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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에게 깜깜한 밤이란

by 믕딤


요즈음 나는 낮이 아닌, 밤이 더 편하다. 모습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일부러 어두운 밤에 산책을 한다. 나는 밝혀지면 피곤한 유명인도 아니고, 누구를 암살해야 하는 닌자도 아니지만 어둠 속에 숨는 게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 얼굴이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이는 게 좀 불편하고,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게 버거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 속내가 훤히 드러나서 모든 게 밝혀질 것만 같고, 그 호기심 많은 눈동자들이 날 꿰뚫어 볼 것 같다. 그 눈동자들은 당장이라도 나한테 달려와서 이러쿵저러쿵 나에 대해 물어볼 것 같다. 아니 나에 대한 질문을 빙자한,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나한테 늘어놓으며 내 반응을 한껏 기대할 것만 같다. 내 대답을 기대하는 그 선명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가끔은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지금껏 적어둔 나의 사회적 상황 대본을 뒤적거리면서 어울리는 대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그런 부담이 덜하다. 밤은 어두우니까. 밤은 흐릿하니까. 나를 좀 감춰주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밤이 편하다. 그럼 나는 좀 부자연스러운 인간인가.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본다. 역시 흐릿하고 잘 안 보인다. 그럼 밤인데 어둡지. 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밤이니까 춥지. 그럼 내 인생도 밤에는 당연히 춥고 힘 거 아까?그냥 단순히 밤이라. 그저 밤이 어두운 탓이다. 어둠이란 어둠은 당연히 밤의 소행다. 나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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