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출근길
코트를 입을까 말까 셈을 하다가 털코트보다는 가벼운 가죽 코트를 입고 나왔다. 그래도 영하 3도라는데 옷을 하나 덧입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끼는 코트가 갑갑했다. 목 티 위로 둘러 감싼 목도리는 갑갑함을 더했다. 집을 나서는데 공기는 선선하기만 하다. 괜히 껴입었나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살펴봤다. 정지된 듯 조용하기만 하다. 열차를 타고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찬가지로 조용하다. 앉은 사람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두세 사람 정도가 휴대전화를 하고 있었다. 줄의자에 앉은 여자의 희멀건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팔자 주름이 선명한 나이 든 여자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복장이 눈길을 끌었다.
두 정거장이나 지났을 까. 출입구 옆 철제 기둥에 기대고 있던 한 여자가 주저앉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윤기 있는 머리칼은 헝클어졌고 벽에 힘없이 머리를 기대고 쭈그리고 앉았다.
바로 옆에 앉은 젊은 남자는 앞만 보며 멀뚱거렸다. 슬쩍 한번 곁눈질을 하고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진청색의 파카와 녹색 조거팬츠를 입고 있었다. 둘레머리가 허옇게 짧은 머리에 구릿빛 얼굴은 그냥 보기에도 우락부락한 모습이다. 휴대전화를 보다가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그 옆으로 앉은 여자가 어색한 복장의 여자였다. 베이지색 파카를 입었는데 목둘레 털이 아주 풍성했다. 주저앉은 여자를 봤는지 못 봤는지 입술을 꾹 다물고 휴대전화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세 사람이 탑승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은 주저앉은 여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세 번째로 탄 젊은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한번 쳐다보며 멈칫했다. 이어서 바로 등을 돌리고 반대편 문 쪽으로 향하여 섰다. 휴대전화를 꺼내고 이어폰으로 굳게 귀를 막는다.
정거장을 지나며 이번에는 한 젊은 여자가 탑승했다. 주저앉은 여자를 쳐다보는데 어쩌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켜더니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으며 문자를 열심히 보냈다.
여자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힘겹게 일어섰다. 다리를 곧추 세우지 못하고 머리는 여전히 벽에 기대었다. 잠시 버티더니 다시 주저앉았다. 내 앞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한번 내려봤지만 계속 앉아있기만 했다.
'저럴 거면 왜 쳐다보나…'
젊은 여자는 이제 거의 바닥에 주저앉을 자세였다.
열차가 신당역에 다가가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려는 지 주저앉은 여자가 다시 일어났다. 얼굴빛은 어두웠고 창백하지는 않았지만 힘없고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서둘러 열차에서 내렸다.
눈가가 간질간질했다. 풀린 날씨에 미세먼지가 많은 것이 분명했다. 눈을 깜박이며 간지럼을 떨쳐 보았다.
2호선 8-3번 출입구로 걸어갔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어둡게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은 베이지색 모직 롱코트를 입고 지나가고 어떤 이는 연하늘색 반코트를 입었다. 8-3번 출입구 앞에 섰다. 미색의 경량 패딩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고 흰색 후리스 점퍼를 입은 사람이 뒤따랐다. 열에 여덟은 다채롭고 가벼운 복장이었다.
2호선 열차를 탔다.
'다 어디로 간 거지…?'
열차 속 사람들은 시커먼 색 일색이었다. 한순간 착각이었던 건가.
출근길을 나선 후 조용하기만 했던 버스에서 속머리 없는 한 남자를 봤었다. 지하철 입구로 가는 남자는 걸음을 절룩거렸다. 왼팔로 파우치를 감싸 안았는데 파우치 위에 우유가 얹어 있었다.
'아침인가 보네…'
지하철 대합실에는 오늘도 ***국회의원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나 동료의 인사소리가 오늘따라 얌전하게만 들렸었다.
남자가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방향을 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분명 뭔가를 원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