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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Jun 01. 2024

갈 때마다 설레는 수학여행 이야기

수학여행에 진심인 정생물

나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5, 6, 9년 차 때 2학년 담임을 맡았고, 그 해에는 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학여행 가는 것을 무척이나 피곤해하고, 힘들어하지만 나는 수학여행에 진심이다. 담임으로서 그러니까 인솔 교사 자격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3번이나 갔지만 한 번도 가기 싫었던 적이 없고, 그 누구보다 즐거웠다.


1. 5년 차, 첫 남학생반 담임이었을 때 처음 겪은 수학여행

첫 번째 학교에서는 고1, 고3 담임만 하게 되면서 수학여행 인솔의 경험을 하지 못했고, 두 번째 학교로 이동하면서 첫 해에 2학년 담임을 하게 되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첫 남학생반 담임을 맡아 모든 것에 약간 쫄아 있던 시절이었는데 대학생 때 제주도에 놀러 갔던 경험이 너무 내 기억에 좋게 남아 있었고, 철없던 28세 정생물이었으므로 그냥 제주도로 놀러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났던 기억 ㅋㅋㅋ, 그때 우리가 잡은 숙소는 펜션이었는데 2층 짜리 펜션을 한 반씩 사용하는 그런 곳이어서 아이들 관리가 그나마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아침에 애들 깨워서 관광버스에 태우는 일인데 밤새도록 놀았는지 술을 마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걸 3박 4일 중에 뒤로 가면 갈수록 힘들어했다. 그리고 어디 내려서 구경하고 몇 시까지 차에 타라고 알려주면 내리자마자 대충 보고 차에 타서 자는 놈들이 많았고, 나는 혼자 제주도 관광하러 온 사람처럼 또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느긋하게 모든 것을 즐겼다. ㅋㅋㅋ


2. 6년 차, 꼴통들이 많았던 우리 반 데리고 간 수학여행  

두 번째 경험하는 수학여행이었고, 당시 나의 업무가 2학년 기획이어서 내가 수학여행 업무 담당자였다. 남학생이라면 한라산 등반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루를 통으로 한라산으로 잡았는데 나는 나의 저질체력을 알았기 때문에 정상에 올라갔다가는 제시간에 집결 장소로 내려오는 게 힘들 것이라 예상해서 나와 비슷한 체력을 가진 남학생과 그때 당시 핫했던 사라오름으로 빠져서 백록담은 직접 보지 못하고, 아이들이 찍어온 사진으로만 구경했던 기억. 학급비로 각 반 아이들에게 하루 날 잡아서 치킨을 제공하기도 했고, 우리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이 돌발 행동 하지 못하게 지켰는데도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반 놈들 몇 명은 새벽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제주도 피시방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ㅠㅠ 아무 일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지 이것들이 내 교직 인생을 그만두게 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이미 그 일은 벌어지고 난 뒤였고, 뭐 어쩌겠는가? 아직도 이 아이들 만나면 그때 이야기 하는데 이 놈들은 내 속도 모르고 그 당시 모든 아이들의 휴대폰이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스마트폰 한 대에 의존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피시방까지 걸어서 다녀왔다면서 깔깔거리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2학년부장님께서  나에게 천연 염색으로 만든 모자를 사주셨는데 그 모자는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자로 사진 찍을 때마다 인생샷을 만들어주는 신기한 모자이다.


3. 9년 차, 세월호 사건 터지기 2주 전에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

2014년 4월 16일, 나는 우리 반 교실에서 3월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서 찍은 단체 사진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우리 학교는 3월 말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이 시절 동학년 선생님들 중에는 나랑 결이 맞는 분이 거의 없어서 좀 재미가 없었는데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제주도를 즐겼고, 내가 싫어하는 선생님들을 지켜보면서 왜 저럴까? 나는 나중에 저런 선배 교사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ㅋㅋㅋ 수학여행을 가면 담임들이 자기 반 아이들이 술 같은 걸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캐리어 검사를 하는데 이때만 해도 내가 좀 어려 보여서 그런가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캐리어 구석구석을 보려고 하면 자기들 속옷 있다면서 술 안 가져왔다고 난리 ㅋㅋㅋ 그러면 나는 또 쿨하게 “너희를 믿지만 검사를 안 할 수는 없어.” 하면서 재빠르게 눈으로 스캔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경험한 3번의 제주도 수학여행은 다 봄에 갔었는데 올해 우리 학교 2학년은 가을에 수학여행을 가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나는 2학기에는 2학년 전담으로 ㅋㅋㅋ 2학년 실에 자주 가면서 "수학여행에 2학년 전담 한 명 정도 따라가잖아요~ 누가 가나요?" 이 질문을 2학년 부장님과 기획 선생님께 하면서 내가 2학년 전담 비담임이라는 걸 어필한다. 나는 교감선생님이랑도 잘 지내니까 제가 교감선생님을 잘 마크하겠다며 믿고 맡겨달라고 ㅋㅋㅋ 그럼 2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다 신기해하면서 인솔 교사로 수학여행 가는데 뭐가 좋아서 따라가려고 하냐고 하시는데... 진짜 나는 수학여행에 진심인 정생물로 공식적으로 출장을 달고 제주도에 갈 수 있는 수학여행 갈 때마다 항상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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