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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Sep 19. 2024

그녀가 울고 있었다.

10년의 짝사랑(5)

시기와 질투는 그 어떤 문화권이나 종교에서도 강조하는 중대한 죄악이지만,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생존본능에서 기인하는 만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앞선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여러모로 정서가 건강하지 못한 아이였던 만큼 시기와 질투에도 취약했는데, 특히 친구들의 웃음과 행복을 시기했다.


내 주변에는 그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부모를 비롯해 많은 친척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 몇몇도 그러했다. 그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에 속해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드리워지는 그늘은 고등학생의 어린 시선에도 쉽게 드러났다. 그래서 시종일관 밝은 모습의 사람들에게 질투와 시기를 느꼈던 것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운 좋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불행이라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옷이 젖는 것 따위 밖에는 모르고 자라왔을 법한 사람들이라 여겼다. 그러한 추측은 대체로 맞아 들어가는 듯 보였다. 항상 밝았던 그녀 역시 그런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다만 다른 운 좋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누구보다 사려 깊고 친절했기에, 질투와 시기 대신 동경심이 들었고 그런 점이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2학년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다른 여자아이와 연애를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항상 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덕분에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 그녀의 자리가 한참 동안이나 비어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밖으로 나가 근처를 돌아보았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지만 맞을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장을 바라보는 야외 계단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한밤중 시골 학교 운동장은 무척이나 어두웠지만 멀리서도 그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나 해맑던 그녀가 한없이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망설임 없이, 하지만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잠깐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 없이 다시 어둠 가득한 운동장으로 고개를 돌리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난 그걸 옆에 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어쭙잖은 질문이나 위로로 슬픔을 쏟아내는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그녀는 얇은 교복 셔츠만 입고 있었다.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녀는 역시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애처로운 훌쩍거림이 잦아들었고 슬쩍 바라본 얼굴도 방금 전보다는 차분해져 있었다. 비가 많이 오니 이만 들어가자고 권유했으나 그녀는 교실에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비는 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동의한 듯 일어섰다. 우린 뒤를 돌아 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기숙사생들과 담당 교사들은 모두 3층에 있었기에 불 꺼진 1층은 어둡고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오래된 나무 복도를 은은하게 비췄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 향이 가득한 복도를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걷다 보니 숙직실이 보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당기자 쉽게 열렸다. 당시 숙직을 하는 교사는 없었기에 이름만 숙직실이지 실제로는 휴게실에 불과했다. 세평 남짓한 공간에 소파와 테이블 정도가 다였다. 우린 말없이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혹여나 누군가 들어올까 싶어 불은 켜지 않았다. 복도와 마찬가지로 작은 창문을 통해 가로등 빛이 들어와 눈물에 젖은 그녀의 가련하면서도 청초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비가 창을 때리는 소리와 가끔씩 몸을 움직이며 나는 소파의 가죽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이날 그녀가 울고 있었던 이유를 끝내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표정과 분위기로 미루어 보통 일이 아니겠다는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훗날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부모의 사업 실패와 이혼 등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더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다음날 교실에서 본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밝고 상냥한 모습이었다.


그날 그녀의 슬픔을 본 이후, 불행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겉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마음에 새겼다. 겉만 보고 감히 사람의 깊이를 판단하곤 했던 어리석은 편견과 세상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녀를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형태를 잃을 정도로 부서지기까지는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작에 그녀가 있었고 훗날 그것이 깨어지는 과정에도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내 편협함에 오랜 시간 꾸준히 충격을 가했고, 그로 인해 벌어진 틈새로 그녀의 빛이 계속해서 새어 들어왔다. 희미한 빛은 비록 어두운 내면의 일부분 밖에 비추지 못했지만, 그 에너지는 오랜 시간 천천히 쌓여간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긍정적이고 정의로우며 편견에 맞서는 성격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대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그녀와 나 사이에 특별한 일화는 거의 없었다. 각자 교제하는 상대가 있었던 데다가 내가 애써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애정이 담긴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의 그녀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반장이었던 그녀가 자습을 관리하겠다며 교탁에 앉아 있다가 오히려 본인이 졸고 있던 모습, 수업시간 졸다가 선생님들에게 자주 혼나던 모습(그녀는 참 잠이 많았다.), 몸이 아파 시름거리던 모습, 즐거운 일에 환하게 웃으며 들떠 있던 모습, 어느 날 갑자기 단발머리로 나타났던 모습, 그 밖에 내 시야에 들어와 있던 그녀의 모든 모습들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내 시선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를 쫓아다녔다.


어느 날은 그녀가 선배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별다른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그녀는 꿈속의 봄날, 그림 속 아름다운 풍경, 밤하늘의 별처럼 마음 깊이 갈망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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