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수능을 잘 치려면 1
수능 시험장 업무 이야기 1
이 글은 생명과학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수능을 잘 치기 위한 어떤 비법을 알려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제목에 낚여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은 학생들이 아무 문제 없이 수능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수능 시험장 학교에서 그 업무를 2년이나 담당했던 정생물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로 근무한 학교는 수능 시험장 학교로 수능 시험장과 관련된 업무는 교무기획 1을 맡은 사람이 하게 된다. 나는 6년 차 때 2학년 기획을 했는데 그 당시 2학년 부장님이 그다음 해 교무부장을 하게 되면서 나에게 교무기획을 하자고 하셨고, 나는 그 일의 업무가 많은 건 알았지만 전임자가 너무 생색내면서 일하는 꼴이 보기 싫기도 했기 때문에 얼마나 일이 많길래 저러나 한 번 해보지 하는 마음에 교무기획 1 업무를 받아들였다.
교무기획 1은 학교에서 업무가 가장 많은데 학교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교육계획서부터 수능까지 너무도 많은 커다란 일들이 있고, 성과급이나 교원 표창, 계약제 교원 업무까지 있다면 1년 내내 수많은 공문 처리와 행정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무기획 1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승진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이 교무부장 하기 전에 해보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에는 승진하려고 하는 선생님도 많이 줄어들었고, 워라밸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 아무도 교무기획 1을 하려고 하지 않아 마지막에 채용되는 기간제 선생님들이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ㅠㅠ
뭣도 모르고 교무기획 1 업무에 나는 7년 차에 발을 넣게 되었고, 2년 연달아 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 학교로 이동했을 때도 내가 교무기획 2년 하고 온다는 소문이 퍼져서 그럼 아무 업무나 줘도 잘하겠네 이런 느낌으로 2학년 담임에 연구 기획 업무를 받게 된다. 교무기획 경험자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결국 세 번째 학교에서도 교무기획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학교는 바로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서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바람에 위치는 좋지만 수능 시험장에서 제외된 학교라는 장점은 있었다.
수능 시험장 업무는 잘하면 본전이고, 예민한 수험생들과 타 학교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이 감독관으로 오는 정말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수능 전부터 수능 당일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내가 맡은 업무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본다.
< 수능 시험 전 >
1. 학교 대청소
- 보통 2회 정도에 걸쳐서 대청소를 한다. 아이들은 책상 서랍과 사물함에 있는 자신의 모든 물건을 집에 가지고 가야 하고, 교실 바닥도 깨끗하게 해야 하며 벽에 있는 낙서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청소 날짜를 잡는 것도 쉽지 않지만 부장 회의를 통해서 괜찮은 날로 잡게 되는데 또 그러면 그 날짜 말고 미리 하고 싶은 담임들이 내려와 매직 블록이나 물파스 등을 먼저 주면 안 되냐 난리. 그냥 제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협조 부탁드려요. 할 일이 너무 많다고요. ㅠㅠ
2. 각종 서식 만들기
- 우리 학교 시험장 번호 등을 넣어서 각종 서식을 만든 다음 출력해서 정리해야 한다. 각종 서식은 한 두 개가 아닌데 내 기억에 서식 번호가 20번 정도까지 있었던 것 같다. 수능 시험장 아침에 우리 학교로 가지고 올 문제지 상자에 부착할 라벨 스티커도 우리가 만들어서 가져가야 하고, 학생들 응시원서와 응시자 현황표 그리고 책상 위에 부착할 스티커 빼고는 다 내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각 교실에 부착할 시험실 번호부터 복도에 화장실 안내 화살표, 감독관 차량 종이 등등 다 만들어야 한다.
3. 학교 방송 시설 점검하기
- 학교 방송 담당 선생님과 수능 날 학교에 등교하여 방송을 도와줄 방송반 아이들 몇 명과 함께 방송 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종이 잘못 쳐도 난리가 나고, 영어 듣기 방송에 문제가 생겨도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점검 현황을 교육청에 보고 해야 한다.
4. 수능 물품 받아와서 세팅하기
- 지역교육청에 가서 수능 물품을 받아 온다. 응시원서, 샤프, 컴퓨터용 사인펜뿐만 아니라 금속 탐지기, 교실 칠판에 부착할 유의사항 등의 종이 전지 3종 세트 등등 수능 시험장을 준비하기 위한 물품을 받아와야 한다. 학교마다 이 물품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교무부장과 교무기획이 같이 받으러 가게 된다.
5.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 및 감독관 간식 구입하기
- 4번에서 받아온 물품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필요한 전지, 청테이프, 청소에 필요한 물품, 감독관 간식 등등 학교로 내려온 예산 안에서 우리 학교 행정실에 협조를 구해 물품 구입을 또 시작한다. 에듀파인 시스템이 언제 들어왔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요즘에는 감독관 간식 하나하나 우리가 쿠팡 등의 사이트 장바구니에 담으면 행정실에서는 결제 밖에 안 해준다. 내가 교무기획을 했던 2012, 2013년만 해도 행정실에서 많은 협조를 해줬던 것 같은데 그때는 에듀파인 시스템을 쓰지 않을 때였나? 암튼 수능 시험장 업무는 행정실에서 협조를 잘해주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
6. 여러 학교에 협조 공문 보내기
-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거나 하면 수능 당일에 소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부탁하는 공문을 보내고, 우리 학교에 수능을 보러 오는 학생들이 재학한 학교 등에는 협조 공문을 보내서 우리 학교에서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서 필요한 우리 학교의 상황을 알려준다. 슬리퍼를 가지고 오라거나 정수기를 쓸 수 없다거나 이런 것들 말이다.
7. 청소 상태 및 책걸상 상태 확인하고, 시험 대형으로 세팅하고 책상에 스티커 부착하기
- 약 2번의 대청소를 하면서 각 반의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책상과 의자가 삐그덕 거리면서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4열로 시험 대형으로 세팅을 한다. 소리나는 불량 책걸상은 청 테이프로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거나 행정실 주사님들이 다니면서 고쳐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상 오른쪽 위에 스티커를 부착하고, 칠판 중앙에 전지 3종 세트를 부착한다. 뒷문은 열고 다닐 수 없도록 잠그고, 폐문 종이를 부착한다.
8. 수능 시험 감독표 작성하기
- 일과 선생님께 부탁하여 시험 감독표를 작성한다. 같은 성별이 들어가지 않게, 같은 학교 선생님이 들어가지 않게, 총 4번의 시험 시간 중에 한 번은 쉴 수 있게, 기간제 교사들만 들어가지 않게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고려하여 감독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고, 초안이 나오면 내가 다시 검토를 한다. 다른 학교에서 오는 동명이인이 있을 때 좀 짜증이 나고, 갑자기 감독 명단 수정 상황이 발생해도 그렇다. ㅋㅋㅋ
9. 감독관 대기 장소 세팅하기, 간식 세팅하기, 수능 당일 감독관 점심 준비하기
- 보통 교무실이나 세미나실 등등 커다란 장소에서 수능 본부가 차려지기 때문에 그 공간과 그 옆 장소가 감독관 대기 장소가 된다. 그리고 수능 당일에는 급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교 급식실에 부탁해서 수능 감독관을 위한 급식을 예전에는 해주셨지만 요즘에 노조가 활성화되고 나서 급식이라는 건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맛없고 식어 있는 도시락을 수능 날 점심으로 먹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능 전 날에도 아이들이 집에 빨리 가서 급식이 없으므로 감독관 회의를 위해 오후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우리는 알아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ㅠㅠ
10. 수능 시험 전 날 감독관 회의 준비하기
- 수능 시험 전 날에는 타 학교에서 수능 당일 우리 학교로 감독을 하러 오는 선생님들을 모셔서 전체 감독관 회의가 진행된다. 교육청에서 온 파견관도 참석하고, 모든 감독 선생님들께 받아야 하는 서류에 서명을 받고, 인장 등록도 하며 감독관 유의사항 책자를 나눠 드리고, 동영상으로 감독 유의사항을 시청한다. 매년 감독을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수능 감독이기 때문에 매년 바뀐 건 없는지 하고 꼼꼼하게 설명을 듣고, 책자에 중요한 부분에 빨간 볼펜으로 체크를 한다.
적다 보니 너무 글이 길어졌다. 이 만큼 수능 시험 하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수능 당일 업무는 2탄에서 다뤄야겠다.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