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짝사랑(4)
소중한 것을 잃었거나 간절히 바라던 것이 좌절되었을 때, 그와 정반대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거나 직접 경험하곤 한다. 주식으로 돈을 잃은 후 되려 씀씀이가 커지고, 오랜 연인과 헤어진 후 가벼운 연애를 반복하거나, 취업에 실패한 뒤 구직 활동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그것이 반발 심리에 의한 행동인 경우 보통은 실패와 후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이는 계기가 된 처음의 좌절에 고통을 더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이 인간인데, 그러한 판단력이나 경험이 전혀 없던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기란 불가능했다.
그녀는 내가 어둠에서 빠져나와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줌과 동시에, 첫사랑이자 짝사랑에 크나큰 아픔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로부터 기인된 내면의 불안정은 학기 초의 무기력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보다 실체적인 괴로움이었기에 그것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고, 이는 반발 심리와 얽혀 그녀와는 정반대의 색채를 가진 한 여학생과의 연애로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짝사랑의 순수함이 깨졌다고 비난한다면 애써 반박하지는 않겠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를 계속 좋아하고 있었다는 말이 변명으로 들릴 수도, 그리고 당시 사귀던 사람을 모욕하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어쨌든 그 연애는 시작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이나 과정과 결과도 더없이 나빴다. 그녀로부터 온전히 치유받지 못한 불안정한 자아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습된 잘못된 방식의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냈다. 타인에게 의지하여 자아를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방법부터 오답이었던 데다가, 의지하려는 상대도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의 나 만큼이나 성숙하지 못했던 상대와의 연애는 원초적인 만족감 밖에는 주지 못했고, 오히려 스스로를 점점 좀먹다가 결국 파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겪은 그 관계는 훗날 오래도록 헤어 나오기 힘든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의 굴레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거기에서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은 계속해서 짝사랑하고 있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집착과 미련으로 점철된 그 짝사랑을 10년 동안이나 놓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