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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t Nov 04. 2024

벽(1)


1.

전화벨이 울린다.

‘김주환'이라는 이름이 뜬다.

‘선생께서 이 밤에 전화를?’

의아하다. 선생은 절대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일이 없다. 이런 떄 전화를 한다는 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네 선생님, 강시영입니다. 어쩌신 일로 밤늦게...”

"아, 안녕하세요? 저는 김주환씨 아내 됩니다만, 밤늦게 죄송한 데 혹 우리 바깥 양반과 함께 계신가요?”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와 함께 계시지는 않습니다. 지난 주 한번 뵙고는 이번 주는 못 뵈었습니다만..”

"그렇군요. 전화기도 챙겨가질 않아 연락도 안되고. 그래서 뒤졌더니 등록된 이름이 있어서....”

"그러시군요!”

"이 양반이 어딜 갔는 지, 혹 아실 만한 데가 없을까요?”

"글쎄요? 혹 협회 같은 델 가시지는 않았나요?”

“지금은 문을 닫아 사무실엔 아무도 없긴 하겠지만....”

"그러면 부탁인 데, 아는 분 계시면 좀 알아 봐 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러죠..”

무슨 일일까? 선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철저하신 데, 이 시간까지 누구를 붙들고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여지껏 아내만 고생시키면서 그 잘난 글 쪼가리나 끄적거리는 것을 눈치보고 사는 데, 아무 말없이 귀가하지 않을 리 없다. 경제 상황이 변변찮으니 그의 아내는 옷가게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무기력하고 돈 안되는 짓거리에 죄책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요즘은 코로나가 터져 자영업이 한층 어렵다. 그나마 소상공인 지원금으로 어렵게 버티는 마당에...

암튼 선생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것인가?

협회 사람도 오늘은 만난 적이 없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별 없을 텐데...

하지만 내일이면 그는 아내에게 심하게 잔소릴 듣고는, 저 밤에 소란을 끼쳐 미안했다는 연락을 해 올 것이다. 별 것 없는 소동일테니 잠을 청해야 하겠다. 그렇잖아도 내일은 계곡 풍경을 좀 관찰해 와야 하겠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려니 감성이 따라와 주질 않는다. 어쨌거나 선생의 무사 귀가를 바라며 머리를 눕힌다.

"별 일이야 없겠지....”

"김주환씨(남49세)를 찾습니다. 키165cm, 몸무게 53kg, 검은색 반팔 티에 아이보리색 반바지, 하얀 슬리퍼 차림....”

아침 일찍 실종자를 찾는다는 문자 메시지가 수신된다.

“응, 어쩌다가 늦게 귀가할 수도 있는 노릇인 데, 실종 메시지 식이나?...”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 그냥 밖에서 시간을 보내시다가 아직 연락을 못하고 계신 것 아닐까요? 실종 메시지가....”

“아녜요. 어젯밤 통화후에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책상 위를 보니, 이런 글이 있잖겠어요.”

‘벽면을 훑고 내려와 내게 안기는 것은 수평의 세계이다. 이제 드디어 나는 그들에게 흘러 들어간다. 안팎은 하나가 된다. 세계는 고요해진다. 여지껏 나의 수호자,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엔 우리를 막아 서 있던 벽면을 뚫고 다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흘러 내릴 것은 구획하는 벽면이다. 나는 명태를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리고는 아득한 바다를 넘어 다시 동해로 돌아올 것이다. 나의 아내여. 희생어린 보호자여! 그저 감사함을...’

“아무래도 이 글이 그냥 낙서처럼 끄적거린 건 아닌 듯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어요. 그래서 아니다 싶어 경찰서에 신고한 거예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았을까?

그런 꺼림직한 글을 남기고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다니 의아한 일이다. 그가 최근 나를 만났을 때만 해도 특이한 행동이나 이상한 말을 한 게 있던가?

기껏해야, 어린시절 바닷가에서 놀던 일을 더러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개구리 이빨이 자기를 무는 꿈을 많이 꾼다고도 했다.

"아니! 개구리에게 무슨 이빨이 있다고 그래요?

요즘 이상해! 나이도 이제 겨우 50꼴깍 앞에 두고서 벌써 노망났나 원! 이제 벽에 똥칠할 것 같으면 그냥 내다 버리든지 할 테니까....”

아내는 아직 멀쩡한 나이의 남편이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것에 역정을 내는 것이다.

"가뜩이나 손님도 줄어 겨우 버티고 있는 데.."

그래도 집 나간 남편이 갑자기 사라지자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혹 가실 만한 곳을 저도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사모님. 오랜만에 친구분이랑 거하게 한잔 하시고 어디 주무시고 계실 거예요..”

"그럼 다행인 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걱정스러워 죽겠어요....”

아침 뉴스를 보다가 메시지를 받으니 정말 일이 터진 것 같다. 알만한 곳이 없으니 어딜 뒤지겠느냐마는, 선생께서 가끔씩 이야기하던 바닷가가 생각난다. 혹시나 그 곳에 가지 않았을까? 최근엔 자꾸 정신이 깜박거린다면서, 이러다가는 마누라한테 쫒겨 나기도 전에 자신이 제 발로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농담을 하곤 하던 터이다. 혹 정말 치매 초기 같은 게 그를 덮쳐 그곳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아직 그럴만한 나이는 아닌 데...

은근히 불안한 마음에 그를 찾아봐야 하겠다 싶다. 본격적인 징맛철이 된 탓인지 바깥은 흐리지만 끈적거리는 습기가 사방에서 올라온다. 아열대 기후도 지나서 열대로 바뀐 기분이다. 마룻바닥도 습기를 머금어, 걸을 때마다 찌걱거린다. 옷을 갈아 입고는 서둘러 집을 나선다.

2.

"시나 철학은 두 줄로, 소설은 그것을 잡아 당겨 10줄, 100줄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될려나?”

김주환 선생은 이렇게 장르별 차이를 이야기하곤 했다.

"시적 언어는 닳고 닳아 조탁한다고 해도 더 이상 실재에 접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을 더 이상 쪼아대지 않고 차라리 뭉툭한 채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 새삼 덜 손질한 것이 보인다. 더욱이 사물은, 그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속을 들어가 본다. 물고기는 잃어버린 동해를 꿈꾸지만, 어디에도 그의 근원은 없는 것 같다. 늘 수식어로만 존재하던 이 생명은 그 자신의 회복을 꿈꾸나 그렇지 못하다. 존재는 절멸할 때는 절대적 절멸이다. 옆에 누운 재료가 함께 사라져도, 자신에게서만은 절대적이다. 동료들이 더불어 사라지는 것은 어떤 위안도 아니다. 우리 존재도 그렇다.”

그는 지난 봄, 수 차례 도전 끝에 마침내 신춘 문예에 당선되었다. 그간 머리를 뜯어가면서 되지도 않는 짓거리를 한다는 푸념을 듣고 살았다. 매번 기각되는 원고 뭉치를 볼 때마다 삶도 그러한 것처럼 한숨 짓곤 하던 것이다. 그렇게 글을 놓지 않던 그는, 이제 가슴속 말을 당선 소감에 풀어 놓았던 것이다.

"쉽게 쓰면 내용이나 구성이 엉성해! 그런데 좀 어려운 생각을 쓰면 현학적이라거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니....”

오랜동안 그는 지쳤을 법하다.

"현실과 타협하는 자본주의 글쓰기를 해야 하는 데 그게 안되네!”

그는 시대가 만들어 놓은 틈을 좀처럼 비집고 들어가질 못했던 것이다.

"요즘같이 SF나, 추리 소설 같은 걸 써보시지 그래요?”

"감성도, 경험한 것도 없으니 그게 되질 않아.”

"소설이란 게 본래 그렇잖아요? 다큐도 아니고, 서사를 각색한다는 게 한계가 있으니...”

나는 테이블에 포개 놓은 그의 두 팔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맞긴 한데 아니기도 하네”

나는 그에게 위로 차원의 말을 건넨다.

"사실 이름있는 작품도 참 너절하잖아요! 뭔 대단한 사유도 아니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껏해야 철학 나부랭이 몇 조각을 쥐고 그걸 잡아 당긴 꼴이던데. 그래서 고전과 비교해 보면 노출도 심하고. 복선이기보다는 그냥 솟아 오르는 분수같은 표출이던데...”

그는 괴고 있던 팔을 풀고는 뒷머리가 가려운 듯 긁적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어 좋다는 듯 얼굴이 조금 펴졌다.

"어디 요즘 사람들은 두 세번 생각해야 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글을 좋아하나? 자신의 삶도 어수선한 데, 그냥 술술 생각없이 눈이 흘러 가는 걸 바라지.”

그러긴 하다. 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게 대서사를 죽여 놓은 게 아닌가. 이순신 같은 영웅담은 이제 침몰했다. 물론 그 영웅주의가 전쟁, 인종학살 따위를 저지른 것은 인류범죄이다. 인간의 그 잘난 이성이 오히려 비이성, 반이성의 추악함을 저질렀으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삶이 쪼그라 들어‘나만 아니면’이라든지,‘그저 소소한 일상에 만족한다’면서 소아 중심으로 돌아간다니...

그는 어쨌거나 없는 서사를 상상하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닿은 것이 당선 소감에 표현되었든 것처럼,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주환은 어린 시절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 여름이면 동네 애들과 뜨거운 햇볕을 지나 바닷가로 갔다. 작은 걸음이니 가까운 곳도 꽤나 걸렸다. 그곳은 정규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애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들은 모래 위에 옷을 벗어놓고는 한 명씩 교대로 옷가지를 지켰다. 그것도 바다라고, 마을 주민 몇은 폐그물을 이용해 가두리를 만들어 놓았다. 썰물 때가 되면 거기엔 작은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어른 팔뚝만한 고기도 걸려 들었다.

"와 고기 크다!”

바닷물이 빠져 나가고 그물망이 드러나자 그 속엔 고기들이 이리저리 퍼득거리며 탈출구를 찾고 있다.

"이 고기들은 어디서 와서 붙잡혔을까?”

주환은 한편으로는 가엾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몇 사람들은 양동이에 잡힌 고기를 옮겨 담는다. 저녁 쯤이면 그 고기는 구이로든 찌개든 밥상에 오를 것이다. 별게 없다는 듯 마을 사람들은 몫을 담아 각자의 집을 향한다. 이런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놀던 주환의 무리는 갯바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바닷가에는 참 신기한 생물들이 많다. 말 거시기를 닮은 말미잘은 찰랑거리는 물결에 촉수를 펼치고는 플랑크톤을 집어 먹는 듯하다. 바위틈으로는 조그만 게도 옆걸음질 치다가는 흠칫 돌 틈으로 몸을 숨긴다. 그들을 붙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저기 뒹구는 낚싯줄을 주워 그 끝에 홍합살을 매달고는 바위틈에 내리면 집게로 물고 끌려오는 것이다. 둘러보면 온갖 것들이 놀이 투성이다.

"애들아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오랜 놀이에 지친 애들이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좀 더 놀았으면 좋겠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괜히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잠자리에 누운 소년에게는 감은 눈 속에서도 파도가 찰싹거린다. 지금의 주환은 지은 지 수십년도 넘은 집들이 다닥한, 여전히 바다가 내다 보이는 동네에 살고 있다. 그의 집은 밀려 밀려 올라간 한계지에 자리 잡고 있다. 6-70년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마구 몰려든 사람들은, 고인을 여기에 매장했다. 자연히 일대는 집단 묘지가 되었다. 가난하든 어쨌든, 그나마 아랫 마을은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80년대초 거기에 빈곤 2계층이 몰려 들었다. 주환도 그속에 묻혀 들어왔다. 합법적으로 땅을 구입할 처지도, 당장 거주할 곳도 없던 그들은 이 무덤터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세월이 제법 지났으니, 돌보지 않는 무덤도 많이 생기고 겨우 흔적만 남은 것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깎여서 평지처럼 된 곳은 그냥 집터가 되었다. 심지어는 무덤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당 한가운데 무덤을 두고 지은 집도 있다. 아랫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경악했다.

"서로 처지를 이해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덤가에 집을 지어?”

"조상도 모르는 이런 호로 자식들이...!”

"왜? 어차피 무덤도 불법인 데, 여기에 집을 짓는 건 어때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아랫 동네 주민들이 당국에 민원을 제기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객지에 사는 사람들은 성묘를 와서야 이 사태에 경악했다. 그러나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고 덤벼 드는 이들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그렇게 수없이 짓고 뜯어내는 일을 반복한 끝에, 80년대말에는 시 당국도 포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무덤 연고자가 많은 아랫 동네는, 그렇다면 이장이라도 할 수 있게 지원을 요구했으나 이 마저도 도시계획에 의한 정비가아닌 한, 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다같이 없이 살지만, 정말 지독한 놈들이다. 밤에 무서워서 어떻게 사냔 말이야?”

그것도 혼자 살 때나 그런 것 같다. 수 백 가구가 몰려 사니 죽은 혼백도 대응이 안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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