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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르빠 Aug 17. 2024

The Luck of Roaring Camp

오래전이다. 제대하고 4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보니 졸업하는 데 교양학점이 부족했다. 교양과목을 찾던 중 영문과의 영어산문이라는 과목을 발견하고 수강신청을 했다.    

  

첫 수업에 들어가니 넓은 강당에 이삼백 명은 돼 보이는 수강생이 북적대고 있었다. 담당교수님은 연세라 표현해도 무방할 나이였고 말도 약간 어눌했다.


강의를 소개하던 노(老) 교수는 간단한 단어조차 철자를 자꾸 틀렸다. 학점을 메우러 오긴 했지만 실망이 컸다. 그래도 이런 교수님이 학점은 잘 준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실망감을 달랬다.      


공부할 작품은 ‘The Luck of Roaring Camp’라는 소설이었다. 미국 작가 Bret Harte가 1868년에 발간한 단편으로, Harte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교재를 구입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2년 7개월의 군생활은 가슴은 학구열로 채워 주었지만 머리는 텅 비게 했다. 호기롭게 펼쳐든 교재는 첫 페이지부터 QR 코드였다.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체로키 살(Cherokee Sal)은 채끝살만 머리에 맴돌게 했다. 학생들을 괴롭히려 쓴 소설임이 분명했다.      


결국 예습을 했다는 뿌듯함만 안고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노교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손으로 교재를 접어든 노교수는 담담하게 QR 코드를 풀어냈다. 매직 아이(magic eye)처럼 갬프 주위로 산이 솟아오르고 켄턱(Kentuck)이 살아나 'The d—d little cuss!'를 뱉어댔다.


어쩌다 이 소설이 생각나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여전히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노교수도 없는 지금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은 그 맛을 되살려줄 고수는 없는 것인가.


AI가 내놓은 번역은 무 맛 나는 배 같았다. 아무리 HBM3E 8단 12단을 때려 박아도 안 되는 건 안되나 보다.  


큰일이다. Roaring Camp 같은 우리 주변에 고수는 사라지고 주화입마 입은 사람들만 나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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