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출근길
어제저녁에 오늘 출근길을 생각하며 머리가 번잡했었다. 날씨 예보 때문이었다. 어제 오후부터 내린 비는 오늘도 계속될 예정이었다. 시간당 강수량이 3에서 4밀리로, 한 때는 5밀리로 오늘 오후까지 이어진다는 예보였다.
'이 정도면 적지 않은 양인데…'
다행히 기온은 14도 내외로 하루 종일 비슷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많은 비를 뚫고 출근해야 하는 생각에 잠자리를 뒤척였었다.
'까짓것 출근하는 거 가지고 웬 부산함?' 하면서도,
신발이 젖고 바지도 젖은 채 바람을 맞서며 우산을 부여잡고 출근할 생각에까지 미치면 스스로도 이런 부산함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비에 흠씬 젖어도 개의치 않을 신발을 신고,
'한 번만 더 입고 빨자…' 하는 생각으로 걸어 두었던 비에 젖어도 티가 나지 않을 신사복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어…, 애매하다!'
비가 그쳐 있었다. 보슬비가 흩날리다가 잠시 멈추었다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늘은 두텁게 흐렸다. 비가 다시 올지 얼마나 올 지 알 수 없었다. 우산을 들고 가기는 싫고 안 들고 가 자니 비를 맞을 것 같고.
적은 비더라도 비를 맞고 추레한 모습이 되는 것은 더 싫고.
'… 들고 가자.'
버스에서 내렸다. 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가랑비도 못 되는 요즘 시대에 맞게 얘기하면 분무비라고나 할까.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와 슬쩍 적시더니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비.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그 위로 띄엄띄엄 우산이 펼쳐졌다. 나도 우산을 펼쳤다. 겨우내 꼬깃꼬깃 우산 꽂이에 눌려 있던 우산이라 여기저기 주름이 복잡하게 잡혀 있었다.
'이 비가 주름을 펴 주려나…'
열차에 올랐다. 빈자리가 몇 자리 보였다. 한 남자 양 옆으로 자리가 비어 있어 옳다구나 생각하며 그중 한 자리에 앉았다. 앉고 보니 자리가 좁았는데 옆자리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엉덩이를 의자에 반만 걸치고 앉게 되어 불편했다.
'옮길까…?'
맞은편에 빈자리가 보였다. 자리를 옮긴다고 옮겼는데 더 불편하기만 했다. 양 옆의 사람이 꼼짝을 안 했다. 등을 등받이에 기대지 못하고 어깨는 양 옆 사람 어깨 사이로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왼쪽 어깨는 옆 사람 어깨 앞에 겹쳐 기대어졌고 오른쪽 어깨는 옆 사람 어깨 옆으로 끼어져 맞닿았다. 등받이에 기대어 앉고 싶은데 어정쩡하고 허리에 부담 가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눈감고 가는 게 상책이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한 남자가 앉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다. 허리를 세우고 장우산을 무릎 앞쪽에 세우고 두 팔을 내밀어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자세였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같이 부여잡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다시 보니 남자는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뜬금없이 열차에 내동댕이쳐진 후 날짜가 어찌 되는지 궁금할 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있을까? 줄의자에 앉은 승객들 중 한 명 내지 두 명 정도만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면 틀림없이 월요일일 확률이 높다. 짧은 시간을 쪼개어 바삐 주말을 보냈든 침대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보냈든 출근길 노동을 맞이하는 모습은 대부분 그냥 눈 감고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눈을 감은 사람들이 많다.
앞서 내 자리에 앉은 사람을 다시 봤다. 자세가 편해 보인다. 등을 등받이에 붙이고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눈은 지그시 감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옆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