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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내게 전하는 속삭임

나만의 피그먼트

by Lizzy Moon

나의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간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 활동적인 게임들을 하며 깔깔대며 웃는것 것보다, 그들의 시선에서 조금은 떨어진 그렇지만 멀어지지 않은 어떤 곳에서 열매나 꽃, 잎사귀들을 찾아다니며 돌로 찧어 색을 발견하는 재밌어하던 시절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남아 있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시각 예술을 전공하고, 작업을 그리고 교육을 하게 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의 창작 시간들을 대만에 와서 다시 상기하게 됐다. 예술이라는, 시각 언어라는 나만의 예술 언어를 갖게 된 최초의 순간을 짚어내야 한다면, 자연물과 함께 놀던 그 순간일 것이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색들을 나만의 피그먼트로 만드는 작업은 긴 시간성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색을 찾기 위해 늘 길 위를 탐색하고, 일상 속 스치는 자연을 세밀하게 느끼기 위해선 느긋한 마음은 필수이며 호기심 일렁이는 눈빛과 은은한 체력을 보장해야 지속 가능한 작업이다. 물감을 만드는 방법은 무척 단순하고 특별한 기술을 갖지 않지만, 물감을 만드는 과정 속 어떤 의미를 담아 오브제를 선택하고, 색을 뽑아내는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 그리고 생각에 대한 답변을 얻는 과정이, 결국 이 작업이 내게 던져주는 의미체라고 생각한다.


대만에 정착한 시간도 이제 곧 한 달이 된다. 이곳에선 새소리에, 강렬한 햇빛에 눈을 뜨고 잠을 깬다. 부지런한 어르신들은 아침 개장 전 빌리지를 단장해 낸다. 지난밤 떨어진 낙엽들을 정리하고, 관광객들이 흘리고 간 물건들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며, 쓰레기통을 정돈하고 공용 시설이자 이곳의 상징인 오렌지+레드 컬러의 철제 의자들의 위치를 맞춰낸다. 그렇게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이곳의 모든 공간들은 오늘의 방문객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스태프들은 잠가둔 갤러리들의 문을 열고, 세팅을 조정하고, 전시장 컨디션을 확인한다. 모두가 자신의 맡은 일들을 해 내느라 여념 없을 그 시간에 나는 자연물을 찾아 길을 걸었다. 첫 주는 이곳의 사람들의 동선을 알지 못해 조금 헤맸다. 내가 찾는 건 떨어진 꽃잎이나, 시든 잎사귀들이지 파릇하게 가지 끝에 달려있는 잎사귀들이 아니었다. 빌리지를 깔끔히 청소를 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나는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 공원을 산책한다.


누군가가 오기 전, 지난밤 자연이 내게 건네준 선물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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