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출근길
조끼를 덧 입고 속바지를 입고 장갑을 끼며 단단히 복장을 챙겨 입었다. 몸의 열기가 갇히며 얼굴까지 후끈 달아올랐다.
'너무 껴입은 건가...?'
집 앞을 나서며 무색함을 알게 되었다. 어깨가 자꾸 움츠러들었다. 세찬 추위가 얼굴이며 몸 전체로 닥쳐왔다.
영하 40도의 북극 한파, 북극발 얼음공기가 한반도로 직진하는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온은 영하 18도인데 북서풍의 바람이 강해서 체감기온은 영하 20도 이하라고 기상 어플이 알려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겨울철 복장에도 변화가 있었다. 귀덮개가 등장했다. 장갑을 낀 모습도 늘었다. 파카의 모자를 깊게 쓰고 겹쳐 입은 후드티의 모자도 쓰고 있었다. 목도리를 머리에 둘러 감싼 모습도 보였다.
이 정도면 바로 옆집 남자라고 할 수 있다. 골목길을 벗어날 때부터 이 남자를 만났다. 아주 가까운 곳에 이 남자의 집이 있을 것이다. 오늘에야 이 남자와 내가 아주 비슷한 출근길 여정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버스정거장에서도 열차 속에서도, 심지어 하차하는 잠실역까지도 이 남자는 내 근처에 자주 있었다.
'이 사람도 나를 알 것 같아…'
처음 인지한 것은 신당역 2호선, 8-3번 출입구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때였다. 남자가 환승 통로 저편에서 종강 종강 걸어왔다. 키가 160센티 정도 될 까. 남자는 걸어와 8-3번이나 근처에 섰었다. 그때 이미 눈에 익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음 기억은 잠실역이었다. 복장은 한결같이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군청색 파카와 고동색 계열의 신사복 바지를 입었다. 신발은 전통적인 브라운색 랜드로바였다. 가죽으로 만든 스니커즈가 아니다. 발등이 두툼하고 바닥은 검은색 생고무인 50대 이상에게 친숙할 법한 랜드로바 그것이었다.
머리는 곱슬머리로 짧았고 안경도 오래된 스타일이었다. 평평하고 얇은 것이 둥그렇게 안경알을 감싼 안경테는 오래전 유행한 모델이었다. 주름진 얼굴은 허연 편이었다. 잠실역에서 단출하고 허연 얼굴로 스쳐 지나가거나 앞서가는 모습에 공무원인가? 실내에서만 지내는 회사원인가? 그럼, 지하철 직원인가? 몇 개의 질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불현듯,
'혹 훨씬 전부터 잠실역에서 스쳐 지났던 건 아닌가?'
생각이 일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눈여겨지지 않는다.
신당역에서 갈아탔다. 줄의자 한쪽 구석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 파카에 검은색 바지, 무릎 아래를 X자로 겹쳐 풀썩 주저앉은 모습이다. 목에는 털실로 정성스레 짠 연회색 목도리를 감고 있었다. 흰색 머리칼이 귓등 위쪽으로 깔리고 얼굴은 불그스레했다.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으덕 끄으덕 하더니 끄덕! 눈을 게슴츠레 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르릉!"
코 고는 소리를 내었다.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더니 눈을 스을쩍 뜨었다 감고 콧소리를 다시 내었다. 북풍한설의 얼었던 몸이 풀리며 잠은 쏟아지는데, 이 잠은 불안스러울 따름이다.
남자는 세 정거장을 지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부르르 몸을 털며 열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