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의 연애
작년의 내 목표는 사람 되기였다. 내가 강아지나 고양이라는 소리는 아니고(걔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내가 생각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팠다.
사람 되기랑 사랑하기랑 둘 중에 뭐가 더 어렵냐 하면 나는 좀 고민된다. 예전에는 사랑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에 사랑이 있다고 본다. 그럼 사랑 안 해본 사람은 사람도 아니냐? 그런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어떠한 인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인정. 내가 모순투성이 위선자인 동시에 겁쟁이라는 인정.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마주하고, 이성적이지 않은 나의 감정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오랫동안 쌓아온 나의 성 안에 어느 날 불쑥 침입한 인간에게 내 것을 내놓아주기 싫어서 눈을 부라리다가도, 막상 상대가 선을 그을 때는 서러워져서 엉엉 울고 싶어지는 심보란 참으로 꼴불견인 것이다.
모든 것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사랑처럼 달달한 걸 내 입에 담는다면 이가 다 썩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고 모두 그걸 알지 않나? 언젠가 헤어지고 혼자 남게 될 것을.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손쉽게 사랑이란 걸 줄 때 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20살에 이르러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과 발을 맞춰 걷기 위해 노력하지만, 적응할 수 없는 유속에 휩쓸려 정신을 차리면 낯선 곳에 흘러와 있다.
지면에 발을 딱 붙이고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것조차 힘든데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라고? 둘 다 휩쓸려 가기 십상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잠깐의 행복을 즐기기에는 대가가 크지. 나이가 들수록 성벽은 높고 견고해졌다.
어어, 그건 너무 생각이 많은 거 아냐? 그러자 30대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20살이면 20살 다운 생각을 하고 20살 다운 연애를 하라고. 가볍게.
하지만 나는 나의 방어기제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의지하게 되는 거 무서워. 감정에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내가 싫어.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을 쏟는 게 싫어.
그런데?
그런데 가끔은 무너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무너졌을 때 붙잡아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순. 전부 모순이다. 으으 이런 건 정말 싫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인정 하나. 나는 사람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홀로 강하니 무리를 이룰 필요가 없었던 호랑이와 달리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든 기대 버려야 하는 속성을 지닌 연약한 동물이다.
또 인정 둘. 부정하고 싶은 나도 나다. 사실 나는 연애보다도 사랑보다도,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성인기적 애정결핍이라고나 할까(꼴불견).
그래서 결국 또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시도를 한다. 실패의 고배는 쓰다. 그래도 또다시 도전한다. 인정의 과정을 거치고 사랑 비슷한 걸 할 때에도 예전의 증세를 전부 이겨낸 건 아니다.
언젠가 상대와 헤어질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상대가 나에게서 돌아설 순간을 상상해 본다. 이런 상상은 주로 가장 행복할 때 이루어진다. 최악은 최고의 상황보다 상상하기 더 쉽다.
어깨를 부딪히고 포옹을 할 때마다, 행복할 때마다, 내가 하는 사랑을 작게 만든다. 20대들이 하는 귀엽고 가벼운 연애. 좋을 때지,라고 넘겨버릴 순간의 연애가 지금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연애.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로 세상에 휩쓸려버리기 딱 좋은 그런 연애. 우리는 그런 연애를 하고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데도 마음이 가는 걸 멈출 수 없으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큰일이 나버렸을 때는 그냥 숨을 크게 들이쉬는 편이다. 인정하자.
아직도 인정이 어렵다면? 펭귄이라고 생각해 보는 방안을 제시한다. 급류에 휩쓸려가면 추우니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해 옹기종기 붙은 펭귄들.
인정 하나. 사람 되기 프로젝트의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