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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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9
‘밥벌이’라는 것의 기본적인 속성은 [착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깊게 한다. 마르크시즘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 노동조합의 일을 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 있으나,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방송국의 삶에서 더 진한 농도로 깨우친 철학에 가깝다. “나는 내 성과를 위해 프리랜서 작가의 주급을 올려주지 않고, 회사는 이윤을 위해 시간외수당을 깎고, 외주 사장님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조연출의 급료를 터무니없이 적게 준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체계화되어 있고, ‘누가 더 잘하나’를 경쟁한다.
누군가는 이 일을 아주 미안해하며 진행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것이 아예 일상이 되어 주저 없이 군림하는 삶을 산다. 뉴스에서만 보는 삶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보면 어김없이 옆자리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있는 살풍경이다.
일 년 전 이맘때, 어느 방송사의 한 신입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인이 이겨내야 했던 격무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지만, 알려진 바로 가장 그를 괴롭혔던 문제는 ‘비정규직 인력을 해고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 일을 ‘흔한 남들처럼’ 잘 해냈으면 하나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 죽음으로 여러 문제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함께 숙의하게 되었으니 의미 있다 해야 할까. 그런데 만약 이게 내 자식이었다면? 난감한 문제다.
혼자 착한 척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딸이 최소한의 미안함과 적절한 인간애 정도는 갖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앞서도 말했듯 먹고살려면 누군가를 착취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다만 항상 주변을 돌아보고, 필요한 사람이 계속 곁에 있도록 붙잡아 주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주고, 소리치며 인상 쓰는 대신에 여러 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유연한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스티브 잡스의 동업자이자 인생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말했듯, “인간은 이진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재능을 포기하지 않고도 훌륭한 인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It’s not binary. You can be decent and gifted at the same time.
"인간은 이진법이 아니야. 재능을 포기하지 않고도 넌 좋은 인품을 가질 수 있었어."
- Steve Wozniak (from the movie, [STEVE J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