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외적 변화에 기죽지 말자
예전부터 보거나 만나왔던 사람들의 내. 외적 변화를 보면 삶의 허무와 연민이 느껴져 안타까운 심정이 된다.
특히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의 외적인 변화는 '어머'라는 허무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낯설어 마음속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그들의 변화가 곧 내 변화이기도 하기에 느끼는 심적인 감정의 반응이리라.
세월이 흐르면서 연륜의 무게가 쌓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자연현상인데, 현실적 현상을 거부하는 것인지, 젊음이 사그라져 간다는 것의 심리적 거부반응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연히 타인의 일로만 인지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자연적 흐름 현상을 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아예 접고 살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 자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것 같다.
겪는 현실과 바라보는 시선 차이의 간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늙어간다는 것을 생각으로는 인지하지만, 현실로는 외적인 변화가 내 그림에는 그려지지 않는다는 현상 그런 것인 것 같다.
어쩌면 매일같이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의 신비에 빠져들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조금씩의 변화에 익숙해져 전체적인 그림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그림을 보면서 판단하거나 비판은 잘하면서 말이다.
세월의 무게로 견주어 생각하면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제재가 많고 제약이 많은 취약한 상황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반응이었을게다.
청춘의 황금기에는 감정의 변화와 수많은 과제의 무게에 짓눌려 고민하고 방황하며, 독립적 개체로서 권리를 찾고자 새로운 세계로의 꿈을 꾸며 방황을 끝내기를 수도 없이 생각했을게다. 그만큼 지치고 힘겨웠을 터이니.
사회로의 진출과,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는 변화의 시기에는 또 다른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대기도 하고, 책임의 무게에 자신을 희생하며 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에 지쳐 다시금 소년기로의 회귀를 꿈꾸기도 하며,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망각의 반응을 서슴없이 말하며 지친 영혼이 되기도 한다.
늙음은 외적인 변화와 내적으로 미약해지는 마음과 체력이 그 어느 시절보다 청춘을 노래하는 시기가 되며, 서럽기도 하여 허무한 감정을 많이 느껴 타임머신의 기적을 바라며 여러 감정의 복합체로 머물게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푸르러 늙지 않으니 청춘은 청춘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놓기도 한다.
개개인 생각의 비밀 공간은 이렇듯 언제나 자기에게 없는 것을 찾고자 하고, 넘어서기 힘든 순간들에 태클을 걸며 벗어나기를 원하고, 또한 구속력 없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누구의 터치도 간섭도 불허하며 독립적 행동으로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기에 자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위로의 비밀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외면을 중시하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 있으니 이는 늙음이라는 외적인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심적 작업의 힘겨움이다. 그러하기에 외적 연륜의 변회에도 마음은 늘 푸르름을 주장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을 내면의 은밀한 곳에 저장하며 푸른 날들만 들춰내 늘 젊은 날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 시킨다.
마음이 젊으면 청춘이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신체적 변화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비밀 공간에 강제 주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비켜 갈 수 없듯이 늙음이라는 연륜도 인간은 비켜 갈 수가 없다.
위안을 얻고자 해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내. 외적 변화에 저항할 힘이 약해지거나, 사람이 느끼는 한계점에 다다라 지치게 되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변화해 가는 현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태초에 정해져 있는 인간의 숙명이라도 삶의 길이 순탄했거나, 고달팠거나, 그와 관계없이 그저 순리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모습이 변화되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작업은 누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미세한 감정에도 반응하는 존재이기에 우울하기도,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외로움과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며, 찰나처럼 스쳐 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에 삶의 무상과 회의를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륜의 무게를 더해간다 해도 생각의 깊이나 그 폭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늘 나 또한 늙어간다는 현실 앞에 맞서고 보니 참 감회가 새롭고 내게도 순리의 흐름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인지한 오늘이 새삼 허무하고 두렵기도 하다.
스무고개를 넘 듯 살아온 고난의 시간들에 서글픔 때문이기도 하겠거니 하지만. 지금의 그런 지배적인 감정에 제동은 필히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무주의에 빠져드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더 생각의 늪에 서 지난 고난의 시간에 괴로워할 것이고, 저항의 힘도, 의지도 미력하게 느껴져 나 자신을 갉아먹는 생각 속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잊고 지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륜의 무게는 하루하루 쉼 없이 짊어지게 되고, 삶을 등지는 시간과 비례하기에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생각과 체력을 향상해 나가야 하는 것이 늙어가는 삶에 있어 과제가 되며,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에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순환의 과정은 지속해서 행해지고 순환 속에 떠밀리는 개체들은 경험치 못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불확실성 시대에 존재하는 인간의 두려움을 미지의 시간 속으로 다시 안고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 어쩌면 너무 가혹하여 거부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싶어지는 쓸쓸한 오늘이지만,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 그 일이다.
사람의 감정은 백발이 늘어날수록 강하던 열정도, 의지도 함께 사그라진다. 자력의 힘이 약해지니 그에 적응하는 마음가짐도, 그에 발맞추게 되는 것이다.
외적 변화와 내적 변화에 순응하여 저항의 힘보다는 화합의 장을 펼쳐 체력 분배를 이뤄내야 함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상호 협력 관계로 전환하면 긍정이라는 무기가 생겨 무력해지는 힘도, 마음도, 정신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나이가 들지 않으니 언제나 청춘이고, 늙음은 단지 순환의 변화로 인지하여 기죽지 말자는 마음으로 생활하면 된다.
우주는 무한하고 자생하는 인간의 의지도 강하니 스스로 원기회복의 힘에 탄력을 받으면 살만한 가치를 느끼게 되니 연민을 느끼는 대상을 바라보며 서글퍼하거나 허무한 감정을 갖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내, 외적 변화에 견주어서 감정의 지배를 크게 받을 수 있지만 그건 순간일 뿐이다.
젊은 날의 드높은 이상도, 아름다운 추억도, 지금 까지 살아온 생애도, 우리와 함께 마음 안에 존재하며 우리의 의지가 되기도, 위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계절 가을도 이제 낙엽을 홀로 남기고 떠나버리고, 시린 계절 겨울, 침묵의 시간들이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순환은 지루함을 배척하고, 새로움을 주고 희망을 주는 참 아름다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물 같은 계절의 변화가 수려하듯 사람의 변화에도 아름다움을 부여하면 연륜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지며 의미와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됨을 그 누구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 과정은 다 거치며 그렇게 순환의 법칙이 실현되는 것이다.
삶이 한순간이라 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개인 삶의 궤적을 스스로 잘 기록해 가며, 변화에 무력해지는 삶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으로, 마음 푸르름의 싱그런 웃음으로, 오늘도 힘내서 잘 살아보자.
함께하는 즐거움은 배가 되어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지는 것이니 삶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행복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