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게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타인과는 구별되는, 타인으로부터 완벽히 어긋나는 무언가를 가졌다고.
과거사로 비롯된 트라우마든, 내 기질적인 어려움이든
그런 것들이 나를 평범함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막연하게 믿었다.
다수는 하지 않을 선택을 해왔던 것.
기존 루트에서 조금 어긋나게 살아온 것.
내 콤플렉스이자 퍼스널리티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흠도 날카롭게 꾸며내며
구별될 수 없는 개성을 창작해오던 나는,
사회와 영영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자
어디에나 맞추기 쉬운 반질반질한 돌멩이가 되고자 했다.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흐름을 가진 내 삶을 들여다보는 시리즈를 쓰기도 했다.
튀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가끔가다 듣게 되곤 하는
'당신은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 '특이한 사람'.
이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었을 때 모욕을 느낌과 동시에 흡족함을 느꼈다. 찐따츠름.
특별함, 그게 내 영원한 소망인 것처럼.
지난달 종합심리검사를 했다.
내 기질과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조각내서 분석하는 검사였다.
자기 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도,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을 소름 돋게 파악한 것도 아니지만.
인간 심리를 이렇게 과학적이게 설명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검사 자체는 mbti와 다른 훨씬 복잡한 체계와 신뢰도를 가졌겠지만,
솔직히 mbti랑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체크하면 그렇다고 진단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로르샤흐 검사에서 임상심리사가 기록한 문장이 있었다.
"일반적인 범주로 해석하지 않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해석을 한다."
흡족.
무려 8페이지가 되는 심리분석 보고서 분량이지만, 그 문장 밖에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이렇게나 그런 말을 좋아해.
애초에 그렇게 해석되려고 애썼으면서.
독특하고 특이하다는 말이 욕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최근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어떤 인플루언서가 올린 입장문을 보았다.
자신의 비정상적인 과거에 대한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
그에 따르는 자기혐오,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망상이 가득한 글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혐칭으로 불렀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그가 자의식 과잉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동족혐오를 느꼈다. 그의 구구절절한 자기연민이 알량하게 느껴졌다.
그는 알까?
자신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사실을.
과거 사례는 일반적이며, 그의 비정상성도 타인과 구별되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특별하게 불행하지도, 특별하게 망가지지도 않았음을.
평범한 불행. 평범한 인생.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고, 크게 어긋나 있지도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 인생을 산다.
행복으로 정의될 수 없지만, 불행으로도 정의될 수 없다.
유별나게 불운하고 유별나게 축복받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특별함과 평범함은 측정하고 비교될 수 있을만큼 대단한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정해진 카테고리에 아주 작은 단위까지
분류와 분류의 작업을 거쳐 저장되어 있으며,
그 분석은 개인을 설명할 수 있다.
모두는 정해져있는 세상의 질서 안에서 살아간다.
제때에 맞는 일이 제때에 일어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평범하게 살 수 있고, 평범하게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크나큰 애정을 가지고, 그러나 당신을 혐오하며
당신은 원래부터, 이미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욕을 해주고 싶다.
평범함이 당신을 특별한 외로움에서 해방시킬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의 고된 삶에서 당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