센티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 8-3번 출입구를 이용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을 거 같아…’
자기가 다니는 시간의 열차 혼잡도, 출입구와 승강장의 간격, 승강장을 이동할 때의 위험 등등 고개 숙인 여자의 시선 속에 남모를 고민이 스며 있을 것이다.
여자가 내리고 승객들이 타고 이제 출입문이 닫혀야 할 때다. 뜬금없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 8-4번 출입문 고장으로... 좌우출입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옆 8-4번 출입문으로 눈길이 갔다.
'바로 옆의 문이 고장이라니…’
방송 후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출입문이 닫히면서 열차는 출발했다. 휴대전화를 보는 승객들의 모습에 별 변화는 없었다.
모기의 행방이 궁금했다. 아까 앉은 남자 옆은 출입구였고 그 구석에 외모가 비슷한 남자가 기대어 서있었다. 두 손을 모아 허리띠 아래에 두고, 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의 포개진 손등에서 모기를 봤다! 손등의 굵은 핏줄 위에 자리를 잡더니 침을 찌르고 있었다.
'요것들은 핏줄을 어떻게 알까…?'
내 눈에 이 상황은 다시 정지되어 보였고, 모기는 이제 넘쳐나는 흡혈에 부르르 몸을 떠는 듯했다. 동시에 남자가 손을 털듯이 흔들었다. 모기는 미련을 남기지 않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열차가 다음 역에서 섰다.
"… 출입문 고장으로 점검 중에 있습니다…"
고장 안내방송이 다시 나왔다. 그러더니 언제 점검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내 출입문이 닫히고 열차는 출발했다.
'이상 신호가 떴다 사라졌다 하는 건가…?'
8-3번 출입구에서 휠체어가 내릴 때 발생한 충격이 열차에 영향을 준 것일 까.
'그 정도 충격에 이상이 생기는 건 말 안 되지.'
하는 생각과 미심쩍은 불안감도 같이 일었다.
승객들이 내리고 열차 안은 약간 한산해졌다. 객실 통로 안쪽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창문을 바라보고 섰다. 창문 가운데에 모기가 붙어 있었다! 꼼짝을 안 했다.
'소화 중인가…?'나는 모기를 계속 쳐다봤다. 창문은 먼 풍경은 풍경 그대로 내 눈에 담아내더니, 근접한 풍경은 수평선으로 바뀌어 뒤쪽으로 흘러갔다. 방음벽이 만들어 내는 회색의 수평선이나 울타리가 만들어내는 연녹색의 수평선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다음 정거장에 들어서며 녹색의 덩어리와 노란색의 작은 덩어리가 후욱 후욱 지나가더니 빨간색의 띠가 더해져서 지나갔다. 스크린도어의 사인들이었다. 눈이 어지러웠다. 모기는 여전히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