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아무것도 못하겠고, 어떤 것도 일어나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 무기력이 몸을 침대에 딱 붙여놨을 때.
그런 날이면 나는 내 심정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둔다. 몸의 조종권을 본능에 맡긴다. 이성과 자제력은 잠시 잠들게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니 정말 침대에 누워서만 하루를 보냈다. 아침 11시에 눈을 떠서 새벽 2시에 핸드폰이 꺼졌다. 하루 종일 유튜브 쇼츠와 유튜버들의 킬링타임용 콘텐츠 감상, 커뮤니티 이슈 글 소비하기. 중간중간 식사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첨가해 주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그렇게 온종일 핸드폰만 하고 누워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일단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눈동자에는 실핏줄이 어느새 자글자글 하다. 건조해서 눈꺼풀 바스락 거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입은 단내가 진동한다.
몸은 아침보다 더 축 늘어졌다. 일어났을 때는 그래도 생기는 있었는데, 잘 때가 되니 곧 송장 치를 몰골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죽고 싶어진다. 검은 저승사자가 이름 세 번 불러주면 마땅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나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한 마디 말로 사방에 가득 찬다.
지랄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줬는데 기뻐하진 못할망정 왜 죽음에 가까워지는가. 어째서 죽음을 기꺼워하려는 마음이 생기는가.
다음날에 일어나면 어제의 후회로 얼굴을 적신다. 저절로 눈물이 난다. 심적 고통이 또 무기력을 부른다. 우울은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 없이 현재를 유지한 채로 시간만 지나면 그 세가 더 번질 뿐이다.
그냥 솔직하게 원하면 안 되는 걸까. 일어나서 빨래 걷고, 스트레칭하고,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책 읽고 싶다고.
무언가를 원하는 이유는 그것을 함으로써 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결과가 기분이 진창으로 박히는 것이면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다. 원한 척한 것이다.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을 스스로에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회피한 것이다.
본능은 날 행복으로 이끌지 않는다. 본능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본능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현실의 회피일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한 길을 찾으려면 본능을 따라선 안된다. 그건 함정이니까. 여태 몇십 년 동안 나는 함정만 밟아왔다. 그러니 행복하지 못했지. 이젠 운명이 정해준 내 길을 내가 따라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