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어떤 꿈 하나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다시 20대의 대학생이었고, 그날은 모두가 준비해 온 프리젠테이션을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수업은 정오에 시작하지만, 저는 그 시각쯤 누군가를 어딘가로 인솔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에서 승합차 한 대를 내려보내던 순간, 뒤늦게 수업과 발표를 떠올렸습니다. 손목의 시계는 11시 45분. 낯선 장소였지만, 차를 얻어 타고 달리면 크게 늦지 않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렇게 학교로 향했고, 달리는 차 안에서 그 시대에는 없었을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이런 종류의 꿈에서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표 자료는 만들지 않았고, 이미 제출해야 할 마감도 지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꿈속의 저는 기억의 잔해를 더듬어 언젠가 비슷한 주제로 만들어두었던 파일을 떠올리고, 그것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 스스로 판단합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다급한 속독과 즉석 리허설을 하며, ‘이 정도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웁니다.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15분이었습니다. 다행히 교수의 스몰 토크가 길어졌는지 첫 발표자가 막 단상으로 향하던 순간이었고, 제 차례는 바로 다음이었습니다. 저는 조급함을 억누르며 머릿속 스크립트를 반복했고, 형편없이 보이던 첫 발표자가 묘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자신감과 초조함이 얽힌, 그 특유의 감정 상태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도 저는 꿈에서 이어진 발표의 흐름을 실제처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배열하면 발표가 훨씬 나아졌을지, 어떤 문장을 집어넣으면 설득력이 생길지, 불필요한 상상임에도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눈을 뜬 순간, 꿈에서 가져온 모든 문장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꿈은 반복됩니다. 특히 걱정을 품고 잠들면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납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어떤 순간에 서 있는 꿈. 이미 지나간 과거가 현재의 불안을 빌미 삼아 다시 무대로 올라오는 구조입니다.
인문학은 꿈을 흔히 ‘의식의 잔여물’로 설명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현실에서 밀려난 감정이 밤이라는 틈을 통해 돌아오는 형식]에 더 가깝습니다. 낮 동안 미처 다룰 수 없었던 불안과 긴장은 과거의 장면을 빌려 우리 앞에 다시 놓입니다. 그래서 꿈속의 시간은 대개 왜곡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유난히 또렷합니다. 저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이 ‘준비되지 않은 꿈’도 그런 종류일 것입니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노래를 불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다 가사를 외우지 못해 무대 뒤에서 서성이는 순간도 제 꿈의 단골 소재입니다. '입봉' 직전의 사원 시절로 돌아가 방송 아이템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십 수년 전의 장면도 자주 재현됩니다. 이미 해결된 위기조차 꿈에서는 현재형으로 되살아나곤 하죠.
돌아보면, 실제로 그렇게까지 준비되지 않은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큰 조직에 있을 때는 미래가 끊어질 것 같은 공포도 없었습니다. 구조가 암묵적인 안정감을 제공했고, 작은 회사로 옮긴 초기에 있었던 기대와 계획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오히려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안도감을 줍니다. 내일, 모레, 한 주, 한 달의 일정이 보인다는 이유로 마음이 잠시 차분해집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시간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난 뒤의 공백은 안개처럼 흐릿하고, 밤이 되면 그 흐릿함의 형태가 선명한 불안으로 변합니다. 그래서인지 준비되지 않은 꿈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꿈은 종종 현재의 마음을 과거의 장면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랄까요.
완전하지 않은 순간들을 결국 버텨왔고, ‘근자감’이라 불릴 수 있는 즉흥성이라도 그 덕분에 살아낸 날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조급함과 불안 속에서도 저는 무대에 올랐고, 마지막 페이지를 썼고, 결국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때로는 작은 위로가 됩니다. 어쩌면 제가 꾸는 그 꿈들은 준비되지 않았던 제 과거가 주는 경고가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남아온 증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이 만든 그림자 같지만, 그 불안이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또 다른 문장을 쓰게 하고, 다음 날을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등을 떠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잠에서 깨어 꿈속에서 짜던 발표의 문장을 떠올리려 애쓰면서도, 결국 새 문장을 생각합니다. 내일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오늘, 저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어쩌면 충분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불안을 데리고도 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발을 뗄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25.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