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가리워진 길' (1987)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유재하, '가리워진 길' 가사 전문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아니,
교사였다.
사립 고등학교의 정교사로 임용된 게 2022년의 일이다. 임용 이전까지는 시험 준비로 피폐한 시간을 보냈다. 수능시험을 준비하던 때보다도, 군 시절보다도 더, 아니, 내 삶을 통틀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을 들이대더라도 그때만큼 오리무중이었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우울증 진단을 처음 받았다.
2022년에 정식 임용이라는 목표를 이루고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 발언이 정식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기간제 선생님이나 임용고시 수험생들을 기만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철저히 나 개인의 문제일 뿐, 그들의 노력을 무용하게 한다거나 폄훼할 의도는 결코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꿈은 뮤지션이었다. 아주 오랜 꿈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갖게 된 꿈이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약 23년 전부터 가져왔던 꿈인 셈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쳐야 했고, 싸움이 싫었던 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교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슴 속 끓어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어른들 몰래 밴드 생활도 하는 등, 기묘한 이중생활을 이어 왔다.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도 교사 하기가 죽을 만큼 싫게 느껴지면 미련 없이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그런가. 나는 교사를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교사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교사를 하면서 밴드를 동시에 할 여력은 없었기에, 음악은 그만둬야 했다. 그 즈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도 하고, 곧 아들도 태어났다. 아버지가 되었다.
책임져야 할 생이 많아졌다. 반드시 정교사가 되어야 했다. 가족을 불안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교사가 되었다. 되자마자 담임을 맡았고, 그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2학년, 또 2학년, 이어서 3학년, 또 3학년. 이렇게 총 네 번의 담임을 했고,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교사는 시간이 많이 남으니 여가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과 시간에는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하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행정 업무를 한다. 일과 이후에는 방과후 수업이나 특강, 아니면 자율학습 감독 등 초과근무를 한다. 입시를 위한 상담도 일과 이후에 주로 진행한다. 그럼 수업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그것은 초과근무가 없는 평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한다.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액면 그대로 정말 '시간이 없다'.
나는 학교에,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일했다. 좋든 싫든 내게 주어진 일이기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잘하고 싶었다. 지옥 같은 일정들을 소화해 내면서도 즐기려고 애썼고,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어떤 의미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모종의 일로 누군가에게 '당신은 노력하지 않는 교사'라는 말을 듣고, 내 안의 무언가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도저히 이 일을 더 할 수 없었다.
저런 식의 말을, 혹은 저보다 심한 말을 앞으로 30년 가까이 더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칠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과호흡이 엄습하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 없어져서 이 모든 의미 없는 짓거리를 다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가족들이 있다. 병원에 '내가 오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고, 나는 응급 환자 자격으로 곧장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병가를 내길 권했고, 나도 동의했다. 일단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지금 난 병가를 내고 잠시 쉬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내린 나의 조각들을 다시 그러모아 맞춰야 한다. 이 글은 그렇게 쓰게 된 것이다.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던 노랫말을 필사하고, 그에 맞는 산문을 좀 덧붙이는 형식으로.
나를 위로하고자 쓴 글이지만, 어쩌면 이 글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와 꼭 같지는 않더라도 세상엔 아픔을 겪는 사람이 무지무지 많으니까. 그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면. 그래서 한 걸음 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아직도 '가리워져' 있지만, 아픈 우리들이 함께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천천히 나아간다면 그래도 조금씩은 안개를 뚫고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