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산속이라 밤에 어디를 가면 그냥 깜깜하다. 밤이 되면 빛이라곤 달빛밖에 없다. 그래서 달빛이 밝으면 우리집 소소한 이슈다. 달이 밝아? 그럼 달구경 가야지. 상당히 시시하지만 날씨는 나에게 도파민과도 같다. 날이 맑으면 일출과 일몰이 예쁘고, 밤에는 별이 별별별 보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구경하고, 안개가 끼면 안개를 구경하고. 폭설이 내리는 브레이킹뉴스가 뜨면 하루종일 창문 앞에 앉아있기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콘텐츠처럼 관람하는 맛이 있다.
요즘은 날이 선선해서 옥상에 올라가 야전침대를 펼쳐놓고 눕는다. 여기 이렇게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하늘과 내가 너무 가까이 있다고 느껴진다. 갑자기 하늘에 있는 모든 게 쏟아질 것 같고, 곧 내려앉을 것 같고 짜릿하기도 하다. 낮에는 파랗게 맑은데, 밤에는 어쩐지 별이 안 보인다. 검은 배경에 하얀 점들이 콕콕 박혀서 밝아졌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걸 보는 게 참 재밌는데. 근데 그래도 괜찮다. 구름이 많으면 또 구름이 많은 대로 구름 흘러가는 속도로 레이스를 한다. 가끔은 달빛과 구름이 싸우는 콘텐츠도 구경할 수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달 주변으로 구름이 덮였다가 개었다가를 반복했다. 달무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선명해졌다가 흐려졌다. 달이 선명해지면 할리갈리 종 치듯이 얼른 소원을 빌고, 조금 흐릿해지면 멈추는 스릴 넘치는 게임도 즐겼다. 그렇게 혼자 놀다가 왠지 하늘이 곧 손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운 채로 손을 쭉 뻗어 손가락을 쫙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가 한다. 참 까맣다. 태양 빛은 아무리 피해도 쫓아와서 선명하게 하는데. 달빛은 아무리 밝게 비춰도 내 손이 까맣게 보인다. 문득 왜 그럴까 싶었다.
밤이니까 당연하지. 밤이니까 어둡지.
당연한 얘기였다. 밤인데 어두운 게 당연하지. 낮에는 밝은 게 당연하고 밤에는 어두운 게 당연해.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낮에는 왜 밝지 라고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낮이 기본값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아무렇지 않게 잠에서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게 밝은 시야를 보고 얼굴을 뚜렷하게 보고 그쪽이 조금 더 자연스럽긴 하지. 밤은 춥고 컴컴하고, 그래서 조금 위험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냥 냅다 잠이나 자버리는 거 아닐까.
밤이 더 편할 때가 있긴 하다. 모습이 굳이 드러나고 싶지 않을 때. 일부러 밤에, 새벽에 산책을 한다. 나는 밝혀지면 피곤한 유명인도 아니고, 누구를 암살해야 하는 닌자도 아니지만 가끔은 어둠 속에 숨는 게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 얼굴이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이는 게 좀 불편하고,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게 버거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 속내가 훤히 드러나서 모든 게 밝혀질 것만 같고, 그 호기심 많은 눈동자들이 날 꿰뚫어 볼 것 같다. 그 눈동자들은 당장이라도 나한테 달려와서 이러쿵저러쿵 나에 대해 물어볼 것 같다. 아니 나에 대한 질문을 빙자한,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나한테 늘어놓으며 내 반응을 한껏 기대할 것만 같다. 내 대답을 기대하는 그 선명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가끔은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지금껏 적어둔 나의 사회적 상황 대본을 뒤적거리면서 어울리는 대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그런 부담이 덜하다. 밤은 어두우니까. 밤은 흐릿하니까. 나를 좀 감춰주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밤이 편하다. 그럼 나는 좀 부자연스러운 인간인가. 캄캄한 내 손을 마구 움직여본다.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본다. 역시 흐릿하고 잘 안 보인다. 그럼 밤인데 어둡지. 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밤이니까 춥지. 그럼, 내 속에 있는 어두운 것들도, 컴컴한 마음들도 밤이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그냥 밤이라서 어둡고 추운 걸 수도 있겠다. 그럼 모두 밤의 탓인가. 세상 어둠이란 어둠은 모두 당연한 밤의 소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