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다.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보니 졸업하는 데 교양학점이 부족했다. 교양과목을 찾던 중 영문과의 영어산문이라는 과목을 발견하고 수강신청을 했다.
첫 수업에 들어가니 넓은 강당에 이삼백 명은 돼 보이는 수강생이 북적대고 있었다. 담당교수님은 연세라 표현해도 무방할 나이였고 말도 약간 어눌했다.
강의를 소개하던 노(老) 교수는간단한 단어조차 철자를 자꾸 틀렸다. 학점을 메우러 오긴 했지만 실망이 컸다. 그래도 이런 교수님이 학점은 잘 준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실망감을 달랬다.
공부할 작품은 ‘The Luck of Roaring Camp’라는 소설이었다. 미국 작가 Bret Harte가 1868년에 발간한 단편으로, Harte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교재를 구입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2년 7개월의 군생활은 가슴은 학구열로 채워 주었지만 머리는 텅 비게 했다. 호기롭게 펼쳐든 교재는 첫 페이지부터 QR 코드였다.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체로키 살(Cherokee Sal)은 채끝살만 머리에 맴돌게 했다. 학생들을 괴롭히려 쓴 소설임이 분명했다.
결국 예습을 했다는 뿌듯함만 안고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노교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손으로 교재를 접어든 노교수는 담담하게 QR 코드를 풀어냈다. 매직 아이(magic eye)처럼 갬프 주위로 산이 솟아오르고 켄턱(Kentuck)이 살아나 'The d—d little cuss!'를 뱉어댔다.
어쩌다 이 소설이 생각나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여전히 한 페이지를 넘기기힘들었다.노교수도 없는 지금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은 그 맛을 되살려줄 고수는 없는 것인가.
AI가 내놓은 번역은 무 맛 나는 배 같았다. 아무리 HBM3E 8단 12단을 때려 박아도 안 되는 건 안되나 보다.
큰일이다. Roaring Camp 같은 우리 주변에고수는 사라지고주화입마입은사람들만 나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