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

Born to lose (외국곡)

by Charles Walker
Born to lose, I've lived my life in vain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었나 봐.
난 헛된 삶을 살아왔어.

Every dream has only brought me pain
모든 꿈은 나에게 고통만 안겨줬어.

All my life I've always been so blue
내 인생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했지.

Born to lose, and now I'm losing you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었고, 이제 너마저 잃고 있어.


Born to lose, it seems so hard to bear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 그건 너무 견디기 힘들어.

How I long to always have you near
언제나 너를 곁에 두고 싶었는데

You've grown tired and now you say we're through
너는 지쳐버렸고 이제 끝내자고 말하네.

Born to lose, and now I'm losing you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었고, 이제 너마저 잃고 있어.


Born to lose, my every hope is gone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 내 모든 희망은 사라졌어.

It's so hard to face each empty dawn
텅 빈 아침을 맞이하는 게 너무 힘들어.

You were all the happiness I knew
너는 내가 아는 유일한 행복이었는데

Born to lose, and now I'm losing you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었고, 이제 너마저 잃고 있어.

Ray Charles, 'Born to lose' (1962) 가사 전문



1962년에 레이 찰스(Ray Charles)가 발표한 원곡이 있고, 2013년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리메이크한 버전이 있는 명곡 'Born to lose'를 듣는다. 노랫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참으로 우울한 노래다. 이만큼 통렬한 체념이 있을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었다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옳은 말이다.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잃어버릴 날이 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지는 것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도, 잃는 것에 지나치게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운명론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우울의 늪에 빠지기가 쉽다. 하지만 우울 또한 우리 삶의 큰 일부이고, 끝내는 우리가 받아 안아야 할 어떤 것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의 법칙은 간단명료하다. 가지거나, 잃거나. 밀려오거나, 쓸려가거나. 살거나, 죽거나. 절망의 족쇄가 우리로 하여금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살다 보면 지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삶이라는 게임을 끝내지 않는 한, 현 상태가 지속되는 법은 없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이 노래를 처음 부른 레이 찰스는 어떤 마음으로 불렀을까?이 당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우울과 절망으로 가득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리고 수많은 노래 중 하필 이 노래를 선택한 에릭 클랩튼에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뮤지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심각한 약물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끝내 그것을 극복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심리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 측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이 찰스가 이 노래를 발표한 시기는 1962년으로, 당시 이미 헤로인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던 상태였던 반면 에릭 클랩튼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시기는 2013년, 에릭 클랩튼의 약물 중독 문제는 완전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버린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흑인으로 1960년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레이 찰스처럼 섬세한 감수성과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삶은 고난의 연속일 뿐, 기댈 곳 없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마약이 순식간에 자신의 가족을, 음악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1962년의 레이 찰스는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마이크 앞에 섰을 것이다. 그에게 이 노래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 붙잡은 나뭇가지나 덩쿨 같은 것이었을 테다. 결국 1965년, 레이는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1년간 활동을 중단했고, 멋지게 복귀하여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2013년의 에릭 클랩튼에게 약물 문제는 머나먼 과거의 일이었다. 이미 만년에 접어든 상태에서 에릭 클랩튼은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골라서 부르게 되었을까? 당시 70대에 접어들 무렵이었던 에릭 클랩튼은 자신이 살아온 생의 궤적을 가만히 관조하고 성찰해 볼 여유가 주어졌을 것이다. 젊은 날의 치기 어린 모습들, 수많은 시행착오, 실수, 과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모든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 뮤지션이 된 현재의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의 눈엔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젊은 자신처럼, 아니 혹은 그보다 더 깊이 고뇌하고 깊이 절망하며 고통에 신음하는 어리고 나약한 영혼들의 모습이. 그 젊은이들에게 에릭 클랩튼은 말하고 싶었으리라. 모든 것을 빼앗겨본(혹은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잃을 운명'이라고.

노래는 힘이 있다. 노래 자체가 가진 힘도 있지만, 그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힘은 절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레이 찰스와 에릭 클랩튼이 이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우울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잃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져 보았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임을 깨닫고 소유욕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노래의 힘을 본인들의 삶으로 증명해 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노래로 우리는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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