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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이음 Sep 08. 2024

태어난 김에 인도살이 (6)

(인도살이 준비기 6 - 해외 이사)

인도행이 결정되고 벌써 1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남편은 먼저 인도로 출국했고,

나와 딸은 한국에 남아 인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딸은 그 시간들을 영어와 학업으로 채웠고

난 인도살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특히 주방 가전들을 많이도 샀다.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두유제조기, 진공포장기 등

한국에서 사용하지 않던 것들도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구매했다.


여기에 쌀, 화장지, 화장품,

온갖 양념과 식재료는 물론이고

인도에서 사용할 청소기, 공기청정기, 필터 등으로

우리 현관 앞은 늘 택배가 가득했다.

10년 넘게 우리 동네 택배 일을 하시는 기사님이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매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체크하고,

뭘 더 챙겨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고,  

한국을 떠나는 것에 대한 감성에 젖을 틈이 없었다.



이사 막바지에는 이삿짐 속에 얹혀사는 기분이었다.

집안 곳곳이 짐들로 가득 차서,

빨리 이사를 끝내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이삿날, 천장까지 쌓였던 짐들이

하나씩 사다리차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차곡차곡 컨테이너에 실렸다.


너무 지쳐서 빨리 이사를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래도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갑자기 확 쏟아지는 눈물에 내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남편은 이미 출국해서 인도에 있었고,

아이는 친구 집에 보내놔서 혼자였으니 다행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위로를 했다면,

오히려 멈추지 않았을 눈물이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이사 뒷정리를 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키를 기록했던 흔적과

텅 빈 집이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다.  

주차하기 힘들다고 불평했던 차를 보낼 때도

마음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평소 무던하기만 하던 내 감정들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타고 있었다.


이때부터 출국 전까지 내 목표는 울지 않기가 됐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계속 다잡았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인사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늦게 고향에 갔고,  

2박 3일을 양가 부모님들과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서로 표현하지 못하는 서운함이 묻어 있는 공기였고,

작별의 말을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간에도 난 걱정하지 말라고,

겨울방학까지 4개월만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빠르게 고향을 벗어났다.

엉엉 울지 않고, 마지막 인사를 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친구 집에 맡겨뒀던 짐을 찾으러 갔는데,  

친구는 마지막 인사가 힘들다며 잠시 여행을 갔다.

맡겨둔 이민가방 옆에는 편지가 있었지만,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임박해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가방에 넣어뒀다.


이때까지 씩씩하게 잘 참았는데,

마지막까지 배웅하던 동생의 한 번 안아보자는 말에,

등을 토닥이는 그 손짓 하나에

주책없이 눈물이 터졌다.

그래서 후다닥 동생을 보내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인사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톡을 남기니까

어느새 인천공항 도착.

드디어 인도에 가는구나.


자꾸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조금 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살아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읽은 친구의 편지가 또 눈물 버튼이 됐지만,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

든든한 여행이 될 거라고 믿고,

난 인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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