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길었고, 구질구질했고, 개같았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쓴다고 하면 이력서의 경험기술서나 자기소개서였다. 그마저도 30%는 AI에게 맡겼다. 온라인 글쓰기 클럽을 탈퇴하고 매일 글을 쓰는 의무가 사라지니, 거짓말처럼 글에게서 벗어나버렸다. 매일 쓰던 글쓰기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이 되어버렸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글을 써서 뭔가를 이루거나, 글을 써서 뭔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일찍 버려서 다행이다. 나는 그냥 살아가면서 '글도 쓰는' 삶을 원하는 거지.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원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우습게도 나는 그 두 가지를 자주 혼동할 때가 많았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스무 살,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그 혼란에서 벗어나는 걸까?
아니다. 다른 것 같지만 같은 혼란이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따분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얽매여있다. '어떻게 삶을 유지할 만큼 돈을 벌 것인가.' 돈을 벌고 있지만, 안정적이지 않다. 아직은 돈이 없어 벅차거나 우울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면 금세 쫓기듯 살 것이다. 그저 작은 수입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 모자란 이력서를 찔러 넣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도처에 실패가 널려있다. 대차게 넘어지고 구른다. 내 탓만 하기는 버거우니 주변의 누군가를 타겟삼아 미워하다가, 그런 내가 싫어서 다시 자책하다가, 다 포기해 버릴까 하다가, 다 놓아버릴 때쯤 생기는 삶에 대한 애정 때문에 다시. 다시.
죽으면 그만이야. 문제를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곧 죽어야겠다 다짐만 하다가 무려 30년을 살았다. 예전에, 인생이 도통 답이 안 나와서 서른 되면 죽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연락 끊긴 그 친구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서른까지 살아있으면 계속 살라고 운명이 도운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그냥 계속 사는 거야.
30 이라고 쓰인 정거장에 다다르니, 아등바등 가꾸어 온 삶에 대한 이상한 애착을 느낀다. 참 길었고, 구질구질했고, 개같았습니다. 습관처럼 내 인생을 탓하고 미워하다가 가끔은 팔이 안으로 굽어 호통치게 된다. 어쩌라고 그게 내 인생인데. 구질구질이 난데. 그게 내 인생인데. 입 조심하라고 눈을 치켜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