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만 있을 뿐
우리의 일상은 개개인의 생활 루틴에 따라 다양한 일로 하루가 채워지며 하루의 시작은 비교적 비슷한 패턴의 행동으로 시작된다.
아침 시간은 잠에서 깨어나 정갈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필요한 소량의 칼로리를 섭취하거나, 건너뛰기도 하며, 각자 주어진 역할 수행을 위해 준비하고 행동하는 일로 하루가 시작된다.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각자 자신의 위치와 맡겨진 소임에 따라 작업환경에서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하며 감정적 에너지를 사용하기도, 신체적 칼로리 소모로 바쁜 오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람에게 때를 알리는 배꼽시계는 살고자 하는 의지의 작용인지, 습관으로 인한 배고픔인지, 노동을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에너지 충전을 요구하는 것인지, 다들 그 나름의 적당한 이유를 달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의 먹는 것에 대한 즐거운 욕구는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선택과 집중으로 점심 식사 시간을 영접한다. 그리곤 식 후 기호에 따라 음료나 커피를 마시기도, 다른 주전부리 거리를 찾아 달콤함과 아작아작 씹는 저작 운동으로 오전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풀어내곤 한다.
식사 후 파도처럼 밀려드는 식곤증은 카페인 때문인지,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의 승리인지, 거뜬히 넘어가고 다시 일에 몰두, 위치에서의 역할을 마무리하며, 가정이라는 쉼터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때로는 한잔 술로 피로를 삭히기도 하고, 걸걸한 욕으로 미움울 표출하기도 하며, 타인의 그릇된 점을 자신의 관점에서 지적하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한편 일상의 가사노동은, 찾아서 하고자 하면 끝나지 않는 일이기에, 스스로 일의 경중을 따져 관리를 하는 지혜를 보이며 틈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관리의 시간을 갖는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우리의 안식처이고 쉼터인 우리의 가정은 아늑하고 안온한 최고의 보금자리이다.
아무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마음과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편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유일한 곳으로 사람들은 즐거운 여행을 다녀와서도 집에 들어서면 하는 똑같은 말이 '아무리 좋아도 '내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한다.
누구나 그러한 감정이 공유되는 건, 아무런 터치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과 내 가족의 익숙함, 그리고 집이 주는 안락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시간 후에는, 아침의 일상들이 비숫하게 반복되는 시간으로 가족 간 서로 소통하며 식사를 하거나, TV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는 편안한 시간이 된다.
때로는 가족 간의 불편한 감정으로 질책이나 이견이 생겨 가벼운 언어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얼마간의 여백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치솟았던 감정도 다소곳해지고, 이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분쟁의 해결책을 모색하며 비교적 정리된 하루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모두가 잠든 고요하고 적막한 밤의 시간은 하루의 복잡하고 고단했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 된다. 가족과 함께 잠의 세계로 빠져 들기도 하지만, 홀로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의 시간은 홀로 남겨진 외로움보다는 밤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으로 긴장이 풀리며, 내면의 깊숙한 감성으로 물드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선물 같은 시간이기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나만의 빛나는 세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도 좋고, 즐기는 게임 나라로 진입해도 좋으며, 나만의 왕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는 공상에 빠져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기에 그런 환상의 나라로의 유영도 괜찮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하여 밤을 낮같이 활용해도 나만 좋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 고유의 선물 같은 이 시간은, 영, 육의 휴식시간이 되며, 새로운 활력의 충전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성칠의 시간을 가짐으로 좀 더 내실 있는 내일을 계획하기도 하는 시간이 된다.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이렇듯 다양한 일과 변화로 시작되고, 소소한 일상이 또 다른 변화무쌍한 하루가 되기도 하며, 이러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하루하루의 삶이 연결되어 우리의 전 생애가 된다.
이따금씩 일상의 삶에 깊이를 더하다 보면,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소한 일 하나라도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이나, 언론매체를 통해서 보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접하게 되면 더욱이 그러하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독자적 행동이나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정말 선물 같은 감사함이란 걸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 껏 행하는 자유로운 행동이나, 누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나, 당연한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아주 기본적인 일들도 불편해하며 누구의 도움 없이는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작은 것 하나라도 누리지 못하고 슬퍼하는 사람도 많이 있으며, 척박한 곳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필요한 끼니조차도 이어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 삶에 기본적인 것만 갖추어져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여러 상황들을 접하다 보면 가슴으로 깊게 스며들어 채움의 부족에서 오는 허기의 감정은 다소 줄어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본능에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심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부분 물욕으로 한계를 정하기가 쉽지 않은 욕심이다.
필요한 만큼 소유하고 있으나 상대적 빈곤으로 인하여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욕심에 몰두하여 그 채움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 소소한 것에 감사함보다는 채우는 욕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과정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우리 욕구에 비례해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다 내어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취하도록 종용하고, 스스로 깨달아 행하기를 기대하며, 소유한 만큼의 공유를 지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시선이 머무는 곳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폭넓게 취하려 한다.
세상에 완벽하게 다 갖추고 사는 사람은 존재치 않는다. 다 가진 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빈틈도, 고통도, 허점도 있다.
타인의 삶을 관망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며, 타인의 일상이 좋게만 보이는 건 그 안의 사정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겪는 일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 사는 일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과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행복의 크기와 그 폭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평범하고 순탄에게 사는 삶의 소중함은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행복해지는 것에 무수한 조건을 달면 그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얼마나 불편한 마음을 감수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에 당연함은 절대 존재치 않는다. 소소한 일 하나에도 감사함만 가득하게 있을 뿐이란 걸 인지하면 행복은 우리 곁에서 무수히 즐거움을 창출해 줄 것이다.
오늘 하루가 고단하고 힘겨운 고뇌는 있었으나 오늘 하루도 무사히 생활할 수 있었음에 무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