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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May 17. 2024

삼원숭가족: 33살 부부와 9살 아이의 이야기-5

격세유전

나에게는 여느 집안의 가장과는 조금 다른 아빠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하더니 취업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퇴사하고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30여년을 하고 있는.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때 모자랄 것 없이 살다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이민을 떠나고, 또 1년도 안 돼 돌아와서 파산하는 등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아빠를 책임감 없는 가장이 아닌 오랜시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좇는 한 개인으로 생각하게 된 건 내 아이를 기르면서였다. 사실 개인으로만 본다면 아빠는 꽤 대단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기기 만드는 것을 좋아해 납땜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혼 후에는 직접 기기를 분해하고 지방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해서 본인 회사를 차렸다. 시대를 앞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덕분에 회사는 승승장구했지만 무리한 해외 진출을 시도하다 파산했고 그 이후에도 같은 사업을 이어서 30년이 넘게 하고 있다.


이런 아빠 아래서 불안정하게 자란 우리 세 남매는 모두 “안정”을 갈망했고 현재 모두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벌리는 것이나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력 끝에 안정적인 생활을 이루고 나니 이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내 능력을 좀더 펼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숭이는 우리 아빠를 닮았으니 아빠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마음껏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걸 좋아하고, 뭔가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숭이. 그러고 보니 증조할아버지도 크고작은 발명을 취미로 하셨다고 했다. 이런 걸 격세유전이라고 하는 건가?

숭이는 지금도 자기만의 보드게임이나 책을 만들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아이의 세상을 지켜주고 싶어진다. 어떤 삶을 살든 숭이의 선택을 응원하겠지만 사실 나는 답이 명확한 길을 가는 것보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싶다.


‘내 인생에 사업은 없다’ 고 다짐했던 내가 나중에 숭이가 자기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그게 무얼지 기대하게 되는 걸 보면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이지 내 세상을 깨는 일인 것 같다. 아빠를 닮은 숭이가 꿈을 펼치는 걸 보면서 나의 아빠를, 나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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