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이음 Sep 16. 2024

태어난 김에 인도살이 (9)

(인도살이 3 -  오늘은 술을 못 마셔요)

인도 푸네에 새 쇼핑몰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주말에 남편과 나선 길이다.


"여기에 맛있는 햄버거집이 있대.

회사 사람들이 맛있다고 추천하던데,

우리도 햄버거 포장해서 저녁으로 먹을까?"


아직은 주변 맛집도 모르고, 외식쉽지 않아서

우리는 저녁 메뉴를 햄버거로 결정하고,

아마노라몰에 있는 하드락 카페로 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메뉴를 살펴보는데,

너무 먹음직스러운 햄버거 메뉴와

맥주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햄버거는 포장하고,

여기에서 커피 대신 맥주나 마시고 갈까?"


남편의 제안에

기분 좋게 햄버거와 맥주를 주문하는데,

직원이 오늘(9월 7일)드라이 데이라고 했다.


"드라이 데이???"


나보다 6개월 먼저 인도에 온 남편이

드라이 데이라는 말을 알아듣고 설명을 해주는데,

술을 팔거나 마시면 안 되는 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예를 든다면,

명절이나 삼일절, 독립기념일

술을 마시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라는 의미로

술의 판매나 소비를 금지하는 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려고 했던 그날이

하필이면 내가 살고 있는 인도 푸네

마하라슈트라주의 가네쉬 축제

(가네쉬 신의 탄신일을 기념한 축제)

드라이 데이였던 것이다.


궁금한 마음에 주문한 햄버거 포장을 기다리며

드라이 데이를 찾아봤더니,

인도에서는 공화국의 날, 독립기념일,

간디 자얀티와 같은 중요 국경일,

투표 과정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투표일에도 드라이 데이가 적용된다고 한다.


인도에 드라이 데이가 있는 건

음주를 질병으로 여겼던 간디 사상의 영향이고,   

인도 헌법에 중독성 물질(알코올)에 대한 규제 지침까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코올에 대한 법률은

주 의회에서 만들기 때문에  

각 주마다 드라이 데이 적용일이 조금씩 다르고,

술을 구매할 수 있는 연령도 달랐다.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인도의 술 문화는 엄격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인도에서는 술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마트에는 논알코올 맥주 정도만 판매하고,

술을 사려면 지정된 주류 판매점에 가야 한다.



지역마다 주류 판매점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있는 푸네에는 tonique에서 술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세계 맥주부터

인도 자체 브랜드 비라 맥주도 있고,

양주, 와인도 다양하고,

초록색의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우리 술인 소주도 여기에서만 살 수 있다.


참고로 소주 한 병 가격은 16000원,

한국과 비교하면 놀라운 가격 수준이다.


술은 지정된 곳에서만 살 수 있고,

법으로 술의 판매나 소비를 금지하는

드라이 데이까지 있는 인도,

술에 있어서는 진짜 엄격하다.


그게 신기하면서도 좀 불편하다.

주량이 맥주 한 잔이 고작이지만,  

더운 여름밤에 시원하게 넘어가는 맥주 한 모금은

가끔 생각난다.


이렇게 갑자기 맥주가 한 잔 마시고 싶은 날에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어떤 맥주를 마실까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편의점에 다양하게 진열된 맥주와 안주들,

무엇이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한국 편의점 문화가 그립다.


하지만, 내 현실은 인도 푸네.

인도에는 드라이 데이도 있고,

술 판매점까지 차로 이동해야 하니까

갑자기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면 그냥 참는다.


인도는 술 사는 게 불편하다는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은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술 문화가 불편한데...'


한국에서 음주와 관련된 사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술에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피해자에게는 지울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

가해자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조금은 이해받고,  

죄가 완화되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불편했다.


그래서 중요 국경일에 술 판매나 소비를 금지하는

인도의 드라이 데이가 나는 참 신선했다.


술을 사고 마시는 자체 불편한 인도,

술에 지나치게 관대한 문화가 불편한 한국, 

두 문화가 조금씩 섞이면 어떨까? 어려운 일인가?


인도 드라이 데이에

나에게 당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전 08화 태어난 김에 인도살이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