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글 번역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코딩 관련된 영어 페이지만 열면 어설픈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뜬다.
최근에 코딩 부트캠프에 참가했을 떄 다른 수강생이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내 계정 설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번역 좀 켜도 되냐고 나한테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켜버렸다. 내 손에서 마우스를 빼앗아서 본인 점수를 조작하려 드는 사람도 봤고 내가 못 할 말이라도 뱉은 것처럼 말을 끊어먹는 사람도 있었다. 후자는 뭐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어렵지만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세게 남았다. 학교폭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내가 잘난 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려서 빠져나갈 길도 없이 수없이 당했던 학교폭력이 떠올랐다. 내가 당한 폭력의 핵심은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는 이유로 잘난 척 하는 아이으로 몰리는 일이었다.
상대가 헛소리하는 걸 알아도 맞춰주고, 알아도 모른 척 하지 않으면 바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곧 죽어도 헛소리하는 인간 비위는 못 맞추겠더라 (특히 멍청한 쪽이 부모, 선생, 학교 관계자 등이면 더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찐따'로 살았다. 그때 머리를 뽑는 버릇이 들어서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8살부터 12살까지는 기억이 없다.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10대 내내 차라리 나를 고통 없이 죽여달라는 말을 머릿속에 품고 살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육은 나에게 지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기는커녕 스스로 성장하려고 했을 때조차 나를 짓밟기 바빴다.
10대가 되면서 어찌어찌 '적응'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폭력적인 요구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알아도 모르는 척 스스로의 가치를 후려치고, 할 수 있는 것도 못 한다고 믿어버리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해가고 싶었는데 결국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결론으로 끌려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완전히 무너졌다. 학원에 다녀도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공부할 수도 없었다. 새벽 3시까지 웹툰만 보다시피 했다. 차라리 판타지 세계관 만드는 작업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친모가 질색팔색하면서 못 하게 만들어서 결국 웹툰이라는 탎출구밖에 남지 않았다. 친모는 그것마저 못 견뎌서 본인 화가 풀릴 때까지 나를 매질하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너진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었던 폭력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전교생에게 합창대회 참가를 강요했다. 반 전체가 음정이 틀린 상태로 노래를 연습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이 음정을 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음악 선생까지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였다. 내 친구는 다른 학생들이 개판을 쳐도 뒤에서 대충 따라부르면서 시간을 때운다고 했지만 나는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질 못하는 성격이어서 사사건건 다른 학생들과 부딪혔다. 나중에는 나를 아니꼽게 보던 학생 1명이 주도해서 트집을 잡아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고 애쓰던 게 지금은 보이지만 그떄는 지금보다 더 가스라아팅에 취약했다. 다행히 이때는 담임과 음악 선생이 편을 들어주어서 크게 괴롭힘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육 안에서 내 편을 만들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이미 공교육에 순응해서 충분히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을 수도 있었다. 내가 이미 망가져있지 않았다면 아마 망가질 때까지 괴롭힘당해서 강제로 망가져야 했을 것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릴 여력이 없어서,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지쳐있어서 누가 앞에서 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소름끼친다. 나는 이런 상황을 원한 적 없다. 학대에 길들여졌구나. 강제로 적응당했구나. 어떻게 보면 난 이미 죽었구나. 앞으로 물리적으로 죽을 때까지 죽은 상태로 살아야 해?
지금 나에게는 개발자가 되어 경험을 쌓으면서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런데 개발자로 일하는 경험도 결국 공교육 2.0이 되어버릴까봐 두렵다. 그렇게 되면 난 뭐 하고 살지?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브래지어도 마찬가지다. 20살 때는 브라 없이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갔다. 그때는 왜 브라 없이 밖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는지 몰랐다. 그냥 병적으로 불안이 심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4살 때 브라 없이 밖에 나가보니까 내 몸을 고깃덩어리처럼 훑어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나를 훑어보는 눈을 찔러버리고 싶다 솔직히.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 불안한 게 아니었다. 브래지어를 차라는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폭력을 당하기 때문에 불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다시 유두가 드러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 나는 성폭력이 묻어나는 시선을 감당할 여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두를 가려주는 옷을 찾아서 입고 다닌다. 사회적인 요구를 거스르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와 타협해야 했다. 이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더 소름끼치는 부분은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졌어도 가슴을 가리라는 요구가 폭력적인 요구라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많다. 여자들도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불만을 이야기해도 노브라 티셔츠를 입으면 된다, 스포츠브라는 편하다 이런 식으로 대체품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체품이 문제가 아닌데. 나는 가슴을 가리라는 요구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폭력을 피해가기 위한 자기검열이 내 입을 막기 시작했다. 사실 번역 기능을 함부로 켠 사람에게도 '마음대로 설정을 건드렸으니 원상 복구해놓고 가라'는 식으로 항의할 수 있었으면 타격이 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 잘한다고 재수없게 군다'는 식으로 공격당할까봐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검머외 소리 들을까봐 많이 걱정했다. 내가 사는 곳에는 그런 분위기가 많이 없는데, 부트캠프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열려서 더 배척당한 것 같다. 지하철 같은 데서도 나를 대놓고 노려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건 뭐 미국에서 백인들이 인종차별적인 이유로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 제일 걱정했던 건 성차별이고 확실히 남자 수강생들이 나를 무시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성별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폭력을 피해가려고 나름 조심했는데 결국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폭력과 학대가 증오스럽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공교육이 짓밟은 학습권. 장애혐오. 퀴어혐오.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한 다른 폭력들. 가해자들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이 지경으로 사람을 짓밟아놓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나를 망가뜨려서 뭐가 나온다고 이런 짓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