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출근길
바보스럽다. 버스 정류장에서 ○○○번 버스를 타려고 지갑을 꺼내 고서야 또 교통카드를 두고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바보! 바보!'
사거리로 걸음을 서두르며 전화를 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륵."
오늘은 용케 전화를 받았다.
"나가 있을 게요."
사거리를 건너고 뜀박질을 하며 골목길로 들어가 집 앞에서 교통카드를 건네받았다.
아내의 복장은 잠옷에 외투를 하나 걸친 모습이었다. 머리칼은 부시시시 산발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두세 사람이 눈길을 주었다. 아내는 안타까운 얼굴로 나만 바라보며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길은 쌀쌀맞았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쳐 온기를 빼앗아 갔다. 발끝에 냉기가 느껴져 발가락을 옴지락대며 걸었다.
"으으, 춥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양쪽 어깨를 동그랗게 돌리며 열기를 만들고 어깨를 펼쳤다. 몇 걸음 못 가서 다시 어깨가 오므라든다. 동장군의 매서움이 서서히 스며오고 있었다. 하늘도 건물들도 얼어붙어 꼼짝달싹 못하는 모습이었다.
열차가 동묘역에 도착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올라탔다. 실내는 사람들로 붐벼 동묘역에서 탄 승객들은 출입구에 몰려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열차를 타지 않고 승강장에 서있었다. 출입구에서 2미터 정도 떨어져 열차 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었는데 눈빛에 즐거움이 보였다. 마스크로 절반의 얼굴이 가려졌지만 확실히 웃는 표정이었다.
'뭐야, 이 남자…'
남자는 열차에 탄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입구 바로 안쪽에 서서 승강장을 향한 여자였다. 여자는 후리스 상의를 입고 긴 머리에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의 표정으로 가히 상상이 되었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몸짓을 했다. 뭔가 궁금해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어서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흔들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이어서 남자도 손동작을 했다. 여자가 몸짓으로 답을 했다. 남자는 다시 눈가에 웃음을 지었다.
여자의 주변 사람들 표정이 자못 궁금했지만 볼 수는 없었다.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건조한 안내방송이 나오고 출입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아쉬워하는 남녀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여자는 출입문의 쪽유리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남자를 쳐다봤다. 열차가 움직이자 고개를 돌리며 창 밖의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도 허리를 기울이며 이쪽을 보았다. 서로 손을 흔들고 휘저으며 잘 가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얼굴이 유리창에 흐리게 비쳐 보였다.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단지 머리칼을 좌로 우로 넘기며 자신을 뽐내는 모습 만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남녀가 보여준 몸짓, 그것은 ‘사랑의 몸짓’의 전형이었다. 밀란 쿤데라가 얘기한 불멸의 몸짓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