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
한국 록의 역사에서 '마그마'라는 밴드의 위치는 독특하다.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발표하고 돌연 사라진 그들은 과연 화산에서 솟아오른 마그마 그 자체였다. 1980년대라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헤비메탈의 원형을 간직한 아주 빡센 록 음악을 들려주었다. 물론 신중현이라는 거대한 나무에게 자양분을 얻었음이 분명하게 음악에 나타나긴 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록 음악을 들려준 밴드는 당시 마그마가 유일했을 것이다.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록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스타일의 하드 록이 절묘하게 섞인 마그마의 음악은 첫 트랙 '알 수 없어'에서부터 그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다. 지금은 목사님이 된 보컬 조하문의 송곳 같은 보컬이 단연 돋보인다. 이어지는 '이럴 수가 있을까'는 산울림의 음악과 결을 같이 하는 듯한데, 밝은 분위기의 연주와 달리 실연한 남자의 어이없고 당황한 감정을 담은 노랫말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베이스와 신디사이저의 음험한 인트로와 보컬 조하문의 무시무시한 포르타멘토 샤우팅이 묵직하게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은 이 자체로 빼도박도 못한 헤비메탈이다. 이어지는 '기다리는 마음'은 나중의 솔로 가수 조하문으로서의 모습을 빗대어 볼 수 있는 블루지한 록 발라드 곡이다. 5음계 위주로 만들어져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빠른 템포의 밝고 달달한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를 지나고 나면, 대망의 '해야'이다. 박두진의 시 '해'를 모티프로 만든 곡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시인이 이 곡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시의 작품성에 비해 곡이 좀 가볍긴 하지만, 시의 그늘을 걷어내고 곡 자체로만 보자면 나쁘지는 않다. 나름 드라마틱한 구성도 있고(특히 도입부는 예술이다), '해야 떠라'로 시작하는 테마가 하강하는 멜로디로 된 데다가 템포가 급작스레 빨라지는 바람에 경박해지긴 했지만 '눈물 같은 골짜기에'로 시작하는 테마가 이를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테마가 '해야 떠라' 부분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다시 한 번 산울림의 영향을 보여주는 하드 록 넘버 '잊혀진 사랑'과 희망적인 분위기로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그날'을 지나고 나면 보컬이 빠진 연주곡인 마지막 트랙 '탈출'로 접어든다. 블루스 스타일을 진하게 녹여낸 도입부, 자연스럽게 템포가 빨라지며 하드 록 스타일의 기타 솔로가 이어지는 중, 후반부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1980년대 초반에 어떻게 이렇게 완성도 높은 하드 록/헤비메탈 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 중심에는 걸출한 보컬 조하문이 있었고, 신중현과 산울림이라는 위대한 선배들이 잘 닦아둔 터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마그마는 이뤄야 할 바를 제대로 이뤄냈고, 앨범 한 장만을 남기고 장렬히 산화했다. 훗날 조하문은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를 애절하게 부르며 대중들 앞에 다시 서지만, 록커로서의 모습은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후였다. 심지어 지금은 목사님이 되었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삶을 사는 가수는 미국 로큰롤의 전설인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