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나는야 민달팽이

by 민달팽이

이 글을 쓰기 전, 제목은 꼭 ‘민달팽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스무 해의 삶 중 8년을 여러 나라에서 떠돌며 지냈다.

나의 마음속에 "집"은 늘 신기루 같은 존재이다.

편안하고, 삶에 치이지 않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있는 따뜻한 곳.

그리고 내가 아직 찾지 못한 곳.

그런 나의 모습이 꼭 집 없는 민달팽이를 닮아 보였다.

그렇게 이 이야기의 이름이 붙여졌다.


나는 어떤 단어에 의미를 부여할 때면 사전적 의미를 꼭 찾아보는 경향이 있다.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민달팽이는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민달팽이는 껍질이 없지만 그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껍질이 없는 대신 몸이 유연해 좁은 공간에서도 잘 살아남고,

위험할 땐 점액을 분비해 빠져나오기도 한다.

처음엔 집이 없어 안쓰러워 보였던 달팽이였는데,

알고 보니 민달팽이,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다.

괜히 나도 덩달아 덜 초라해진 기분이 들었다.


민달팽이처럼 마음의 거처 없이 떠돌던 나에게는

언어가 늘 나보다 먼저 도착했고,

사랑은 늘 내가 떠나야 할 때 찾아왔으며,

가족은 늘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방황 덕에 나는

어디에서든 잘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할 수 있는 사람이며,

넘어지더라도, 금방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껍질 없이 떠도는 민달팽이이다.

하지만 그 떠돎 끝에서, 나는 언어를 만났고,

사랑을 배웠으며,

가족을…

그리움이라는 방식으로 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런 나를 만든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아직 이 모든 걸 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이 길 위에서, 나만의 집을 지을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을까.

그 기대를 담아, 나는 이 기록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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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