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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첫날, 잘 차려입고 나선 길

2월 4일 출근길

by 박유재 Feb 04. 2025

  오늘은 영하 3도의 날씨다. 집을 나서며 만나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지 않고 선선한 편이다. 하늘은 풀린 날씨를 알려주는 듯 희뿌옇다. 요즘은 확실히 기온과 하늘의 맑고 흐림이 반대된다. 기온이 내려가면 맑고 올라가면 흐리고. 흐린 하늘의 주범은 대부분 미세먼지 때문이다. 선선하면서 흐린 2월의 시작이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었다. 오늘은 드레스 코드가 요구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노타이에 정장.

  진청색 바탕에 흐리고 좁다랗게 스트라이프가 새겨진 정장이다. 겨울 정장은 이 것뿐. 겨울 정장은 자주 입을 일도 없고 온화해지는 날씨 탓에 몇 벌 갖추기에는 과한 품목이다. 몇 번이나 입었을 까. 입어본 지 해를 넘긴 게 분명하다.

  "입을 수 있겠어?"

  어제 정장을 입을 거라는 내 말에 대한 아내의 대꾸였다.

  "괜찮겠지."

  '설마 못 입을까?'

  몸에 별 변화가 없었는지 바지를 입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허리는 도리어 여유가 있어 벨트를 매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허리에 옷이 잡히는 느낌이면 벨트를 안 차곤 했었다.

  '어떤 벨트를 맬까?'

  처음에는 평소에 메는 진브라운 벨트에 손이 갔다. 아무래도 감색 정장과는 어색한 느낌이다. 한 동안 매지 않던 검은색 가죽 벨트를 꺼냈다. 말 그대로 '신사 정장 벨트'. 벨트를 찰 때 나는 소리도 오랜만이다.

  "디리리릭!"

  구멍이 없는 벨트로 요철을 걸림쇠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다. 적당한 조임으로 벨트를 매었다. 몸의 변화에 맞추어 주는 벨트. 좋은 아이템이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눈길이 손으로 갔다. 정맥이 불끈불끈 도드라지고 윤기 없는 양손이 밋밋하고 싱겁게만 보였다.

  '기왕 차려입는 거…'

  일어나 반지를 찾아 꼈다. 싸구려 스텐링이지만 값싸 보이지 않는 반지였다. 메마른 손이 반지 때문에 벌충이 되었다.

  "양말은 갈아 신지?"

  아내가 말했다.

  아이보리색 바탕에 푸르고 붉은 선들이 어지러이 새겨져 있고 동물 문양까지 있는 양말이었다. 조밀조밀 투박한 천으로 만든 양말이어서 신었을 때 편하다는 생각과 정장이 주는 단조로움도 줄일 겸 신은 것이었다. 아내가 브라운 계통의 단색 양말을 가져다주었다.

  양말을 갈아 신고 상의를 걸쳤다. 입었을 때 착! 감싸지고 어깨 각이 만들어지는 차림새가 새롭다. 싱글 정장이 주는 산뜻함. 단순함에서 맞볼 수 있는 미학이다. 코가 뾰족하니 튀어나온 브라운색 구두로 정장 패션을 완성한 후 아내와 인사했다.

  아내의 표정이 흐뭇하다.

  "자주 입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며 다가오는 중 늙은 남자가 보였다. 후줄근한 검은색 파카에 헐렁한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흰색 운동화마저 윤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걸으며 한 입 빨고. 이제는 보기 드문 보행 흡연을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시간이 아니라면 영락없이 마실 가는 복장이었다. 가만 보니 걸음걸이도 약간 절룩거리며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걸음일까...?'

  남자는 ◇◇◇번 버스를 탔다. 장위고개를 넘고 저 멀리 미아리고개까지 넘어가는 버스였다. 구불구불 비탈길을 오르고 급회전을 하며 다시 오르는 고갯길. 위태롭게 내리 달린 후 미끌미끌 구불텅한 길을 지나 좀 달리고 나면, 다시금 강강강 가앙 토해내듯 신음하며 오르는 고갯길.


  저 남자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개를 넘어왔을 까.

  나는 또 몇 개의 고개를 더 넘어야 할 까. 요즘 하늘처럼 눈앞에 명암이 겹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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